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웃는 아기

불꽃놀이같이 퍼지는 너의 웃음

by 윤병옥

손녀가 태어난 지 벌써 5개월이 지났다.

다소 까다로웠던 내 아들들에 비해 손녀는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할 경우가 아니면 잘 울지도 않고 순하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혼자 순둥순둥 누워있다가 가족이 다가가면 환하게 웃어주어서 모두의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든다.

아기가 웃으면 온 우주가 반짝인다. 하늘에서 불꽃놀이를 하는 것 같다.

배부르게 먹이고 눕힌 뒤 얼러주면 손녀는 눈이 안 보일 정도로 초승달 모양이 되고 입을 크게 벌리며 활짝 웃는다. 더 기분이 좋을 때는 소리를 내고 온몸을 물고기처럼 파닥이며 기쁨을 표현한다.

하지만 배가 고프거나 졸리거나 기저귀가 찝찝할 때는 절대 웃지 않는다. 기다려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으면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달랠 타임을 놓치면 세상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하고 어른들은 진땀을 흘리며 쩔쩔맨다. 이와 같이 아기는 전 존재로 자신의 상태를 보여준다. 따라서 아기가 편안하도록 제때 잘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놀아주는 것이 어른들이 할 일이다.

아주 가끔 낮에 너무 과하게 놀았던 날 저녁에 못 자고 서럽게 울 때가 있는데, 이럴 때 할머니의 진가가 드러난다. 누구도 달래지 못할 때 내가 등장해서 안아주면 진정되고 잠이 드는 것이다. 내가 허리가 좋지 않은 편이라 가족들이 아기를 안지 말라고 하지만, 이럴 때 안아주고 아기가 품 안에서 잠드는 것을 보면 너무 행복하다. 그나마 시간이 더 지나면 더 힘들어질 테니 지금 아기를 돌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들만 둘을 두어서 그런지 손녀의 모습이 새롭고 예쁘다. 물론 아들들도 아기였을 때 귀여웠지만 손녀처럼 돌보는 사람 눈을 오래 들여다보며 미소를 짓거나 애착 베개를 우아하게 쓰다듬지는 않았었다.

또 항상 나와 사이가 좋은 며느리도 예전에는 아기 없이 그냥 집에 손님처럼 왔었다면 이제는 집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생활하게 되니 진짜 식구가 된 느낌이 든다. 서로 체면 차리느라 가렸던 부분들이 저절로 공개가 되어서 가족처럼 정이 들었다.

딸이 없는 남편이나 여자 형제가 없는 큰아들의 행동이 한결 조심스러워졌다. 아내나 엄마인 나는 여성이라기보다는 당연한 존재로 대했으나 며느리와 손녀에게는 한결 부드럽게 대하는 것이 보인다.(물론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 이래서 집에는 남녀의 성비가 비슷해야 좋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아들들이 성장하면서 남편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떠올리며 많은 것을 용서하게 되었다. 거꾸로 딸이 있었다면 남편도 나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고 아이를 낳고 고생하는 아내를 이해하며 여성성을 키웠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억울하기는 하다. 그래도 며느리와 손녀가 집안에 들어오며 뒤늦게라도 남편이 과거에 나에게 잘 못 해준 것에 대해 각성하기는 한 것 같다.

양가의 조부모들이 육아에 참여하다 보니 옛날 대가족 사회에서 아이들이 자라던 환경과 비슷해졌다. 나는 과거에 지독한 개인주의자여서 가능하면 혼자 육아를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덕분에 고생도 많이 하고 아이들이 엄마의 영향만 너무 많이 받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 아이의 입장에서 어떤 쪽이 좋을까 생각해 보면, 여러 세대의 손길과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물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요즘 젊은 부모의 육아 방법이 다르다는 것도 인정해주어야 하고, 조부모가 귀한 시간을 내서 사랑과 도움을 준다는 것에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생식이 끝나도 오래 사는 이유를 인간의 유아기가 길어서 조부모가 바쁜 부모를 도와 육아를 거들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인생 전체의 발달 단계 중 마지막 단계인 노년이 된 지금, 손녀를 돌보며 나의 마지막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남은 에너지를 잘 쓰고 멋지게 퇴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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