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글을 직접 쓰는 것은 고도로 지적인 뇌 활동이다
요즘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업무적인 내용이나 학습적인 부분에 관해서 무언가를 기록할 때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쓴다.
직장인을 떠나서 대학생쯤만 돼도 전자기기를 이용해서 기록한다.
과거와는 다르게 중고등학생들도 태블릿 pc를 들고 다니면서 공부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필기를 손글씨로 쓴다.
그래서 신기한 게 아닌데도 주변에서 좀 신기하게 보는 느낌이 있다.
아마 만년필로 기록을 해서 더 그렇게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만년필을 이용해서 필기를 하게 된 계기는, 군생활 시절 중위진급 했을 때 대대장님이 나에게는 진급 선물로 Lamy 만년필을 선물해 주셨던 것이 계기이다. 그 만년필은 지금도 쓰고 있다.
정작 아이러니한 것은 군생활 때는 안 쓰다가 전역하고 나서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기념품으로만 전시해 두었다가, 이왕 의미 있는 선물 받은 거 적극적으로 써보자 해서 쓰기 시작했다.
만년필을 한번 쓰다 보니까 그 서걱서걱한 촉감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책을 읽을 때도 만년필을 써가면서 독서를 한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노트를 하나 가지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한번 읽은 다음, 그 문장을 내 머릿속으로 재구성한 뒤 의미는 같지만 내 표현으로, 표현은 다른 방식으로 필기를 한다.
이게 습관처럼 작용하다 보니까. 업무기록 같은 부분도 그대로 그 정보만을 적는다는 느낌보다는 내 개인적인 생각과 의견을 달면서 혹은 나만의 표현으로 재구성하면서 기록을 한다.
이런 식으로 독서하고 공부하고 업무를 본 지 벌써 5년 이상 되었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이것이 여러 방면으로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느낀다.
(나는 CSV 데이터라던가, 텍스트 읽는 속도가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빠르고, 핵심요약을 하는데 남들보다 굉장히 낮은 집중력으로 처리할 수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코딩도 쉽게 배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손으로 직접 감각자극을 하며, 생각 재구성을 토대로 하는 필기가 인지과학, 뇌과학적으로 긍정적인 연구 결과가 있지 않을까? 궁금해서 조사해 보았다.
조사해 보니 실제로 이런 손글씨를 하는 것이 뇌과학적으로 이점이 있음을 증명하는 여러 연구결과들이 있었다.
손으로 필기를 하는 것은 뇌의 다양한 영역을 동기화하여 학습능력과 기억능력을 향상한다고 한다.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교의 연구팀에 의하면, 필기는 뇌의 다양한 서로 다른 영역들을 연결시켜 학습효과를 배가 시킨다고 한다.
뇌파 측정 데이터 결과, 손으로 필기를 하는 행위 자체가 더 많은 뇌의 영역을 활성시킨다.
(사실 나도 이 부분에서 손으로 직접 쓰는 것은 선과 면을 그리는 것이고, 타이핑은 단순 버튼에 압력을 가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손으로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더 복잡한 뇌활동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근데 그것이 사실이었다니!)
뇌의 다양한 영역을 연결하는 과정으로 볼 때 손으로 하는 필기가 더 복잡한 연결 패턴을 처리하는 것이다.
또한 손으로 쓰는 행위는 더 많은 감각적 피드백을 준다고 한다. 운동영역과 정보 습득의 영역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행위는 더 많은 사실을 기억하는데 도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손글씨는 타이핑보다 느린 속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뇌가 정보를 더 신중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정보처리 능력이 무조건 빠른 것이 좋은 것만임은 아니라고 한다.
물론 있는 사실만을 정리해서 전달하는 과정이라면, 빠른 속도의 정보처리가 강점을 가지겠지만, 통찰과 이해의 영역에 있어서는 인지정보 처리시간에 있어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따라서 손으로 직접 생각한 것을 적는 행위는 복잡한 개념을 이해할 때 더 효과적이다.
역사적 사례로는 중세 필경사들의 사례가 있다고 한다.
중세 필경사들은 인쇄술이 없던 시기에 직접 글을 써가면서 원본을 복사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근데 이 과정에서 아무래도 사람이 직접 손으로 쓰다 보니 단순한 글자의 복사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주관이 개입되거나 고의적으로 자신의 사상과 맞지 않아 왜곡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개인의 주관이 어느 정도 개입된 필사로 인해서, 인류에게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해 주는 기회가 생기기도 하였으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철학이 신학과 수학으로 그리고, 신학과 수학이 자연과학으로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인쇄술과 디지털 기기의 발전으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맥락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은 분명히 있다.
신속한 사실적인 정보전달과 업무처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타이핑이 뚜렷한 강점을 가진다.
하지만 이제는 생성형 AI가 널리 퍼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단문의 질문을 한다면 장문의 텍스트로 정보를 취합해 주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내가 의외로 놀란 점은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장문의 텍스트를 잘 읽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직접 작성하는 것도 힘겨워한다는 사실이다.
분명 업무적으로 정보를 기록할 때 많은 타이핑을 함에도 불구하고, 외부적인 정보를 빠르게 읽거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기획하고, 글로 쓰는 것을 힘겨워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손으로 직접 생각을 재구성해서 글을 쓰는 행위는 학습과 인지능력 향상에 특화된 작업이며, 텍스트와 친해질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즉 앞으로는 분명 텍스트가 범람하고 넘치는 시대가 올 텐데, 한번 손글씨를 쓰면서 자신의 언어적, 텍스트적 잠재력을 길러보는 것이 어떠할까? 조심스럽게 권유해 본다.
출처:
https://www.frontiersin.org/journals/psychology/articles/10.3389/fpsyg.2023.1219945/full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why-writing-by-hand-is-better-for-memory-and-lear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