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음식

선재스님의 사찰 비빔밥

by 윤병옥

지난번에도 <흑백 요리사 2>에 나온 선재스님의 ‘승소 잣야채국수’에 반한 이야기를 썼었다. 그 음식을 꼭 한번 먹어보고 싶기는 하지만 내가 만들기에는 내공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일단 푸른 채소와 호박을 익혀서 간 물로 밀가루 반죽을 하고 집에서 국수를 뽑는 일도 어렵고, 거기에 국산 잣의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진한 국물을 내기에는 비싸기도 하다.

스님이 만든 다른 음식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계란이나 햄 대신 두부를 노릇하게 부쳐서 조린 후 넣어서 만든 두부김밥도 괜찮아 보였고 사찰 비빔밥도 맛있어 보였다.

불가에서는 음식을 먹는 공양을 수행의 한 과정으로 본다. 스님도 몸이 너무 약했으나 사찰에서 하는 공양을 통해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일반인들에 비해 스님들의 건강 상태가 좋은 것으로 보아 육식만이 건강식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채식과 사찰 음식이 동의어는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생채소를 과한 향신료와 오일에 범벅하여 먹는 샐러드나 파 마늘을 많이 넣고 자극적으로 버무린 나물도 사찰 음식과는 거리가 멀다.

채소에서도 잎채소와 열매와 뿌리채소를 적절히 섞어 간장과 된장으로 과하지 않게 양념하여 먹는 사찰 음식은 몸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면서도 사람을 차분하게 만든다. 채소에 부족한 지방과 단백질은 식물성 기름이나 콩으로 만든 식품으로 보충한다. 여름에 먹는 콩국수나 잣국수, 채소튀김 같은 별식과 들기름 참기름 깨 같은 재료도 스님들에게는 좋은 식품이다.

나는 평소에도 비빔밥을 좋아하고 가끔씩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비빔밥이 쉬워 보여도 재료가 다양해서 은근 손이 많이 간다. 그래서 혼자 먹으려고 만들기에는 번거롭고 손님이 오신다고 하면 할 만하다. 남은 재료는 김밥을 만들 때 쓰면 된다.

그러나 식당에서 사 먹을 때와 마찬가지로 집에서도 고기를 볶아서 얹거나 계란 프라이를 얹어서 내는 경우가 많았다. 또 양념장은 대부분 고추장 베이스로 만든 소스였다. 솔직히 여러 나물과 볶은 고기와 계란을 넣고 고추장에 비빈 비빔밥은 범벅이 되어 무슨 재료가 들었는지도 잘 모른다. 센 고추장 맛에 덮여 다른 재료의 맛이 죽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선재스님이 만든 사찰 비빔밥은 달랐다. 안성재 심사워원도 먹어보고 '겸손'하지만 조화로운 음식이라며 극찬하였다. 재료도 뿌리채소와 잎채소, 열매, 버섯이 섞여 있고 그것을 간장, 된장 베이스로 만든 소스에 비벼 먹는 것이었다. 여기에 킥으로 들어가는 재료가 청양고추이다. 밋밋할 수도 있는 요리에 볶은 청양고추는 액센트를 주었다. 멋진 요리지만 어려워 보이지는 않아서 나도 도전할 만했다.

방송에서 본 대로 뿌리채소인 우엉과 당근은 채 썰어서 볶았고 시금치와 배추는 데쳐서 무쳤다. 오이는 살짝 절여서 물기를 짜서 볶고 표고버섯도 채 썰어서 볶았다.

가장 중요한 것이 비빔장이었다. 청양고추를 다져서 들기름에 잘 볶아 매운 기를 날리고 숨을 죽인 후 간장을 넣고 볶다가 다시마 우린 물로 농도를 맞춘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청양고추와 호박과 표고버섯을 잘게 다져서 볶다가 된장을 넣고 다시물로 농도를 맞추어 강된장 비슷한 소스를 만든다. 취향에 따라 비빔장을 선택하여 비벼 먹으면 된다.

결과는 아주 훌륭했다. 당근과 우엉은 서로 씹는 식감과 향이 달랐고 배추 나물은 연한 시금치나물과는 다르게 아작아작했다. 표고는 고기처럼 쫄깃했고 오이는 꼬들했다. 비빔장에 들은 청양고추는 매콤한 청량감을 주었다. 다양한 재료에서 느껴지는 식감과, 재료를 해치지 않고 조화롭게 섞어주는 소스까지 아주 맛있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정화된다는 느낌을 주는 진정한 음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찰 비빔밥을 만들고 먹으니, 나도 수행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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