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동거하기까지
제목부터 봐서 알겠지만, 나는 동거 중이다.
다수의 커플이 그러하듯이 동거를 계획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동거를 시작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이었고, 다수의 커플과는 다르게 양가에게 허락 아닌 통보 비스무리한(?) 알림을 드린 것이 차이점일 것이다.
당시 나의 ‘그분’께서는 (남자친구라는 표현에 알러지가 있습니다. 앞으로 ‘그분’ 혹은 ‘동거남’으로 칭합니다) 외할아버지 댁에서 회현(남대문) 통근 중이었고, 외할아버님께서 돌아가신 이후 자취를 시도하고 있었다. 강원도 출신으로 서울 지리를 잘 모르던 그에게 그의 회사와 가까우면서도 내 출생 고향이기도 한 청파동을 추천하였고, 집 계약을 시도하던 중이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상암동에 있는 회사에 합격 통보를 받았고, 본집이 경기 남부인 나와 과천 통근러인 그, 우리에게는 동거가 최선의 선택지였다.
뭐, 사실 이러저러한 현실적 배경을 두고서 라도, 연애기간 3년차에 접어들면서 일상이 되어가는 관계 속 동거라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던 이유도 동거 시작의 한 축을 차지했다. 다만 문제가 크게 두 가지 있었는데,
1. 양가 부모님께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2. 집은 어떻게 구할 것인가 가 그것이었다.
1번은 의외로 수월하게 풀렸는데, 2년이라는 다소 긴 취준기간 덕분에 내 부모님은 회사 합격에 가지 말라 혹은 가라 라고 의견을 전달할 상황이 아니었고, 그분의 부모님께는 어머님이 다소 마음에 흡족해하진 않으셨지만, 내 성격을 아시기에 서울생활 처음인 아들을 잘 챙겨주리라 믿어주셨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어머님)
이 글을 쓰게 된 주 목적인 2번은 예상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전세대란이라는 말이 매일 뉴스에 나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내가 구하고자 하는 청파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숙대입구와 서울역 사이에 위치한, 어딜가도 버스,지하철 원큐이면서, 고즈넉한 붉은 벽돌 빌라 감성까지 느낄 수 있던 청파동은 내가 알던 옛날 청파동의 모습만 간직했을 뿐 가격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일단 구하긴 했다. 현재도 잘 살고 있으며, 나와 나이가 같을 정도로 오래됐지만, 채광 좋고 아늑한 집이다.)
하지만 집을 구하고, 이사하고, 꾸미는 것의 어려움이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구하는 과정에서의 ‘우리’와, 집을 이사하는 과정에서의 ‘우리’와 집을 꾸미는 과정에서의 ‘우리’가 핵심이었다. 짐이 적은 편이 아닌 나는 집에 오래됐어도 큰 평수를 원했고, 그는 작지만 신축을 원했다. 비싸도 입주 청소와 용달, 포장 이사의 중요성을 알았던 나와 달리 그는 렌트카 하나를 빌려서 이사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생활 편리성을 위해 필요한 물품은 아낌없이 사야한다는 나와 달리 그는 절실히 필요한 물건만으로 천천히 집을 구성하길 바랬다.
이런 에피소드를 말하면 내 여자친구들 열에 아홉은 이렇게 말한다.
“미친 거 아니야?, 입주 청소를 안한다고?”
그에 반해 내 남자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 같으면 너랑 머리 아파서 같이 못 산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는가. 차이점이 아니라 ‘우리’가 핵심이라고. 우린 저 많은 차이점을 겪으면서 감정적으로 싸운 적이 없다. (그분께서 원하는 집을 계약하겠다고 통보했던 적 한 번을 제외하고!) 지금은 매우 평온하게 행복하게 동거 중이지만, 동거를 준비하는 과정에 있었을 때 정말 둘다 탈모 올 정도로 많은 의견 부딪힘이 있었다. 그래도 언성 높이지 않고, 왜 그것이 더 좋은 방법인지 서로를 설득하기 위해 대화했다. 집은 오래됐지만 큰 평수를 골랐고(역시나 내 말이 옳았다), 입주 청소와 포장이사의 고마움을 모르는 그를 위해 개고생하면서 렌트카 한 대로 이사하고 무려 일주일을 청소했다. 집 구성 물품을 살 때는 당근마켓으로 매우 저렴하게 할인금액을 엑셀로 정리해가며 경비를 그에게 보고했다. (이건 나도 사고 보니까 필요 없는 거 있더라ㅋ)
포인트는 이것이다. “타협의 여지가 있는 것”. 이것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서로가 좋은 싸움을 할 수 있다. 저지르거나 통보하지 않고,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양보할 수 있도록 물러날 마음가짐의 준비인 것이다. 그는 다음 전세 이사에는 꼭 포장 이사와 입주 청소를 하겠다고 말하며, 기존보다 내 선택을 더욱 존중해주고 있다. 청소하고 개고생해가며 렌트카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힘들지 알았지만 일주일 동안 고생한 결과가 그분이 동거남이 되고, 동거남이 내 의견을 신뢰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면 할만 하지 않은가? 우린 동거를 준비하면서 서로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 Bottom Line을 깨달았다. 그리고 혹시 나중에 결혼을 준비할 때도 감정적으로는 싸우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생겼다.
때문에 “동거, 좋아요?”라는 질문에는
“너무 좋지만, 준비과정은 녹록치 않아요. 그런데 결혼할 때 한번 더 겪을 거 좋은 모의고사처럼 예비 연습하세요.”
라고 말하고 싶다.
당연히 동거 시작 이후에도 수건, 이불, 빨래 등 사소한 습관 차이를 느꼈지만, 뭐 어떤가. 우리가 넘어온 산이 얼만데, 동거는 우리 관계에서 백 번 잘한 선택이 맞았음을 느끼고 있다.
PS. 두 사람의 동거를 말하긴 했지만, 이는 모두 양가 부모님의 이해와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사드리고, 저는 행복하고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