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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형 Feb 28. 2022

거래

2022. 02. 05.

초병으로 일하고 있으면 일터에 있지 않은 사람들과 주로 만나게 된다. 그들은 일터에 가는 중이거나 일터에서 돌아오는 중이다. 이는 그들이 일터에서 멀어지려는 의지가 가장 충만한 상태로 내 앞에 나타난다는 뜻이다. 근무표가 돌다 보면 밤을 지켜야 할 때가 반복적으로 찾아온다. 술에 취해 택시에서 내리는 군인. 정말 조금 말고는 그를 좋아해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취한 채로는 그가 좋아할 사람도 없다. 가족과 친구마저도 이때 그에게는 벽이리라. 갑자기 어떤 기대를 가지고 이방인에게 달려오는 작은 동물처럼. 그 동물의 기대는 예상에 일치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는 으레 그가 배고픈 상태이겠거니 예상하는 데서 예상을 멈추고, 가끔 숙고해보면 동물 쪽에서도 그런 사정이 같기 때문에 배고픈 상태라는 데에 합의하여 제 볼일을 보고 가는 것 같다. 술에 취한 누가 추위에 자기를 노출하면 초병도 그렇게 해야 한다. 술에 취한 채로 따뜻한 차 안에 머물러 들어오는 부류도 있는데, 그는 다양한 위험에 자기를 노출한 상태이므로 어떻게든 거래가 되는 셈이다. 서로 감당하는 게 있다. 초병은 그게 무척 싫다. 당연한 얘기다. 그는 어떤 생각에 잠겨 있었을 수 있다. 초소의 어둠 속에서 짬을 내어 막 읽은 충격적인 글이 유발한 어떤 의문에 사로잡혀, 또 다른 종류의 추위를 맞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을 수 있다. 그걸 도대체 취한 자들은 이해하는가? 그런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가? 단지 그들의 정신이 취기를 감당하느라 더 바깥으로 뻗을 겨를이 없는지도 모른다. 안전히 돌아왔다는 사실, 그리고 더 안전한, 즉 거래가 없는 어떤 장소로 갈 것이라는 사실이 머리를 꽉 채웠기 때문에 그 머리는 무거운 것이다. 그렇다면 술을 넣기 전의 정신도 그랬을까. 앞에 놓인 이 술을 어떻게 다룰까를 결정하는 데 일조했을 그 정신에도 초병은 있었을까? 그 초병도 나와 같이 할 말이 궁색했으리라. 하기로 되어 있는 말이 있어서 그걸 하면 한 단위의 교통사고가 끝난다. 사고는 어디로든 발전할 수 있는 질료지만 여기서는 교통이 정리되고 나면 빠르게 결정화한다. 초병은 다시 어둠으로 숨는다. 그때마다 그는 '새끼들이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사는 거야? 제 머리를 밤마다 망치질하는 게 그걸 까서 보기 위함도 아니라면 거기에 무슨 즐거움이 있다는 거야?' 생각하다가 생각을 고친다. 그도 음주가 아니고는 생각을 일으킬 수 없는 때가 있었던 것이다. 머리에 돌이 구른다는 기분이 들 때, 그 기분이 거짓임을 확인하려면 그 돌이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를 벗어나게 하는 방법이 좋았다. 그러나 같은 일이 반복되고 어제 취한 군인이 오늘도 취한다면 이런 긍휼은 사라진다. 그때도 생각은 고쳐진다. 그에게도 매일이 총체적으로 하루였던 지옥의 때는 있었던 것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 새끼들이. 초병은 계속 생각한다. 밤은 뇌내의 교통이 도로의 교통을 넘어서는 시간이라고 정의해도 좋으리라. 그는 왔다 갔다 흔들리며 시간을 보낸다. 근무를 마치고 그는 차에 탑승한다. 일터를 떠나 생활공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그때까지도 생각은 계속되지만 그쯤에선 속았다는 생각이 막강해진다. 속으면 안 된다. "거래가 없는 어떤 장소". 그런 곳은 없다. 생각할 때 나는 초병이었고 나를 절박한 언어로 위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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