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이 청파동에 전세집 구하기란?
*시작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직장 문제로 인해 잠깐 글을 쉬었습니다. 사회초년생의 직장 얘기도 곧 다룰 수 있으면 좋겠군요.
집구하기는 동거 좋아요? 에서 살짝 다룬 점이 있지만, 꼭 따로 빼서 얘기하고픈 주제였다. (그만큼 할 말이 많다) 친구들 중에서 월세 형식으로 독립을 일찍 한 친구들은 있었지만, 전세로 독립은 한 친구는 없었고,(보증금 때문이었으리라) 동거의 형식으로 전세를 구한다고 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으니 말이다.
필자 역시 아버지가 부동산을 하심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과 산다는 이유로 집을 보는 방법, 이사를 하는 방법, 사람이 삶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인테리어 하는 방법은 일절 배운 적이 없다. 부모님과 같이 살 때 했던 3번의 이사는 학교가 끝난 후 엄마가 알려준 주소로 가면, 자연스레 모든 가구와 물건들이 정리돼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내가 동거를 하겠다고 선언하니 당연히 부모님은 코웃음을 치셨고, 이 상황에서 부모님의 손을 빌리는 건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최종 합격 후, 입사날짜를 기다리는 어찌보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백수였던 내가, 회사생활이 바쁜 그분을 대신해서 집 구하기 전쟁터로 나갔다.
가격 > 집을 볼 때 중요시 하는 것들 (ex. 화장실, 채광, 지대의 높이)
집구하기 전장으로 나갈 때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어플을 깔거나, 직접 부동산에 방문에 발품을 파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와 미래를 그리면서 함께 살거라면, 집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필수이다.
신혼집을 주제로 다수의 커플이 싸우는 이유는 이 집의 우선순위가 서로 명확히 동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수저라서 집의 가격에 상관없이 모든 부분을 각자의 부모님 혹은 각자가 소화할 수 있는게 아니라면, 두 사람의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나의 경우, 전세 보증금을 그의 부모님께서 지원해주셨으므로, 지원 금액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었다. 이 최우선의 가치라는 것은 변할 수 없음을 꼭 명심해야 한다. 견물생심으로 비쌈에도 불구하고 집을 계속 찾아보면 자신의 구매력에만 실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초반에 자신이 정해놓은 가격 이상의 집을 보여주려는 공인중개사에게는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가격이 설정한 범위 내에 들어온 후에는 어떤 것을 볼지 미리 같이 사는 사람과 상의를 해야 한다. 나의 경우는 10평 이상일 것과 채광이 조건이었다. 이 조건 때문에 그분이 자신의 조건이었던 방이 작아도 신축일 것을 (많은 토의 끝에) 포기해야 했다. 일단 미니멀리스트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두 사람의 짐은 10평 이상일 때만 생활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평소에도 알람 없이 일어나는 나에게 햇빛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기상할 수 있는 점은 필수적이었다. 나 역시 신축을 원했지만, 가격이라는 최우선 조건에서 신축은 밀릴 수 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가격, 지역, 조건이 세팅되면, 공인중개사와 친해져야만 한다. 필자 역시 직방, 다방과 같은 시중에 나와있는 모든 부동산 앱을 다운받았지만, 진짜 알짜배기 집은 공고에 올라오지 않는다. 월세라면 모를까 전세라면 더더욱. 지역이 설정된다면, 조건을 써서 해당 지역의 모든 부동산을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때, 나이가 젊은 사람이라면, 꼭 부모님의 지원이 있지만, 너무 바쁘셔서 대신 왔다는 뉘앙스를 풍겨야 한다.
집주인이 전세매물을 내놓을 때, 절대 한곳의 부동산에게 일임하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 요즘 집주인이라 함은 매물이 한 두개가 아닌 경우가 많고(부자란 소리), 매물을 내놓은 경험이 많다. 때문에 근처에 있는 모든 부동산에 공고를 내고, 중개업자끼리 경쟁이 붙다보니, 공고에 올라오는 형식이다. 이런 내막을 모르고 모든 부동산을 방문해서 변하지 않는 내 조건만 똑같이 앵무새처럼 말하다 보면, 같은 집을 3번 보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언덕 위에 있는 집을 4번 봤을 때, 우리는 결심했다. 방문했던 집주소를 기록해놓자고…)
집을 알아볼 때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에 너무나 공감한다. 물론 20대 대학생처럼 보이는 사회초년생에게 뭘 잘 몰라서 그런다와 같은 몇몇 공인중개사의 핀잔과 시선을 받겠지만. 그럴 때 기억해야 한다. 돈 있는 척 해야 한다는 것을.
