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술(The Art of Happiness)의 연마하고 실천하기
어둡게 침잠하고 싶지 않아
과거에 대한 회고
기존에 하는 일도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생계를 위해 꾸역꾸역 해나가고 있던 중 구조조정으로 희망퇴직을 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직장에서 의미와 자아실현을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성인으로 생계를 위한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내 인생에 대한 책임감, 내가 일을 그만두면 당장 생활비 나올 데가 없는 상황에 생계로 책임감으로 버텨가고 있는 직장생활이었다.
그 가운데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달리기도 하고, 심리상담도 받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 칭찬일기도 쓰고, 감사일기도 쓰고 있었다. 견뎌내기 위한 시도들이었는데, 이렇게 직장을 그만두게 되니 다시 마음이 가라앉을까 두려움이 생겼다.
가정의 아픔, 생계의 어려움,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지난 10년을 보냈다. 대학에서 심리상담을 전공했다. 나에게 있었던 일, 우리 가정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상처의 원인과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들을 체득하고 싶었다. 심리학은 너무 재미있었다. 이론 자체도 재미있었고, 실습도 재미있었다. 4학년 때까지 상담대학원 진학을 고려했었다.
심리분야는 전공을 살려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석박사 이상 공부해야 하는데 당장 생활비도 없는 가운데 그럴만한 여력이 없어서 대학원 진학보다 취업을 선택했다. 학교를 다닐 때부터 스스로 견딜 수 없이 힘이 들 때마다 교내 상담센터를 찾았다. 그 순간의 어려움들을 혼자 견뎌내기보다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스스로를 다그치고 또 다그치고, 몰아세우고, 나아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우울증을 겪기도 했고, 병원치료를 받지 않더라도 틈틈이 가라앉는 감정과 마음속에서 홀로 동굴 속에서 지내는 시간들이 많았다. 그럴 때 심리 전공서적을 찾아보기도 했고, 심리 관련 서적과 관련 영상을 보면서 정보를 습득하곤 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도 받고,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고, 관련 상담 서적들을 보면서 정보를 얻기도 한 결과 도달하게 된 종착점은, 세 가지였다.
1. 결국, 나의 생활 패턴과 생각 패턴이 변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
2. 결국, 아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3. 결국, 심리 건강은 뇌 건강과 신체 건강과 연결되어 있다.
일단, 행복하고 다시 시작할게요
일단, 지금, 오늘부터 행복하고 싶은 염원을 담은 다짐
퇴사를 하고 집에 머물면서 가라앉게 될 내 모습이 두려웠다. 다시 무겁게 침잠하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전공 공부를 하고, 상담 관련 서적을 통해 얻었던 실천의 방법들과 지식들을 체화하고, 심리 상담을 통해 얻게 된 인사이트를 정리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다시금 나를 일으키고 싶었다.
조건이 충족이 되어서 행복한 것도 있지만, 행복하고 긍정적인 뇌를 만들어야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이 변화무쌍한 세상 가운데에서 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직과 재취업을 고민하기 전에 나의 행복을 먼저 응원하기로 했다.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은 나의 모습을 방치하는 대신에 행복의 실천을 먼저 실행해 보기로 선언했다.
나의 닉네임을 “일단”으로 정했다. 생각이 많고, 생각만 많은 나에게 실행력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생각만 하지 말고, 생각만 많이 하지 말고, ‘일단’ 해보자, 일단아. 나의 닉네임을 스스로에 불러주면서 이름답게 살아보자.’ 하고 나를 격려했다. 슬로건처럼 한 마디를 크게 외쳐보았다.
"일단, 행복하고 다시 시작하자."
신경가소성, 우울한 뇌의 변화에 대한 희망
신경가소성을 통한 행복한 뇌 만들기
퇴사 기간 동안 나의 프로젝트를 “행복의 기술 실천하기 “로 정했다. 집에 심리 상담 전공책을 비롯한 책들이 꽤 있는 편이었다. 이사를 하면서 가지고 있던 책들의 1/3을 이상을 정리했지만, 힘들 때마다 사서 보던 심리 관련 책들이 여전히 책장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라는 말이 생각났다. 지금의 가라앉은 감정과 부정적인 것들만 떠올리고 있는 뇌 속에 행복의 길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뇌과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뇌의 ”신경가소성“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뇌에 새로운 시냅스를 생성하고 낡은 시냅스의 연결을 끊는다. 우리가 부정적인 결과를 예측하면, 뇌의 생리적인 구조까지도 변화한다. 우리의 뇌는 매일매일 조금씩 변화한다. 사람의 생각도 태도와 성격도 쉽게 변하지 않지만, 신경가소성의 특징을 활용한다면 우리의 생각과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 저자인 독일의 정신 요법의 클라우스 베른하르트는 말한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이용하는 대로 매일 조금씩 변하게 되어있다. 또 주변에서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를 감정에 의지해 걸러 받아들인다. 이 말은 우리가 정말로 사랑하는 것들이나 우리가 특히 두려워하는 것, 둘 다 똑같이 강렬하게 인식한다는 뜻이다.”
