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사람들이 받은 충격과 슬픔이 떠오른다. 누구나 죽지만 너무 일찍 삶이 중단된 꽃 같은 아이들을, 모두가 절절히 애도했었다.
애도하는 방식은 사람들마다 다 다르다.
정치 사회적인 시각으로 누가 잘못했는지 문제를 분석할 수도 있고, 애끓는부모의 마음에 감정을 이입하여 볼 수도 있고, 희생 당사자들의 1인칭 시점으로 그때를 바라볼 수도 있다. 아마도 문학이나 영화 같은 예술적인 방식이 후자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영화 <너와나>는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두 친구가 보낸 하루를 그들의 시점으로 그린 영화이다. 아이들은 희생자라는 관념 덩어리가 아니라, 생기를 뿜었던 실제 존재였다는 사실을 그들의 사랑과 우정과 질투와 일상을 통해 보여준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미와 하은은 고등학교 같은 반 친한 친구이다.
세미는 점심시간 모두가 나가서 비어있는 교실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다가 이상한 꿈을 꾼다. 늪지에 친구 하은이 죽어서 엎드려 있는 꿈이다. 기분이 이상해진 그녀는 선생님을 졸라서 조퇴를 하고 하은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한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기 전날인데 하은이 자전거에 치여 발이 골절되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하고 수학여행도 갈 수 없게 되었다. 세미는 절친인 하은과 함께 여행에서 추억을 쌓을 희망에 부풀다가 같이 못 가게 돼서 너무 실망하고, 절뚝거리더라도 같이 가자고 친구를 집요하게 설득한다. 하은도 가고 싶기는 해서 갑자기 수학 여행비를 마련하려고 집에 있는 캠코더를 팔 생각까지 한다. 이때 세미는 하은의 병상옆에 있는 일기장에서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의 애칭인 ‘훔바바’를 보고 질투심에 휩싸인다.
둘은 병원에서 나와서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하은을 자전거로 친 남학생과도 마주치는데 하은이 그와 다정하게 대화하자 세미가 화를 내기도 한다. 동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자 하은이 밀어주다가 세미가 떨어져서 손에 상처가 나서 동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하은에게 계속 같은 번호로 전화가 오고 세미가 누군지 궁금해하지만, 하은은 그냥 스팸이라고 한다. 결국 중고시장에 내놓은 캠코더는 아이디가 이상한 사람으로부터 사겠다고 만나자는 제의가 오지만 하은이 수상하다며 거절하고, 세미는 이것을 수학여행을 가기 싫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화를 내며 가버린다.
세미는 그 뒤에 만난 다른 친구들과 빙수집과 옷가게와 노래방에 가는데 노래를 부를 때 노래방 화면에 세미와 하은이 제주도에서 노는 장면이 보이고 세미는 눈물을 흘린다.
저녁때가 되고 하은과 계속 연락이 되지 않자 걱정이 된 세미는 하은을 찾아다닌다. 하은의 남자친구라고 의심했던 자전거 남학생에게 찾아가 물으니 사고 날 때 하은이 대학생 남자친구와 함께 있었다는 말을 하고, 다른 친구들에게서 요즘 하은이 어떤 남자의 스토킹을 받고 있다는 말도 듣는다. 이상한 아이디의 남자가 캠코더를 사겠다는 장소인 안산역으로 나가서 그 남자를 만나보니 인터넷에서 연락을 하다가 하은을 만났고 싫다는 그녀를 따라다니다가 자전거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한다. 세미는 두 남자 다 훔바바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안도한다.
어두운 학교 교실로 돌아온 세미는 동아리 방에서 잠들었다가 깨어 지나가는 하은을 만나고 자기가 친구의 사정은 생각하지도 않고 여행을 가자고 우기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며 하은에게 사과한다. 그녀는 낮에 꾸었던 꿈이야기를 한다.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돌아왔는데 길가와 집에는 빛이 아스라이 비치고 아무도 없었어.