20대 커플, 혹은 젊은 사람을 무시하는 공인중개사는 어디에나 있다. 말이 나와서 팁을 전달하자면, 20대 여성은 남자를 대동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나와 같이 상황이 여의치 않아 혼자 집을 보러가게 될 경우, 꼼꼼함을 티내야 한다. 특히 혼자인 것보다는 같이 산다는 것을 어필하는 것이 낫고, 같이 산다는 것을 그냥 어필하는 것보다는 직장인 예비부부, 혹은 직장인 신혼부부인척을 하는게 낫다. 그것도 아니라면 마지막으로는 아버지가 공인중개사라고 말하는 것도 좋다. (10중에 9은 그럼 왜 아버지가 안오시냐 하겠지만, 나중에 같이 오시기로 했다. 등등으로 둘러대자)
20대 여성이 혼자 집을 보러가는 것과, 20대 남성이 혼자 집을 보러가는 것은 다르다. 경험 상, 지금 구했던 집은 상황 때문에 내가 직접 보고 고른 집은 아니지만, 그분을 보내 화상통화를 하며 구했다. 경제권과 결정권이 내게 있음을 전달한 후, 공인중개사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었다.
이 집은 결국 발품을 팔았던 공인중개사의 연락으로 알게 됐던 집이다. 무려 나와 나이가 같을 정도로 오래됐지만, 채광이 좋고 무엇보다 둘이 생활하기에 넓은 편에 속한다. 아마 이 집이 후암동, 남대문,을 통틀어서 내가 봤던 20번째의 집이었다. 집을 20개정도 보다 보니 직접 보지 않아도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계약금부터 모든 것을 현금으로 내면서까지 내가 찜을 해야 했다. 대출이 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혼부부 7커플이 대출 대기를 걸어놓은 상태였고, 당장 내일 계약금을 현금으로 내겠다는 우리 커플에게 집이 돌아왔다. 제주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김포공항에서 짐을 찾자 마자, 녹초가 된 상태에서 우리는 계약금을 선납했다. 그렇게 서울 청파동 전세집이 생겼다.
지금까지 내가 N포세대의 연령대임에도 불구하고, N포세대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유일하게 집 구했을 당시가 N포세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분의 부모님께서 감사하게도 도와주셨지만, 사실 그 돈으로 서울에 전세를 구한다는 것이 거의 기적에 가까웠고, 조그마한 돈이라 해도, 월급쟁이 둘이 현금으로 모으기는 너무 큰 돈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까지는 결혼과 출산 모두 하고 싶은 대한민국 여성으로서, 신혼집이 아닌 동거용 집을 구하는 것조차 이렇게 힘들다면 과연 부모님 도움이 1도 없는 사람들은 결혼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까?
현재 집주인은 동거커플에 대한 선입견이 없으신 편에 속했지만, 미혼인 동거커플은 환영하지 않는다던가, 여성 세입자는 깐깐하기에 세입자로 남성을 더 선호한다는 주인도 많았다. 깔끔하게 집을 쓰려고 노력하는 나 보다 맨날 친구들을 불러 술파티를 벌리는 통해 집 앞에 술병이 즐비했던 옆집 남자를 더 선호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순간들도 존재했다. 하물며 혼자 살 예정인 20대 여성의 집구하기는 얼마나 어려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동거커플의 집구하기란 일반적인 집구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둘 사이의 조건이 잘 타협된 상태에서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 구하기만큼이나 집 들어가기, 집 꾸미기 등의 활동도 난이도가 높고, 해당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둘 사이의 조건이 잘 타협됐는지의 진가가 발휘될 것이다.
> 집 들어가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