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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형 Feb 28. 2022

주제

2022. 02. 11.

어제에 이어 글의 형식에 관해 계속 생각하고 있다. 텍스트를 만들면서 텍스트 밖의 요소와 공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언제나 문제다. 주제와 문체와 자료와 사실이 글 속에서 균질하기를 바란다. 구름 속에서 구름은 어떤 형상을 잃고 안개의 환경이 되는 것처럼. 실제로는 텍스트란 제 안의 요소를 균질하게 참조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내가 극복하고 싶다고 느끼는 건 내가 그런 필연성에서 자유로운 존재라는 망상일 것이다. 주제를 정하고 하위에 내용을 배치하며 기반에서 시각 이미지를 솟아오르게 하는 등의 전형적인 블로깅 메커니즘은 그 망상에 부합한다. 내가 직접 마주쳐야 하는 진실이 있고 그것을 가리는 장애물이 있다는 전제가 작동 중이다. 이처럼 무엇을 전달한다는 느낌, 즉 무의미의 차단에 저항한다는 느낌은 반대쪽에서 자의식을 만든다. 그로부터 오히려 자유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자기기만적 전술이다. 글은 자유롭기 위해서 쓰는 게 아닌 것 같다. 자유를 주기 위해서, 어딘가로부터 자유를 빼앗아 재분배하기 위해서 쓰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자유의 재분배보다도 글의 본성에 알맞는 건 자유를 출발선에 돌려놓고 다시 출발시키는 일이다. 글은 모든 시도다. 가령 제발트의 산문 속 사진 활용을 외부에 대한 참조로 읽는 것은 모더니즘적 오해다. 그 산문은 지면의 모든 부분에서 균질한 산문성을 취하고 있다. 시간의 허수아비가 거기 못박혀 있다. 시간을 자기 것으로 귀속시키려는 사람의 욕망을 쫓아내는 허수아비가 말이다. 따라서 블로깅에도 그림을 첨부하느냐 마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화자는 주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을 대상화하는 일이다. 글의 귀환점을 세움으로써 친절한 말하기라는 환상을 이룩하려 하지 않고, 대상화된 화자는 그에게 주제가 마음껏 달라붙게 한다. 주제의 마음을 들어라. 거기서는 아무 소리도 울려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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