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의 외피를 쓴 심리학 책

책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by 줄리애나 배곳

by 윤병옥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경험하듯이, 모든 책이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잔뜩 기대하고 샀는데 별로인 책들도 많고, 대충 훑어보고 얼마 후 재활용 처리장으로 보내는 책들도 많다. 이런 것을 방지하려면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해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좋은 문장에 꼭 밑줄을 쳐야 직성이 풀리는 나의 독서 습관 때문에 결국 좋은 책은 사게 된다.

영화도 보고 나면 시간이 아까운 영화도 있지만 기대도 안 했는데 너무 좋아서 여러 번 관람하는 영화가 있듯이, 책도 우연히 만났는데 보물을 건질 때가 있다. 이런 책은 서두만 읽어보아도 벌써 명작의 향기가 풍긴다. 이럴 때는 제대로 자리를 잡고 한 문장 한 문장 아껴가며 천천히 읽는다.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을 아쉬워하며 몇십 페이지를 읽고, 쉬면서 내용을 음미한다. 이렇게 읽으려면 줄거리가 이어지는 장편보다는 단편이 좋고, 하나씩 독립성이 있는 글인 에세이가 좋다.

시간 낭비와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문가의 유튜브 채널을 활용한다. 좋아하는 평론가의 추천을 받으면 다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실패를 막을 수가 있다. 영화도 책도 이런 방식으로 일정 부분 거른 다음 선택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내 손에 들어온 책이 줄리애나 배곳이 쓴 단편집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은 아니다』라는 책이다. 책을 읽고 울컥하며 눈물이 난 것은 20대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젊은 시절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책을 읽다가 눈물이 나는데 멈출 수가 없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사연 있는 여자로 보인 적이 있었다. 또 다른 경우는 버스에서 독서를 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서 간신히 눈물을 삼킨 적이 있었다. 그 이후는 생활하느라 바빠서, 아니면 내 마음이 딱딱해져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에 산 이 단편 소설집을 읽고 감탄하고, 감동했다. 작가의 차원이 다른 뛰어난 재능에 시기심조차 일지 않았다. 분명 SF소설 쪽인데 다루는 분야는 인간의 마음이라, 설정에 감탄하다가 이야기하려는 주제에 다가가면 감동을 주는 식이다.


책 제목을 가져온 단편은 <포털>이다.

“어느날 갑자기 세상 곳곳에 포털이 생긴다. 구멍들의 형태는 다양했는데 소파의 쿠션 안쪽이거나, 수영장 배수구이거나, 타이어 그네 한가운데이거나, 공원에 있는 구덩이들이었다. 이곳에 접근하여 손을 대면 다치거나 통째로 빨려들어 간다. 많은 사람이 포털의 존재를 알게 되고 슬픔은 우주에 구멍을 뚫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힘든 일이 사람들을 짓누르자 그것에 대처하는 심리적 기제가 무너진다. 슬픔을 안으로 꽁꽁 묻다 보니 응어리가 되고 포털을 통해서만 그것을 만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은 포털을 통해 그것을 해소하고 어떤 사람은 그것에 매몰된다.

슬픔뿐만 아니라 두려움, 원하는 것, 비밀, 수치심도 우주에 구멍을 낼 수 있다. 그것들은 포털 속에 여전히 존재한다.

동성애자인 주인공은 세상의 눈 때문에 자신의 비밀을 감추고 자기가 좋아했던 죽은 친구를 포털을 통해 접촉한다. 다른 사람의 포털에 들어가 그들의 비밀도 공유하게 된다.”


해결되지 않는 슬픔과 비밀, 트라우마가 개인의 무의식에 들어가 하나의 우주를 만든다. 그 압력은 언젠가는 표면에 균열을 일으키고 작가는 이를 ‘포털’이라고 부른다. 상처와 트라우마 투성이의 인생에서 무의식을 이해하고 화해하는 심리학적 과정을 공상과학적으로 묘사한 작가의 경이로운 상상력과 통찰력이 놀랍다.