내가 키우는 앵무새 새장의 문과 창문이 열려있고 새가 없어서 찾으러 밖으로 나갔는데 노란 꽃이 핀 나무 근처에 새의 깃털만 떨어져 있고 계속 깃털을 따라가 보니 늪지에 하은이 네가 죽어있었어. 조금 후에는 너 대신 내가 죽어서 그 자리에 누워 있었고 나중에는 부모님이었다가 선생님으로 변했어. 긴 시간이 흐르고 다시 내가 네가 되었어”
세미는 하은을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하은도 세미가 바로 ‘훔바바’라며 둘은 화해한다.
집에 돌아온 세미는 앵무새에게 “사랑해”라고 속삭인다.
학교 교실에 아무도 없고 세미의 자리에 하은이 앉아서 엎드려 있다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간다. 둘이 늘 같이 타던 202번 버스에 혼자 앉아 세월호 구조가 난항을 겪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얼마 후 하은은 세미의 납골당을 찾아와서 편지를 꽂는다.
두 친구에게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은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여고생들이 겪은 일상들이다.
큰 사건을 앞두었다는 전제가 없다면 특별한 이야깃거리나 주제도 없어서 지루할 수도 있는 에피소드들이다. 주변 소음이 많이 들려서 대사도 명확하지 않고 빛도 비현실적으로 침입하지만, 감독의 의도가 그들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고생들이 방과 후에 할만한 활동들에 대한 잔잔한 묘사가 있을 뿐이다. 그들은 빙수집에 가서 빙수를 먹다가 사소한 일로 어이없이 다투며 울기도 하고, 다음날 여행 가서 입을 옷과 액세서리를 고르기도 하고, 오락실에서 두더지를 때리기도 한다. 노래방에 가서 감정을 실어 노래하다 울기도 한다. 동네 공원에서 그네를 타기도 한다. 친구의 마음이 힘들 때 그것을 해결하려고 여럿이 모여서 스토커를 찾아가서 따지기도 한다.
주인공인 두 친구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면, 절친이 다쳐서 여행에 같이 가지 못하게 되어 섭섭한 세미가 하은에게 억지로 같이 가자고 떼를 쓴다. 세미가 다정한 부모가 있는 반면에 하은은 아빠와만 사는 듯 보이고 형편도 넉넉해 보이지 않는다. 아픈 다리로라도 가기로 마음먹었다면 아빠에게 여행비를 부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캠코더를 중고시장에 팔겠다고 하는 것만 보아도 집이 경제적으로 힘들어 보이는데, 세미는 그저 같이 가자고 조른다. 세미를 좋아하기는 해도 자신과는 달리 철없어 보이기도 해서 선뜻 사정을 털어놓을 수는 없어서 하은은 인터넷 채팅을 통해 외로움을 해소한다. 그러다가 이상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가 쫓아다니고 하은은 피해 다니게 된 것이다. 캠코더를 사겠다는 사람도 그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거래를 중지하지만 세미는 사정도 모르고 캠코더를 팔지 않겠다는 하은을 원망한다. 또한 병상에 있던 일기장 속의 하은이 좋아하는 존재에 대한 의문 때문에 세미는 질투심을 느낀다.
이렇듯 세미가 철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미가 하은을 좋아하는 감정은 진실하다.
세미가 꾼 꿈속에서 처음에 늪지에 죽어있는 사람은 하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자신이 죽은 사람으로 바뀌어있었다. 결국 세미는 꿈을 꾼 후 늦기 전에 자신의 감정과 하은의 감정을 꼭 확인하고 고백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긴 하루의 오해와 사과 끝에 둘은 서로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확인하고 헤어진다. 세미가 집으로 가는 방향은 공교롭게도 병원 영안실 쪽이다. 상주들이 슬퍼하고 조화가 들어오는 가운데 잘 다녀오겠다는 말을 끝으로 세미는 영안실쪽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세미는 집에 돌아와서 못다 한 말 “사랑해”를 앵무새에게 전한다.
이제 남은 친구 하은의 이야기이다. 세미의 꿈속에서 세미와 하은이 바뀌었듯이 하은은 빈 교실 세미의 자리에 앉아 엎드려서 울고, 같이 타던 202번 버스에 혼자 앉아 눈물을 흘린다. 걷다가 놀이터의 세미가 앉아있던 빈 그네를 바라본다.
세미와 하은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희생자 생존자의 경계가 어디 있겠는가. 너와 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내 자식 네 자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