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귀한 외손주가 태어났다고 기뻐하며 점심턱을 내었다.모임 장소를 국립 중앙 박물관 안의 식당으로 잡는 덕분에 오랜만에 박물관 나들이를 했다.
박물관에 갈 때마다 선사시대의 흔적과 유물에 감동을 받았었다. 우리가 원시인이라고 생각하는 선조들이 암벽에 자신의 흔적을 새긴 것을 보면서, 인간은 시대를 불문하고 자신은 사라져도 무언가를 전하려는 욕구가 있다는 것에 진한 공감을 느꼈다. 박물관에 와서 그들이 보내는 신호를 해독하노라면 까마득히 먼 시대와 나의 시간이 합쳐지는 듯 하다.
이번 방문에서는 ‘사유의 방’이 제일 궁금했다. 그 전시를 한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게으른 탓에 아직 보지 못했었다.
명성만큼이나 울림이 묵직하다. 반가사유상 두 점에게 잘 구성된 큰 공간 하나를 내어 줄 이유가 충분했다는 생각이다. 보통 들어가자마자 다짜고짜 전시물이 있는 방과는 달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입구의 통로가 제법 길다. 경건한 마음을 가지려면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산중에 절이 있는 것은 산을 오르면서 속세의 욕망을 버리는 예비 작업을 하라는 의미일 수도 있는 것이다.(차로 절의 입구까지 가는 것은 그저 관광일 뿐이다.)
어두운 통로의 한쪽에는 비디오 아트벽이 있고 두 벽은 의도적으로뒤로 갈수록 살짝 넓어지게 하여 시각적인 평행을 유지하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무한의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돌아 들어가서 저 멀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두 불상을 만날 수 있었다. 살짝 경사가 있는 바닥을 딛고 멀리 있는 불상을 올려 보다가, 다가가서 정면과 측면 후면까지 한 바퀴 돌며 천천히 감상한다.
외국인들까지 감탄한다는 불상의 미소를 어릴 때는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었다. 이제 나이가 들고 심리학 공부도 하고 보니, 내면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자기를 찾은 인간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의 미소가 저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처’라는 말의 뜻도 ‘깨달은 자’라는 것인데 그 경지를 예술품으로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린다.
전시의 목적과는 다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두 불상의 크기나 머리에 쓴 관의 장식이나 화려함이나 표정이 서로 살짝 달라서, 한쪽은 여성적으로 다른 한쪽은 남성적으로 보인다. 두 불상이 같이 앉아있는 모습이 그래서 더 조화롭게 여겨진다. 잠시나마 이 공간에 들어와 내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를 그려볼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도 신비로운 미소가마음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시대는 달라져서 과거의 박물관의 전시와는 다른 매체가 등장하였다. 여러 부문에 실감 영사관을 만들어 놓았고, 그중 특히 파노라마 실감 영사관에서는 감탄이 나왔다. 우리나라의 디스플레이 기술이 세계에서 제일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코엑스 외벽의 파도 영상이나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장에 있는 빌딩의 폭포 영상에서 확인했고, 나도 강릉까지 가서 비싼 티켓을사서디스플레이 뮤지엄도 체험해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운 박물관에 스토리 라인까지 갖춘 무료로 볼수있는 훌륭한 콘텐츠가 있는지는 몰랐다. 삼면을 스크린으로 감싼 파노라마 영사관에서 다양한 문화적 주제로 상영하는 작품은 둘러싼 영상 속으로의 몰입감이 대단했다. 바닥까지 영상이 들어오는 작품의 경우는 완전히 그 세계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금강산의 사계를 보여주는 작품에서 상하좌우로 장면을 보여줄 때 마치 내가 거대한 비행선을 타고 산을 구경하는 듯했다.
'영혼의 여정'
박물관 전시관은 3층이지만 가운데 부분을 비워서 3층 천장까지 뚫린 공간감이 좋았다. 그것을 살려, 높고 예술적인 고려 시대 유물인 경천사지 석탑을 세워놓았다. 실내에서 탑을 관찰하게 되니 낯설어지는 효과가 있어서 오히려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세월이 많이 지나 마모되기는 했지만 하나하나에 세밀한 조각이 있었다.
유럽에 가서 보면 기독교 예술이 많아서 구약의 성경 이야기나 예수의 생애를 벽화나 조각의 소재로 삼는다. 우리나라 예술에서 탑은 형상에만 집중한 것이 많았는데 이렇게 불교의 이야기를 자세히 조각한 탑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것도 조각을 확대하고 해설한 것을 영상으로 제작해서 상영한다고 하는데 다음에는 시간을 맞추어 관람하고 싶다.
고려 경천사지 10층석탑
마지막으로 이번에 다시 발견하고 감동받았던 작품은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였다.
알랭 드 보통도 그의 책 ‘영혼의 미술관’에서 조선의 달항아리 백자에 대해 그 안에 담고 있는 ‘겸손함’에 대해 길게 묘사한 적이 있었다. 그것을 우리는 박물관에서 직접 볼 수 있다.
고려의 청자나 조선의 채색되고 치장된 도자기와는 달리, 달항아리 백자는 그저 둥글고 심지어는 완벽하지 않은 타원 모양에 약간의 얼룩까지 있다. 달항아리는 사람들에게 특별하려고 기를 쓰면서 자신을 꾸미는 대신, 치장하지 말고 자신의 결함까지 드러내는 겸손한 인간이 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준다. 소박함에서 오는 이런 묵직한 감동은 오랜만이다.
과거와는 다른 전시 방법으로 눈 내리는 밤에 눈꽃이 핀 나무를 배경으로 항아리를 닮은 둥근달이 떠오르는 동영상이 마치 창밖 풍경처럼 배경으로 받쳐주며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었다.세월이 흘러 강산이 바뀌는 것을 묵묵히 그자리에서 오래 지켜보고도 품어준 달항아리의역사를 보는듯 하다.
자신만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지며 다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겸손한 달항아리를 닮고 싶다.
조선 백자 달항아리
종교가 없는 나에게 박물관은 내성과 사유의 공간이다. 성당 건축과 사찰의 공간에서 느끼는 경건함과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박물관에서도 느낀다. 신자들은 질색할지 모르지만 요즘의 종교시설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기도 하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종교시설 같기도 하다. 모두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려고 만든 것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전시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는 박물관의 노력이 참 좋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