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쿠탕 청파동 이사 소동
약 2달 여간의 집 구하기가 끝나고 난 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이사였다.
우리에게는 포장이사를 할 정도의 가구와 짐도 없었고, 자차도 없었지만, 누가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무려 렌터카를 빌려서 각자의 짐을 직접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분은 겨울에는 단벌 신사라고 불릴 정도로 짐이 없는 편에 속했지만, 내가 간과했던 것은 그의 책이었다. 문과로서 대학 다니는 동안 일절 전공 서적을 사본 적이 없는 나와 달리 그의 전공 서적은 백과사전처럼 두꺼웠고, 심지어 여러 전공서적을 사 모으는 것을 취미로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누차 아무리 사람이 짐이 없어도, SUV 트렁크는 필요할 것이라 생각해 VENUE를 빌려놓으라 말했건만, 그린카 VENUE가 인기 있던 차종이었던지라 이사 당일날 빌릴 수 있는 차는 아반떼 한대 뿐이었다.
당연히 내 짐을 같이 옮기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 채, 그의 짐만 넣어도 이미 아반떼의 백미러는 짐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수준이었다. A4용지에 이사 중입니다를 써서 붙이고, 사이드 미러에만 의존하면서 간신히 청파동에 도착했다. 정말 다행이었던 점은 집이 3층임에도 불구하고, 언덕에 위치한 집이라 3층 집을 위한 대문(출구)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좁은 계단을 오르지 않으면서도 짐을 꺼내어 처음으로 빈집에 입성했다.
그분이 직접 집을 보긴 했지만, 우리 둘다 빈집의 상태로 청파동 집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 집을 봤을 때는 기존에 살고 있던 세입자가 살고 있는 상태였고, 그가 이사를 나간 바로 다음날 바로 입주를 했기 때문이다. 세입자가 방을 빼면서 TV장, 행거 등의 짐을 두고 나갔고, 산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냉장고 또한 30만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우리에게 팔고 나갔다.
돈이 굳었다는 생각에 마냥 좋아하던 나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왜 전 세입자를 잘 살펴보지 않았을까라고 후회했다. 정말 더러워서… (진짜 before /after 사진을 안 찍은 것이 천추의 한이다)
어디서부터 논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바닥, 창틀에 먼지와 벌레의 사체가 굴러다녔고,(끼약) 산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냉장고는 안에 내용물은 없었지만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진동했다. 화장실을 포함한 모든 등의 상태는 불이 들어오지 않고 있었고, 세면대는 깨져있었으며, 전 세입자의 건강을 염려할 정도로 위생상태는 꼴찌였다. (전 세입자님.. 그 집에서 생활은 어떻게 한 건가요?)
일단 짐을 다시 차에 싣고, 우리(나, 그분, 이사를 도와주러 잠깐 오신 그분의 아버님)는 청소를 시작했다.
만반의 준비로 청소기와 걸레, 엄청난 양의 물티슈를 가져온 것이 신의 한 수였고, 하루를 꼬박 내내 청소하면서,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입주청소의 필요성을 여실히 깨달았다. 특히 이사라는 것은, 짐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빈집의 형태를 보고 상태 파악부터 시작해야 함을 배운 날이었다.
주택에 살고 계셔서 웬만한 것은 직접 고치시는 그분의 아버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깨끗하게(X), ‘사람이 살만한 수준으로’ 간신히 집을 치울 수 있었다. 문제는 냉장고였는데, 안에 내용물이 없어 깨끗함에도 도대체가 어디서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음식물을 냉동실에 보관하다가 플라스틱에 냄새가 배고, 집을 나가면서 내용물을 치웠지만 전기 코드를 뽑으면서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오늘의 집에서 유명하다는 모든 냄새 탈취제를 써도 효과가 없었고, 나는 나의 실수 100%를 인정하며, 결국 엄마에게 SOS를 쳤다.
나: 엄마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는데 쓰레기 냄새가 나.. 어떡하지?
엄마: 약국 가서 알코올 100% 사고, 아주 깨끗한 수건으로 냉장고 내부 해체해서 닦아.
알코올 100%, 상처 소독할 때도 요오드 용액만 써봤는데, 이걸 냉장고를 닦을 때 쓰라니. 냉장고 해체가 문제가 아니라 독한 알코올 냄새를 한 시간 동안 맡으며 냉장고를 닦다 보니, 마시지도 않는 술 냄새에 취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냉장고를 알코올 용액에 담가버리고 싶었다.
(썰이 아직도 안 끝났나?)
모든 집의 인테리어 최고 난이도를 요하는 장소는 바로 화장실과 부엌이다. 이 집의 세면대가 깨져있는 것을 확인한 후, 집주인이 세면대 수리공을 불러주었다. 내가 간과했던 점은 이미 청소가 다 된 집에서 공사를 한다(?) = 청소를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제를 옮기고, 교체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먼지와, 쓰레기들의 양은 앞선 청소를 민망하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결국 첫날과 그 다음날 3이 한 청소를 거실과 욕실 등 교체, 세면대 교체, 보일러 교체 시마다 반복해야 했다.
우당탕쿵탕 이사 소동 썰은 여기까지이다.
한정된 예산으로 이렇게 좋은 동네의 전세를 구했다는 뿌듯함은 계약서 찍기가 무섭게 없어졌다. 꼭 빈집을 확인하고 가야 한다는 기본 사항을 몰랐을 정도로, 나 역시 초짜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그분도 작은 평수에 굳이 입주청소나 포장이사가 필요할까라는 못된(?) 생각을 고쳐먹었다. 도배, 페인팅과 같은 인테리어를 한 게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을 만한 수준으로 보수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둘은 녹다운됐다.
훗날 신혼집을 구할 때 인테리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집으로 고르고 싶다는 작은(?) 큰(?) 욕심이 생겼다.
PS. 이사 후 첫 번째 가스 점검에서 점검 아주머니(?)께 집 칭찬을 받았다. 전에 남자가 너무 더러웠다고. 가스 검침 아주머니가 기억할 정도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