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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약맛댕댕이 Mar 04. 2022

브런치에서의 우연한 만남

네가 왜 여기에..?


아기 침대 팔러 가요

여러모로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옆 동기가 본격적으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자꾸 미끄러지는 서류와 면접에 마음만 급한 나날들이었다. 또한 신입사원이지만 신입사원 타이틀은 버린 채, 어쩔 수 없이 업무상으로는 중요 보직으로 밀려들어가던 날, 중요한 회의가 잡혔다. 


 나름 각 팀의 팀장들과 본부장까지 참석하는 회의였고, 일개 사원이 무엇을 알겠냐마는 우리 부서에서 맡은 일이었기에 (이하: 쪽수 채우기) 회의에 들어가야 했다. 5시에 시작한 회의는 6시 퇴근시간을 넘어 6시 30분을 향하던 도중, 갑자기 사수는 회의실을 튀어나갔다. 모두의 머리 위에 물음표 백만 개가 떠다닐 즈음, 팀장은 “OO씨가 오늘 집안에 일이 있어, 먼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라며 커버를 쳤다. 나는 집에 최소 아내나 아기가 아파 산부인과 혹은 소아과를 가려나 보다 생각했다. 


 회의는 8시 가까이 되어 끝났고, 장장 두 시간 넘게 자리를 채웠던 나는 돌아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팀장에게 물었다.


“ 사수분께서 급하게 누가 아프신가 봅니다.”
(속마음: 얼마나 급한 일이기에 뛰쳐나가냐?)


팀장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집에 애기침대 팔기로 당근 약속했대ㅎㅎ. 집안에 평화가 중요하잖아. 내가 안 지켜주면 누가 지켜주냐”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동공지진 (출처: Google)

 그걸 부탁한 사람이나, 들어준 사람이나, 물어봤다가 100% 사실을 전달한 사람이나. 나의 리액션이 또다시 뚝딱거리기 시작했다. 왜 저 사실을 그대로 집에 퇴근도 하지 못하고 회의에 앉아있어야만 했던 신입사원에게 전달했을까 고민했다. 그는 본인이 팀원의 가정과 일의 양립을 도와줄 수 있는 팀장이라는데 한껏 도취되어 있었다. 마치 이 직장에서 나 또한 결혼과 출산을 꿈꾸기를 바라는 것처럼.. 



 아기침대를 팔러 가봐야겠다는 사수와 그걸 그대로 전달한 팀장, 이것이 그들의 끈끈함 유대감을 증명한 사례이다. 이 사례로 나는 우리 부서 내 진급 체계와 연봉 상승률 등을 설명 없이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부장이 들어오는 회의에서 당근마켓에 팔 아기 침대가 더 중요한 사수에게 마지막 존중심을 버리게 되었다. 




네가 왜 여기에..?

 별안간 사수는 내가 브런치 작가로 도전하는 데 얼마큼의 기간이 필요한지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브런치 작가로 2번 정도 실패 후 승인조차 되기 전이었고, 어떤 콘텐츠를 기획할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이직을 마음먹다 보니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가 마무리된 후에는 자주 브런치를 확인했다. 같은 회사원 작가들에게 위로를 받기도 하고, 나를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동기부여와 함께. 특히 브런치 하단에 있는 Recommendation(추천 섹션)을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날 또한 그런 날이었다. 


 스크롤을 쭉 넘기다가 발견한 건 사수의 프사와 동일하게 생긴 아기의 사진이었다. 너무 놀라서 사무실이었음에도 헉 소리를 냈다. 빠르게 글을 눌렀고, 글을 읽으면서도 ‘설마 그 사람이 쓴 것은 아니겠지’라며 속으로 대뇌이던 도중, 아기침대 이야기가 나왔다. 


‘아기가 너무 커서 침대를 팔았다~~(중략)’ 이후 빼박증거로 첨부한 사진의 배경에 그 회사 로고가 찍힌 봉투까지.. 
네가 왜 여기에..? (출처: Google)

 

 브런치는 그가 아닌 그의 아내가 쓰는 글이었다. 그리고 나는 하나하나 그녀의 글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만 나를 힘들게 하고 있음을. 내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음을. 글 속의 사수는 와이프와 아이를 1순위로 생각하는 자상하고 착한 남편이었다. (당연하다. 아기 침대 팔아주러 회의를 박차고 뛰어나갔지 않았는가?) 그의 와이프는 모를 것이다. 그가 퇴근 후 육아에 전념할 수 있는 이유는 회사에서 그의 에너지를 대신 소진 중인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회사에서 그의 일을 대신해 그가 육아에 전념할 수 있다면, 넓은 관점에서 내가 그의 아기를 키우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기를 낳을 생각은 더더욱 없는 나의 그분께 으름장을 놓았다. 나중 먼 미래에 회사 다니는 것이 조금이라도 편해지는 순간, 나의 편함이 남의 희생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닌지 꼭 확인하라고. 만약 네가 남의 노력으로 사는 그런 사람이 된다면, 난 너를 존중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다짐했다. 

말을 시작하기로. 그의 육아를 나의 에너지로 도와주지 않기로. 맑은 물을 흙탕물로 만드는 물장구를 치더라도, 나 스스로를 입다뭄으로 힘들게 만들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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