우울한 물고기에 먹이를 주던 시간들
어떤 물고기에 물을 주어야 할까
우리가 부정적인 것들을 생각하면 신경 회로가 부정적인 것에 강화되어 저장되고, 우리가 긍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면 신경 회로는 긍정적인 것들에 강화되어 저장된다.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는 것은 좋지만 발생 가능한 위험 사항에만 끊임없이 집착하면 우리의 뇌는 문제에 따른 위험과 그에 따른 반응만을 기억하고 긍정적인 것들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단련된다.
우울과 부정이라는 물고기에 먹이를 줄 것인가, 행복과 긍정에게 물고기를 줄 것인가. 우리의 뇌 속에 우울과 부정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만들 것인가, 긍정과 행복으로 하는 고속도로를 만들 것인가. 우리는 매 순간 선택과 실천의 기로에 서있다. 지난 시간 동안 부정적 시냅스를 만들어 살았다.
매일매일 부정적이고 우울한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며 몸을 키워왔다. 그래서 머릿속 어항에 거대한 우울 물고기가 살고 있는 것 같다. 걱정과 우울로 가는 고속도로가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다. 긍정의 물고기를 말라 줄어가고, 긍정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비포장도로처럼 거칠다.
행복의 기술(The Art of Happiness)
실천적 행복의 기술 연마하기 프로젝트
나의 프로젝트 이름을 “행복의 기술”이라고 표현하게 된 것은 한 책 덕분이었다. 여러 책들이 꽂힌 책장에서 운명처럼 한 책이 눈에 띄었다. <우울증을 없애는 행복의 기술 50가지>. 분명 내가 산 책은 아니었다. 어떻게 우리 집 책장에 있는 것인지는 출처도 명확하지 않았고, 2007년 초반이 되어 2010년에 3쇄가 된 10여 년 이상이 된 책이었다. 표지도 요즘 것들과는 다르고 낡고 닳아보였지만,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펼쳐 본 책의 의도가 좋았다.
저자인 폴 빈센트는 14세부터 40세까지 30년 가까이 우울증을 겪으며 상담치료, 인지치료, 약물, 운동요법을 진행하고 40세가 되어서야 우울증에서 벗어나면서 우울증과 관련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보완하고 본인이 직접 체험한 방법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나와 상황이 비슷했다. 이론이 아닌 체험과 실천을 강조하는 구성이 좋았고, 우울증을 치료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니라 의료적 측면에 더불어서 다양한 관점에서의 시도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공감이 되었다.
행복(happiness)이라는 예술(art)
행복을 실천하는 장인(artisan)이 되고 싶어
인간의 내면의 고차원적이고 다각적인 영역을 담기에 행복의 기술이라는 어감이 너무 기계적인가 싶었다. 영문으로 행복의 기술을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검색해 보니 <행복의 기술>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영문 제목이 <The Art Of Happiness>였다. “기술”을 “Art”로도 쓸 수가 있구나.
기술을 보유한 장인을 “artisan”이라고 표현하는 영어단어가 생각났다. 행복을 실천하는 기술자이자, 아티스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행복의 장인(artisan of happiness)이 되어보자.
집도 없고 직업도 없고 앞으로의 생계가 막막하고 우울한 31세의 실업자인 나도 나의 삶을 행복으로 물들이는 “행복장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그마한 시도들을 꾸준히 해보면 어떨까. 의욕과 동기를 가지고 여러 책들과 프로그램을 통해 경험하면 얻는 내용들을 기록하고 공유하면서 점점 행복의 기술을 연마하고 실천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성냥개비에 불을 붙였을 때처럼 파삭- 하고 타오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