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다. 그의 작품을 좋아해서 많이 보았고 ‘나를 찾아줘’와 ‘파이트 클럽’은 리뷰를 쓰기도 했었다. 이번 영화도 역시 그의 인장이 제대로 찍힌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주인공은 유능한 킬러로 지금까지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은 전문가다. 영화 도입부에 나오듯이 그에게는 목표를 달성하는 수백 가지 방법이 있다. 소음기를 끼고 총으로 죽이는 방법, 병원에 누워있는 타깃에게 접근해서 조용히 호흡기를 끄는 방법, 집에 침입해서 평소 복용하는 약물을 바꿔치기하는 방법, 욕실에 있는 스킨로션을 독극물로 바꾸는 방법, 독사를 푸는 방법, 가스관을 절단해서 불을 붙이는 방법 등등.....
그는 고용자에게 이용당하고 죽는 초짜 킬러가 아니다. 치밀한 준비 끝에 목적을 달성하고 한올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고수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가 타깃을 제거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의 대부분은 ‘기다리기’이다.
타깃이 언제 오는지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맞은편 건물에서 쪽잠을 자며 망원경으로 건너편 집을 관찰한다.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 동안 좋은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난도의 요가를 수행하고 평범한 관광객으로 보이려고 식사도 맥도널드에서 사 먹지만 건강을 위해 빵은 빼고 먹는다. 또한 흥분상태에서는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심박수를 60 이하로 고요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가 차고 있는 시계는 그의 심박수를 확인하기 위한 용도이다. 오랜 훈련 끝에 그는 타깃 이외에는 모든것이 흐릿하게 보이는 터널 비전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위험한 순간은 행동하는 때가 아니라 행동 전과 후이기 때문에 그는 세심한 준비와 세부사항을 절대 어기지 않고 반복 확인한다. 핸드폰도 한번 사용하면 유심칩을 빼고 파손해서 버린다.
이렇게 5일 동안 세심하게 준비하고 실행했는데도 그는 타깃을 제거하는 데 처음으로 실패한다. 그는 거사 실패 후 눈 깜짝할 새에 탈출해서 빠져나와서 비행기를 타고 그의 집이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의 집에 누군가가 침입해서 여자 친구를 폭행하고 죽이려고 해서 그녀는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다. 덩치가 큰 남자와 머리 짧은 여자가 녹색 택시를 타고 와서 그랬다는 이야기를 듣고 택시회사와 운전수를 찾아 정보를 들은 후 그를 죽인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자신이 로스쿨을 다닐 때 자신을 킬러의 세계로 이끈 교수를 찾아가서 그가 의뢰인에게 자신의 정보를 주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도 죽인다. 그의 비서를 데리고 여자 친구를 해친 킬러들과 그것을 지시한 의뢰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낸다.
남자 킬러가 있는 있는 곳에 잠입하여 그와 격투를 벌이고 자신의 여자 친구를 해친 그남자를 죽인 뒤 그곳에 불을 지른다.
여자 킬러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 그는 그녀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테이블에 가서 맞은편에 앉는다. 그녀는 주인공이 자신을 사고로 위장해서 쉽게 죽일 수도 있었는데도 직접 대면하러 온 것에 대해 감탄하며, 동종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마지막 순간을 여러 번 상상했지만 그 순간이 실제로 온 것에 대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결국 밖에 나와서 그녀도 죽는다.
마지막으로 거물 클라이언트가 사는 시카고의 보안 건물로 침입한다. 놀라는 의뢰인에게 그는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그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주지 시킨다. 다음에 다시 그가 다시 찾아온다면 그는 의뢰인의 커피잔에 방사능 액체를 묻혀서 얼굴이 녹아내리며 죽게 만들거나어느날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실족사한 것을 다른 사람이 발견하게 만들수있다고 말하고 떠난다.
마지막에 그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자기 집에 돌아와, 여자친구와 해변에서 나란히 앉아 평화롭게 바다를 바라본다.
이 영화에서 킬러라는 직업은 다분히 전문 직업인의 은유이다. 어쩌면 예술가나 작가의 은유일수도 있다. 따라서 킬러를 미화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단순한 해석이다.
여기서 인상적인 부분은 전문인으로서 어떤 작업을 수행할 때 능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끝없이 더블 체크를 하는 그의 태도이다. 많은 돈을 받는 만큼 일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를 만들려고 자기 관리까지 철저히 한다. 일을 잘하려고 식음을 전폐하고 그일만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컨디션을 갖기 위해 끊임 없이 자기관리를 한다. 그래야 그 작업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감탄스러운 부분은 주인공이 작업을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때를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다.타이밍을 맞추는 일은 참 힘든 일이다.
공으로 하는운동에서도 사람들은 대부분 미리 안정된 자세를 잡고 공이 정확한 위치에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해서 실수한다. 고수는 정확한 위치에서 자기가 어떻게 공을 보낼지 정하고 기다렸다가,시간이 일시 정지하고 숨도 멎고 공이 멈추는 순간,회심의 일격을 가한다.
하수들은 준비가 되지 않아도 기회가 지나갈까 봐 서두른다. 그러니 당연히 일을 그르칠수 밖에 없다.
긴 시간이라도 정해져 있는 기간이라면 대부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가 적당한 때인지 모르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경우라면 어떨 것인가? 여기서 프로와 아마추어가 갈리지 않을까 싶다. 아마추어는 여러 핑계로 타협할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던가, 혹은 어떤 것이 적합한 때라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던가 하는 구실을 댈 것이다.
프로라면 만반의 준비를 한 채긴 시간을 기다리고,적당한때가 오면 평소보다 더 차가운 심장으로 과업을 수행한다.
감독은 이러한 비유를 정확한 순간에 킬러가 타깃에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으로 묘사한다.호흡은 정지하고 총알은 천천히 날아간다.
마지막으로, 프로라면 자신의 직업이나 일을 사생활과 분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나라에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을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 킬러라는 더러운 일을 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호화로운 공간을 가지고 있으니 거부감이 들지 몰라도, 실제 세상에서 일과 가정을 혼동해서 뒤죽박죽 망치는 사람들을많이 본다. 열심히 일을 하고 사생활에 일을 끌어들이지 않는 사람이 진짜 전문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도 의뢰인이 이 원칙을 깼기 때문에 피의 복수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킬러 영화처럼 멋진 복수를 하고 자신까지 죽는 결말을 원치 않는다. 안전한 은퇴를 할 뿐, 너 죽고 나 죽자 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다시 킬러의 세계로 돌아갈 지에 대해서는 나는 아니라고 본다. 더 이상은 직업적인 삶과 개인적인 삶의 병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판명되었고, 그렇다면 그도 은퇴해서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직업이나 일에서 은퇴하는 순간을 맞을 것이다. 주인공처럼 아무리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어느 순간 실패와 환멸을 맛볼 것이고, 이제는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좋을 타이밍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이 온다. 그 때가 오면 그는 기꺼이 은퇴해서 자신으로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