한편, 나에게 가장 감동을 준 단편은 <역노화>였다.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고 자기중심적이었던 아빠가 80세가 넘어 병에 걸려서 죽음을 앞두고 있다. 치료가 가능하지 않은 단계에서 그는 치료를 포기하고 ‘유전자 역전’을 선택한다. 이는 하루에 약 10년씩 젊어지다가 결국 어린 나이로 죽게 되는 방식이다. 일주일 정도의 이 과정에 참관인으로 하나뿐인 딸이 동반하게 된다. 아빠가 재혼하고 절연한 후 냉담해진 딸은 내키지 않지만 참여한다. 침대에서 아무것도 못하던 아빠는 하루하루 원기왕성한 70대, 오만한 개자식인 60대, 넘치는 정력을 과시하며 아무한테나 추파를 보내는 50대로 돌아간다. 40대의 중간에는 딸이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가 될 것이므로 그는 딸을 보며 딸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아빠가 자신에게 용서와 화해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그런 말을 할 인간이 아니다. 어느 순간 34세의 딸과 나이가 같아지는 지점이 온다. 이제 남은 시간은 별로 없다. 20대의 아빠는 변덕스럽지만 즐길 줄 알았고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멋지게 부르더니 마지막으로 부른 것이라며 씁쓸해한다.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 맥주병으로 맞아서 생긴 흉터가 드러난다. 그것이 어느 시점 진해졌다가 없어진다. 딸은 10대의 아빠가 야구를 하는 것을 응원석에서 바라본다. 아빠는 자신이 자랐던 집에 가보고 엄마를 기억한다. 딸이 제일 좋아하는 아빠의 9살 시절은 지저분한 무릎을 하고 숲속에 들어가서 개똥벌레를 잡아 유리병에 넣던 때이다. 드디어 아빠는 유아가 되었다. 말을 못하는 그를 안고 딸은 울음이 터뜨린다. 그의 귀여운 얼굴을 내려다보니 그가 손을 올려 딸의 얼굴을 만진다. 그녀는 사랑하는 아빠를 용서하기로 한다. 그리고 아빠에게도 용서를 구한다.”


‘역노화’라는 단어는 흔히 주름을 펴는 시술이나 건강해지는 영양제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역노화는 세포가 모두 젊어지는 신기술을 의미한다. 하루에 10년씩 젊어지다가 결국 신생아가 되고 더 가면 폐나 심장이 미발달하는 단계가 되어 죽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세부적인 기술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지 사람의 일생을 다시 되집어 보는 것의 은유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는 전능하고 사랑을 주어야만 하는 존재여야 하지만, 부모도 우리와 똑같이 그냥 미성숙한 존재일 뿐이다. 누구나 중장년이 되면 어릴 때 부모의 나이보다 많아지는 시점이 온다. 그러면 그들도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방황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을 나중에 어떤 계기로 하나 둘씩 알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을 작가는 역노화라는 기발한 발상으로 목격하게 한다.


작가는 자신은 아빠에게 남은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빠를 사랑하고, 그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사과하기를 바란다. 아빠의 일생을 추적하며 아빠가 어릴 때 할아버지의 폭력을 견디고 할머니를 그리워했던 사실도 알아낸다. 아빠도 사랑스러운 아기로 태어나서 사랑받고 싶었던 존재였었다. 결국 소설은 자신도 아빠를 용서하고 여전히 아빠를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빠의 사랑을 받기를 원했다는 것을 고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보통 사람들은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나 배우자의 어린 시절을 상상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미숙함이나 잘못을 용서하게 된다. 또 가끔은 옛날 사진을 보거나 특정 음식을 먹으면서 과거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때의 그들의 모습을 재현해낸다. 그리고 섭섭했던, 또는 미워했던 가족을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을 고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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