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토산 마당바위에서 새해를 맞는다

2026년 1월 1일

by 윤병옥

아이들이 어릴 때는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기 위해 정동진까지 가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하고는 이런 행사는 더 이상 없었다. 태양은 매일 떠오르니 새해 첫날 뜨는 해가 특별할 것도 없다고 시큰둥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새로운 경험이 별로 없는 노년에 진입하니 똑같은 일상이 무한대로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에 마디를 만들어서 속도를 늦추고 리듬을 만들어야겠다는 위기감이 생겼다. 매일이 똑같고, 매주가 똑같고, 매년 똑같다면 오래 산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람들이 지키지도 못할 새해 결심이나 계획을 왜 세우는지 이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그해도 지난해와 똑같을지 몰라도, 적어도 시간의 마디에서 멈추어 앞과 뒤를 살피며, 관성으로 가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시간의 마디 중 대표적인 것은 명절이나 축제이다. 특정한 날의 전후에 사전에 준비하고 행사를 치르고 이후에 돌아보는 과정은 무심히 흘러가던 시간을 멈칫거리게 만들 수 있다.

이 중 시작의 의미를 갖는 것이 대표적으로 입학식이나 설이나 새해 첫날이다. 지키지 못할지라도 이런 날 미래에 대한 설계나 다짐을 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최소한 생각을 하고 사는 삶인 것이다. 설은 명절의 느낌이 진하다면 새해 첫날은 양력으로 해가 바뀌는 첫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해 아침 뜨는 해를 보려고 고생이 되더라도 해돋이 명소를 찾아간다.

우리 동네에는 청계산의 지류인 ‘금토산’이 있다. 고도는 낮지만 숲도 예쁘고 산책길도 좋아서 주민들이 많이 찾는 장소이다. 산의 정상 근처에는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넓은 바위가 있다. 이 바위의 이름은 ‘마당바위’이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시가지 건너 저편의 산에서 해가 떠오르는 일출은 유명해서 멀리서도 구경하러 온다. 이천 명도 넘는 사람들이 참석한다고 한다. 마당바위에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어서 해 뜨는 시간은 7시가 넘지만 5시 반 정도까지는 바위에 도착해야 바위 위에서 일출 장면을 볼 수 있다. 물론 늦게 가도 뒤에서, 혹은 해가 산 위로 올라왔을 때 볼 수 있다.

나는 이곳에서 십수 년을 살았지만 게을러서 한 번도 새해 일출을 본 적이 없었다. 올해는 일기예보에서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고 강풍이 분다고까지 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털모자에 장갑, 목도리, 핫팩까지 챙겼다. 일찌감치 올라가서 마당바위 앞줄에서 일출 순간을 볼 수 있었다. 아직 해가 뜨기 전 캄캄한 새벽이라 길이 보이지도 않는 시간이지만, 주민 자치센터의 위원들이 미리 준비하고 설치한 청사초롱이며 랜턴이 곳곳에 있어서 위험하지 않았다. 경찰이며 공무원들이 안전 관리까지 해서 안전한 산행길이 되었다. 청사초롱이 산길을 줄지어 밝히고 있으니 환대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 길을 따라 산을 올라가서 넓은 마당바위에 도착하여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뜨는 해를 기다렸다. 천제를 올리는 동안 같은 동네에 살지만 알지 못하는 이웃들과 함께 서서 서로를 축복해 주고 가족의 안녕과 새해의 소원과 계획을 떠올렸다.

수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는 것만 진정한 일출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번에 본 일출은 기대 이상이었고 신선했다. 해가 뜨는 순간,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며 옆에 서 있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전해 주었다.

많은 사람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서 있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떠오른 해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빛을 뿌려주었다. 신의 눈으로는 사람들의 사소한 차이가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없는 나에게 빛은 신의 은유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내리는 빛은, 신은 누구도 특별히 사랑하지 않고 특별히 미워하지도 않는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런 순간 누구도 자기에게만 복을 내려달라고 기도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웃과, 다른 나라와, 세계 전체를 평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그래서 혼자 하는 개인적인 기도도 중요하지만 함께 모여서 동시대에 같은 지구에 사는 존재들과 함께 하는 기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해를 보고 기도한 사람들은 새로운 마음으로 산을 내려와서 주최측에서 준비한 가래떡을 선물받고 도서관 앞에서 마련한 전통 놀이도 할 수 있었다.

게으르기도 하고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진 내가,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시간의 마디를 느끼려고 노력한다. 케이블카가 가다가 기둥에 덜컥 걸려서 흔들리는 것처럼 잠시 흔들리며 속도를 늦춰보려 한다.

해돋이를 보러 오기를 정말 잘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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