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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May 06. 2024

뮤지엄 '산'에서 나를 만나다

안도 타다오와 제임스 터렐의 공간과 빛

     

자연과 건축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공간에 가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은 이런 기준에 딱 들어맞는 곳이다. 예전에 가족들과 처음 방문했을 때도 감탄하면서 감상했었고, 이번에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한 1박 2일 여행중에 갔는데 친구들과 교감할수도 있었고 새로 지어진 장소와 전시가 있어서 여전히 좋았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은 노출 콘크리트로 주변 자연과 잘 어우러지고, 빛이 들어오는 방식이 신비하기도 하고, 항상 물과 함께 하는 특징이 있다. 또한 건물을 드러내는 방식이 긴 회랑을 거쳐 돌아서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치 사찰이 안보이는 산속에 있어서 힘들여서 올라가며 속세의 잡념을 떨치고 일주문을 통과해서 마침내 정화된 마음으로 대웅전에 도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음속을 탐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긴 명상을 통해야 무의식에 다다를 수 있고 음의 중심에 있는 자기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건축물 속에서 느끼는 경건함은 사람이 건축을 만들었지만 건축도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처음에 방문했을 때는 없었던 ‘빛의 공간’이 조각정원에 지어져 있었는데, 이번 방문 중 나에게는 가장 좋았던 공간이다. 그가 만든 일본의 ‘빛의 교회’의 사진을 보고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과 비슷한 느낌의 명상 공간을 이곳에 2023년에 만들었다. 완만한 경사의 긴 복도를 따라 내려가서 돌아서면 네모난 작은 방이 하나 나타나는데, 천장에 십자가 모양의 창이 뚫려있어서 십자가 빛이 들어온다. 빛의 교회는 벽에 있는 십자가 모양의 창에 작가의 뜻과는 달리 유리를 끼웠다고 하는데, 빛의 공간에는 건축가의 뜻대로 유리가 없이 뚫린 천창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언제 한번 비 오는 날에 가서 꼭 십자가 비를 맞아보고 싶다. 신이 은총을 빛이나 비의 형태로 줄 때, 예수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통해 지상으로 보낸다고 표현하는 듯하다. 나도 이번에 십자가 아래서 그 빛을 실컷 받았다.

    

원래부터 있었던 스톤가든은 경주의 대릉원 고분의 느낌을 준다. 그래서 마치 돌무덤 사이를 거니는 것 같다. 경주에서도 어머니 젖무덤 같은 고분 사이를 걸으면 마음이 편안해진 적이 많았었다.

이곳에도 예전에는 없었던 명상관이 생겼고 체험 프로그램도 생겼다. 돌무덤 안에 공간을 만들고 긴 슬릿 형태의 천창을 내서 빛을 들였다. 허브향을 맡으며 싱잉 볼 연주를 들으며 눈을 감고 누워 있으니 마치 미래의 죽음을 미리 체험하는 것 같았다. 나도 언젠가는 땅보다 낮은 곳에 한줄기 빛이 새어 들어오는 공간에 영원히 잠들 것이다.  

   

새로운 전시로는 우고 론디노네의 ‘BURN TO SHINE’이라는 전시가 있었다. 백남준 전시관은 로마 판테온 신전처럼 큰 원형 공간에 천정에서 빛이 들어오는 천창이 있는 멋진 공간인데 그곳에 ‘수녀와 수도승’ 작품 중 가장 큰 ‘노란색과 빨간색 수도승’ 홀로 전시되어 있다. 작품에서 강렬한 두 색의 대비와, 머리와 수도복을 입은 큰 몸통만 단순하게 구분한  형태가 전시공간과 잘 어우러져 묵직한 감동을 준다. 어떤 때는 대리석으로 얇은 베일의 주름까지 표현하는 조각의  섬세함이 좋기도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표현이 더 감동적이기도 하다. 야외 공간에도 6점이 전시되어 있다.

     

다음은 제임스 터렐관이다.

모든 예술가들이 빛을 이용하기도 하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임스 터렐은 빛 자체를 느끼게 해주는 예술가다. 특정한 공간 속에서 빛을 받음으로써 내가 존재함을 느끼게 해 준다.

나아가서 차원을 이동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한다. 산 모양의 계단을 올라가서 문으로 나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 마치 그 사람이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것 같다.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또는 지구에서 우주로 나가는 듯해서 또 다른 세상이 저 밖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 ‘트루먼 쇼’의 마지막 장면에서 트루먼이 꾸며진 세트의 세계에서 실제 세계로 나갈 때의 모습과 흡사하다.

주말에 해 질 무렵 실시하는 프로그램인 ‘Colorful Night’에서는 문의 색과 하늘에 있는 타원모양의 천창의 색이 변화무쌍하다는데 아직 보지 못해서 아주 궁금하다.

     

‘Ganzfeld’라는 방의 체험은 신비롭다.

이 용어는 독일의 심리학자 볼프강 메츠거가 48시간 동안 피실험자를 암흑에 가두고 관찰하니, 그들이 끝없는 환각을 본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주창한 개념인데,  인간은 시각자극을 받지 못하면 거짓 신호를 만들어 무자극 상태를 빠져나가려는 시도를 한다고 한다. 이런 상태가 오래되면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지 못하는 비정상 상태가 되지만, 짧은 시간이라면 무의식 깊은 곳의 지혜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영적인 신비체험을 할 수도 있다.

이 방에서는 원래의 심리실험에서처럼 암흑상태는 아니고, LED빛을 통해 관람자들이 빛의 안갯속을 헤매는 경험을 제공한다. 작은 공간이 한계가 없는 공간으로 착각되고, 뚫린 문이 마치 막혀있는 스크린으로 착각되고, 쏘는 빛의 색이 달라지면 뚫린 공간의 색이 그것의 보색으로 변한다. 절대적 진실은 없는 것으로 느껴지고 저세상의 감각이 생긴다.

처음에 해설자가 벽인 줄 알았던 공간 속으로 쑥 들어갈 때는 마치 영화 화면이나 그림 속으로 사람이 들어가는 것 같아서 충격을 받았었다. 저승으로 갈 때 무게를 벗은 사람의 영혼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하다.

    

‘Wedgework’라는 작품을 감상하는 방으로 들어가는 복도는 절대 암흑이다. 도시인들에게는 빛을 완벽하게 차단당한 경험이 별로 없다. 잠잘 때 침실에도 작은 불빛이 있는 환경이 대부분이어서 이런 어둠을 경험하는 것이 특별하다. 그러다가 방에 들어가면 희미한 빛이 느껴지는데 마치 내 방에 불은 꺼지고 살짝 열린 문틈으로 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느낌이다. 작가가 어릴 때 혼자 어두운 방에서 무서울 때 밖에서 빛이 새어 들어와서 안도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창작했다고 하는데, 어른인 나에게는 꽉 막힌 마음에 한줄기 희망을 선물하는 빛으로 느껴졌다.

나올 때 보니 암흑의 복도는 생각보다 짧았다. 들어갈 때는 길고 끝이 없던 암흑이 나올 때는 짧게 느껴졌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볼거리가 많은 뮤지엄은 많다. 그러나 사유와 명상까지 할 수 있는 박물관은 많지 않다.

주변의 자연과 전시물을 천천히 둘러보며 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뮤지엄 ‘산’ 같은 공간에 가면 숨어있는 나를 만날 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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