(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각본작가로 잘 나가는 길은, 부자 집안 출신의 약혼녀 이네즈와 좋아하던 도시 파리에 오랜만에 온다. 매력적이지만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약혼녀는 돈이 되는 각본을 마다하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소재의 소설을 쓰겠다고 하며, 쇼핑 대신 비 오는 파리를 산책하면서 공상만 하는 길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길과 산책하는 대신, 깊이는 없고 미술이나 와인에 대해 온갖 현학적인 표현만 늘어놓는 폴 부부와 춤추고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네즈가 다른 친구들과 떠들썩한 파티를 즐기는 동안 혼자 나와 파리를 산책하던 길은 어떤 골목에서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갑자기 나타난 골동품 푸조 자동차에 올라타고 어디로인가 갔는데, 그곳에서 1920년대를 풍미하던 존경하는 예술가들을 만나서 어울리게 된다. 장 콕도를 위한 파티에서 콜 포터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피츠제럴드와 젤다 부부, 헤밍웨이와 조우하고 그가 소개해준 평론가 거투르드 스타인에게 자신의 소설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녀의 집에서 모딜리아니, 피카소를 포함한 많은 화가들의 뮤즈였던 아름다운 여인, 아드리아나를 만나고 둘은 서로 호감을 갖는다.
자신이 황금시대라고 생각한 시대인 1920년대로 들어가 아드리아나와 대화하던 길은 그녀가 열렬히 바라는 시대는 19세기말 ‘벨 에포크’라고 일컫던 시대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와 함께 있다가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이번에는 1800년대 말 교통수단인 마차가 등장하고 둘은 마차를 타고 벨 에포크 시절의 상징인 ‘막심 레스토랑’에 가게 된다. 거기서 둘은 아드리아나의 로망인 로트렉을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과 의식의 흐름 작가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아드리아나의 의상에 흥미를 갖고 그녀가 무대 의상 디자인을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예술가들도 자신들의 시대는 형편없다고 생각하고 고갱은 르네상스 때의 티치아노나 미켈란젤로를 흠모한다고 말한다.
길은 자신이 좋아하던 시대인 1920년대에 아름다운 아드리아나와 함께 머물고 싶었으나 아드리아나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벨 에포크에 길이 함께 머물기를 바란다. 길이 자신은 그 시대로 같이 갈 수 없다고 하자, 둘은 결국 이별을 하게 된다.
길은 모두 지금 살고 있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를 동경하지만 과거의 사람들도 역시 자신들의 시대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전의 황금시대를 꿈꾼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드리아나와 이별하고 현실로 돌아온 길은 외모 이외에는 자신과 맞지 않는 약혼녀 이네즈와 결별하고 미국을 떠나 파리에서 살기로 결정한다.
밖으로 나온 길은 거리를 걷다가, 자신의 소설에 영감을 주고 그가 좋아하는 콜 포터의 레코드를 찾아주던 노스탤지어샵에서 일하는 여인 가브리엘과 우연히 만나, 비를 맞으며 함께 파리를 걷는다.
이 영화는 SF 식의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시간여행 영화가 아니라, 과거의 인물들을 만나는 영화적 장치로 그 시대의 자동차나 마차를 등장시켜서 관객과 재미있게 과거로의 여행을 동행하게 해주는 영화이다. 실제로는 길이 한밤중 혼자 과거로 상상 여행을 했겠지만, 영화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자동차나 마차를 타고 과거로 가서 좋아하던 예술가나 작가를 만날수 있다.
역사적 고증도 훌륭해서 지금은 세탁소가 된 자리에 있던 예술가들이 모이던 카페나, 세기말에 유명했던 맥심 레스토랑 같은 유명한 장소를 재현하고, 그 당시 예술가들의 성격이나 외모나 복장, 파티 장면 등을 생생하게 구현해서 보는 재미를 준다. 파리라는 도시의 묘사도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길이 모네가 그린 수련이 있는 연못의 다리에 있는 장면이나, 에펠탑이 보이는 골목길을 걷는 장면이나, 센강을 따라 걷는 장면을 보면 파리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나게 해 준다. 포스터에서 보여주는 밤하늘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의 그것인 것도 잘 어울린다. 영화음악도 장면과 잘 어울려서 그음악을 들으면 파리가 저절로 떠오르는 효과를 준다.
또한 모든 우디 앨런 영화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길의 대사 내용이나 말투도 우디 앨런이 연상되어서 그를 보는듯한 착각이 들면서 웃음이 나온다. 사실 그가 만든 영화의 주인공 배우는 다 우디 앨런의 아바타이다.
순수한 작가 길이 세속적인 약혼녀의 외모에 반해서 헤어질 생각을 못하고 그녀가 다른 세속적이고 현학적인 지인과 바람피우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다가 나중에 알게 되는 과정도 흥미롭다. 헤밍웨이가 그의 소설을 검토해 주는 과정에서 둘이 바람피우는 것을 눈치채는 것이다. 헤밍웨이 소설처럼 사실에 기반해서 바라보면 은폐된 진실이 드러난다는 뜻일 수도 있고, 소설을 쓰는 작업은 인간의 무의식까지 포함하는 총체적인 일이라 의식에서는 지나쳤던 일도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길이 쓴 소설의 내용이 이 영화의현실이 되는 구조이다. 중고서점에서 산 책이 과거의 아드리아나가 쓴 자서전이었고 그 내용대로 영화속 현실에서 아드리아나에게 귀걸이를 선물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길이 쓴 소설의 주인공이 노스탤지어샵 주인이니까 길이 이네즈나 아드리아나가 아닌 가브리엘과 인생을 함께 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또한 영화가 소설 속 이야기이니, 과거로 가는 마차나 자동차의 등장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결국 상상한 모든 일이 예술 속에서는 현실이 될수 있는 예술의 본질을 만끽할 수 있다.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다들 나름의 황금시대를 꿈꾼다.
내가 꿈꾸는 황금시대의 사람들은 다른 황금시대를 꿈꾼다. 길은 1920년대를, 아드리아나는 벨 에포크를, 그 시대 사람들은 르네상스를 꿈꾼다. 결국 더 먼 과거로 들어가는 것이다.
끝없는 회귀를 한다면 원시시대나 에덴동산이 남을까?
그러나 인간은 과거를 가지고 미래를 향하여 현재를 산다.
과거를 상징하는 아드리아나나 현재만을 상징하는 이네즈가 부분적으로는 아름답지만 성숙하고 통합된 인간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좋아하는 시대로의 환상 여행을 제대로 한 길이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과거로 가는 자동차가 있던 골목이 아닌 현실의 다리 위를 걷는다. 이때 맞은편에서 나타난 여성이 바로 가브리엘이다. 길이 옆에 함께 걸을 수 있는 파트너로 선택한 사람은 과거의 문화적 유산을 사랑하면서 현재를 즐기며 같이 앞으로 갈 수 있는 여성 가브리엘인 것이다.
둘은 기꺼이 비를 맞으며 아름다운 파리를 나란히 걷는다. 그들은 지금, 여기를 즐기면서 미래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