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펜' 친구들
50대를 심한 갱년기 증상에 시달렸다. 발열에 불면에 심한 빈혈까지 컨디션은 최악이었고 심할 때는 2층 계단을 오르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 힘든 시기에도 나를 깨워서 움직이게 한 동력은 공부하는 친구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일이었다. 아이들 키우느라 누르고 있던 열정이 샘솟았다. 물론 항상 책을 읽었으나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만을 읽었었다. 그러나 일단 스터디 그룹이 형성되니 멤버들의 취향이 고려되어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정독할 수 있었다. 문학 작품, 심리학, 사회 과학, 심지어 경제학과 법률에 관한 책까지 읽었고 각자가 가진 생각들을 들을 수 있었다.
가까운 지역에서 운 좋게 진지하고 순수한 친구들을 만나서 오랫동안 공부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한다. 60여 년의 삶에서 10년 가까이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행운을 누렸다.
공부 모임의 이름이 ‘형광펜’이었다. 총기가 가득한 친구들은 돌아가며 당시에 화제가 된 책들과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 분야의 책들을 추천하여 읽을 기회를 주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때 대학원을 다시 다니는 듯한 기쁨을 맛보았었다. 공부도 안 하고 그냥 늙어가는 것에 실망하고 있을 때 나에게 생기를 주었던 유일한 모임이었다.
어느덧 내가 연로하신 90대 양가 부모님들을 보살펴 드리느라 시간을 뺄 수 없는 순간이 왔고 모임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섭섭했지만 미룰 수 없고 우선순위가 높은 일부터 해야 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 대신에 그때부터 나의 세계를 표현하는 글쓰기를 시작하였는데 나에게서 술술 글이 흘러나왔다면 이전에 이 형광펜 모임에서 쌓은 자양분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러 카페를 다니며 옆 테이블에서는 수다가 한창일 때 우리는 열심히 읽고 밑줄치고 형광펜으로 표시해 온 책을 들고 와서 공부했던 기억은 내 삶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학교 다닐 때처럼 의무로 읽는 책도 아니고 능동적으로 선택한 책의 내용은 나의 한계를 넓혀주었다.
가끔의 무해한 수다는 마음의 불편함을 해소하기도 하지만, 너무 소소한 대화를 하는 모임만 하면 유한한 시간을 무의미하게 쓰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순수한 친구들과의 공부 모임은 나에게 아주 중요했다.
끝없는 일상의 세계에서 형광펜을 들고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던 친구들과 아직도 가끔 만난다. 자식들 이야기는 조금 하지만 명품 이야기, 재테크 이야기는 우리 사이의 대화의 목록에는 없다. 그래도 이 친구들에게는 빛이 난다.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의지가 있고 약간의 경제적인 여유만 있다면 누구나 세상을 보며 느긋하게 사유하고 생각의 낚싯줄을 드리우고 사는 사람이 될 수 있는데 실제로 세상에 그런 사람이 많지는 않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그러기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영화 <패터슨>에서 운전기사인 패터슨이 일하며 노트에 시를 쓰듯, 세상을 주의 깊게 보면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 사람은 두개의 캐릭터를 가질 수 있어서 생활인이면서도 시인이 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일상의 일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인생의 강물에 떠내려가는 의미들을 건져서 배열할 수 있다.
그러니 인생이 지루하다고 불평하지 말고 각자의 도구를 들고 의미를 찾으면 된다.
생각의 낚싯줄인 형광펜을 들고 오늘도 의미를 밝히는 친구들이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