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에게 내 노동환경을 들킨다는 것은
전편에서는 재택근무를 시작하는 것 자체의 어려움에 대해 말했다면, 보다시피 이번 편은 내가 어떻게 하다가 재택근무를 반납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한다.
직급 순서로 잘린 첫 번째 재택시범이 끝나고, 그 다음에서야 내 차례가 왔다. 편한 옷차림으로 일할 수 있다는 기대와, 재택에서도 일을 무리 없게 해내야지라는 마음가짐으로 홈웨어와 추가 모니터까지 세팅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재택을 시작하기 직전 업무가 폭발적으로 상승했고(재택을 노리고 일을 주는 것만 같은…), 집에서 놀 생각 1도 말라는 느낌처럼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프로젝트까지 굳이 근무 시작과 함께 착수되었다.
당연히 회사에서 전화는 미친듯이 왔고, 나는 회사에서보다 진심으로 집에서 더 바빴다. 가장 억울한 것은 업무 관련자와 통화를 할 때마다 ‘그래도 집이니까 편하지~?’, ‘집에서 농땡이 부리는 거 아니야?’ 등의 떠보기식 농담을 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 매거진 외에 나의 다른 브런치 글을 읽는 독자라면 알 것이다. 나는 혼자 살지 않는다. 나는 남자친구이자 ‘그분’이라고 불리는 연인과 동거 중이다. 이 당시 그분은 한 달 가까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고, 당연히 내 재택 기간도 맞물렸다. 둘이 서로 하루 온종일 붙어 있으며, 점심도 같이 해먹고, 불필요한 출퇴근 시간도 줄어드니 너무 좋겠다고 상상했지만, 나는 그분 때문에 재택근무를 반납하게 됐다.
집이 넓어서 서재, 거실과 같이 공간 분리가 가능하다면, 두 사람의 재택근무는 너무나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도 안한 동거 중인 커플이 그것도 제대로 서재까지 갖춰진 투룸을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대부분 원룸에서 살고 있고, 그곳에서 같이 재택근무를 한다면, 경고한다. 본인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아니, 더 나아가 보여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흔히 어릴 때 부모님께서 어떻게 돈을 버시는지 체감하지 못하다가 성인이 된 후 똑같은 직장인이 되면서, 그 노고를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 내에서 직접 겪으면서 ‘아, 우리 부모님이 이렇게, 이런 일 혹은 이런 취급을 받으시면서 나를 기르셨구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직장인이라면, 자신이 회사에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가족에게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공감하지 못한다면 축하한다. 당신의 직장이 나보다 낫다는 말이다. 오래 다니길)
아침과 저녁마다 팀장과 1:1로 오늘 무엇을 할 것인지, 또는 무엇을 했고, 또 못했는지를 화상회의로 보고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회사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작디작은 원룸 책상에 2개의 노트북으로 업무를 하고 있던 우리 사이에 나는 회사에서 OO씨가 아닌 OO아로 불리고 있음을, 쉴 새 없는 업무 전화를 받고도 ‘재택하니까 좋냐~?’라는 비아냥거림을 그 앞에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팀장과 1:1로 이뤄져야 하는 화상회의에 대뜸 사수가 들어오더니, ‘업무가 너무 적구나. 이것 좀 더해.’라며 자신의 업무를 직접 떠넘겼고, 나의 그분은 목격자가 되어버렸다. ‘너 이런 취급받고 다니냐’는 그분의 걱정 어린 화냄보다 사실 더 부끄러웠던 건 ‘괜찮아. 다 그러겠지’ 라며 그를 다독여야만 하는 나였다. 괜찮지 않은데, 다닐 곳이 여기 밖에 없어서, 내 실력이 이거라서 라는 것이 온 만천하에 까발려지는 듯한 기분.
그 앞에서 계속해서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것을 보여줄 수 없었고, 나는 2주마저의 재택도 채 100% 온전히 하지 못한 채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주변은 잘 쉬고 왔겠다며 말 한마디씩을 거들었고, 나는 다시는 재택을 신청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