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둘로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특징을 정하면 거기에 속하지 않은 나머지 여집합이 반드시 있을 테니 시대를 막론하고 이분법은 항상 통했던 것 같다.
요즘은 어떤 사람의 MBTI 유형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한다고 생각하는 트렌드이다. 여기에는 16가지 성격 유형이 있으니 꽤 다양한 인간형이 있고 재미 삼아 어떤 유형끼리 잘 맞는지도 인터넷에 많이 나와 있다. 또한 전에는 상대방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법한 상황에서도 저사람은 MBTI가 달라서 그렇구나하고 이해해주는 문화도 형성된것 같다.
그러나 이것도 따져보면 4개의 카테고리별로 서로 대가 되는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니 어찌 보면 크게 이분법에서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내가 볼 때는 카테고리중 제일 앞에 나오는 내향인가, 외향인가의 분류가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요즘은 우스갯소리로 “너 T지?”하는 말도 유행이라고도 한다.(나도 T인데 비슷한 평가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T냐 F냐 하는 것이 과거의 이과형 인간과 문과형 인간의 특성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나의 연식이 드러나는 이야기지만, 과거에는 어떤 사람이 이과형인지 문과형인지가 그 사람을 설명하는 데 이용된 적이 많았다. 아직도 고등학교에서 대학입시를 위해 문과와 이과를 나누어 가르치니 여전히 유용한 분류이기는 하다.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적성 검사를 하는데 적성이 뚜렷하면 간단하지만, 문제는 스펙트럼에서 중간지대에 위치한 사람들도 꽤 있다는 것이다. 바로 내가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항상 두 분야가 거의 비슷한 수치로 적성점수가 나왔던 것이다. 그때는 대학입시 성적이 고등학교의 위상을 정할 때라 학교에서는 무조건 이과로 가라고 했고 나도 딱히 싫지 않아서 이과로 갔고 대학도 당연히 그쪽으로 들어갔다. 그 뒤에 대학의 같은 과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이과형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인과 관계가 있는 구조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후자를 이과 성향이라고 잘못 판단했던 것이다.
결국 이과냐 문과냐의 판단은 논리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합리나 논리를 이야기나 인간에 적용하느냐, 자연과학 분야에 적용하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문과생이라고 해서 합리가 없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어서, 중고등학교의 문과에서도 수학과 과학 교육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이과 문과를 선택하느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조언하자면, 관심사가 자연 현상이나 물질에 대한 것이고 그것이 실험에 적합한 것인지(자연과학), 원리를 이용해 현실에 적용하는 것인지(공학), 이야기를 만들거나 비판하는 것인지(문학), 인간의 심리나 사회 현상이나 관계에 대해 밝혀 보고 싶은 것인지(인문, 사회과학), 자신의 재능을 특정 수단으로 표현하고 싶은지(예술)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어느 쪽이 좋은지 잘 생각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저 수학이나 과학 점수가 잘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이과 성향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이과에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문과형 인간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나중에 문과 친구들과 스터디 그룹에서 인문학 공부를 열심히 했을 때, 또 한 번 혼란을 느꼈다. 나는 문과형 인간도 아니었던 것이다. 너무 감성 충만한 분야나 책도 나에게는 잘 맞지 않았다. 인과 관계나 논리가 없는 글도 좋아하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내가 공부했던 자연 과학적 방법도 나에게 영향을 많이 미쳤던 것 같다. 어떤 주장에서 표본이 너무 적은 증거를 대면 거북했고, 귀납의 과정이 미흡해도 불편했다.
그래서 이과 친구들과 만나면 문과 성향의 인간, 문과 친구들을 만나면 이과 성향의 인간으로 삐딱하게 존재했던것 같다. 모임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이끄는 인사이더이기는커녕, 늘 아웃사이더로 존재했던 것이다.
보통 적성이 뚜렷한 사람들이 전문가가 된다.(나의 대학 동기 친구들은 대부분 전문가가 되었다.) 또는 자신의 재능을 일찍 파악한 사람들도 전문가가 된다.(대단한 예술가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특별한 재능도 없고 어영부영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나이만 먹은 나 같은 사람들은, 제네럴리스트에 아웃사이더가 된다.
그래도 여기저기 발을 걸치는 이런 삶이 나름재미있기는 하다.이렇게아싸이자제네럴리스트인나는 오늘도정신승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