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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약맛댕댕이 Oct 29. 2021

체감온도 -20도, 보일러가 터졌다

오래된 집은 삐걱거린다.

집이 오래됐다는 것은 그 세월의 정감과 튼튼하게 지어졌다는 뜻도 있지만, 어딘가를 끊임없이 수리해야 한다는 말도 된다. 나이가 들면 몸도 고쳐 써야 한다는데 집이라도 오죽하겠는가. 


따뜻한 물에 대한 불만은 입주 11월 이후 날씨가 급속도로 추워지면서 생겼다. 온수를 틀면 한~~참이 지나서야 미지근한 물이 나오는 것이었다. 이 미지근한 물의 정도는 처음 물을 맞는 그 순간은 따뜻하나, 물줄기 밖으로 몸이 조금이라도 삐져나오는 순간, 너무나도 춥게 느껴지는 그 정도의 온도였다. 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오랫동안 샤워를 하고, 뜨거운 사우나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출근과 퇴근의 질을 50% 낮추는 요소였다. 



출처: Google


하지만 작년 12월은 모스크바 보다 더 춥다는 혹한기 겨울이었고, 오래된 우리 집 역시 혹한기를 정면으로 맞기 시작했다. 10년 이상 됐다는 보일러는 10분 정도가 지나서야 미지근한 물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체감온도 -23도를 기록한 한파경보날에 휴직을 선언하고야 말았다. 


가스보일러에 의존하는 주택에서 보일러가 나가면 1. 따뜻한 물이 안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차디찬 얼음장 같은 물이 나오고, 2. 집이 급속도로 냉각된다. 방의 온도를 체크할 수 있는 온도계는 13도가 가장 낮게 측정할 수 있는 온도였는지 그 이상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방 온도가 13보다는 낮았다는 것에 확신을..!!)


천만다행으로 어떤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모르나, 보일러가 터지기 바로 전날에 전기장판을 구매해서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고 잘 수는 있었다. (구매하지 않았다면 동사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바로 보일러 기사님께 전화를 했는데 아뿔싸.. 근방에 오래된 빌라들이 너무 많아, 보일러가 동파된 집이 한둘이 아니었다. 최대 혹한기를 맞이해 보일러 기사님들의 일거리는 호황 중에 호황이었던 것이다. 


기사님: 이거는 너무 오래된 보일러라, 앞으로도 터질 위험이 높습니다. 교체를 추천드립니다.” 
나: 교체는 얼마나 걸리나요?
기사님: 지금은 교체할 보일러를 받는 게 더 오래 걸려서, 한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앞으로 내내 -20도인데 일주일이라니.. 안될 말이었다. 결국 이번만큼은 수리를 하고, 교체가 필요없는 여름 쯤에 집주인과 상의해 교체를 결정하기로 했다. 기사님께서 수리를 하는 와중에도, 전원이 들어오지 않던 보일러는 긴급 수술조차 힘에 부쳤던지, 엄청난 양의 물을 콸콸 쏟아냈고, 기사님께 긴급히 바가지를 드려야 했다. (보일러실에서 폭포가 터진 줄 알았다. 유전이 터졌다면 참 행복했을 텐데)



불, 화장실도 다 갈았는데, 또 공사라니… 여름이 오기 전까지 보일러씨는 잘 버텨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두꺼운 담요를 하나 골라 보일러과 배관을 감싸주었다. 

보일러는 그 이후에 여름까지 잘 버티고, 우리는 새로운 보일러를 맞이할 수 있었다. 비성수기라 교체도 하루 만에 진행됐고, 마음씨 좋으신 집주인께서는 흔쾌히 보일러 교체 비용을 입금해 주셨다. 아직 겨울이 오지는 않아 걱정이 되긴 하지만, 보일러 교체 이후 3초 만에 나오는 뜨거운 물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이제서야 뜨끈한 물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이동식 접이식 욕조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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