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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약맛댕댕이 Mar 07. 2022

회사의 사직 프로세스를 확인하다

담당자가 고생하는 게 낫지 않나요?


이직하겠다는 목표를 품은지 어언 5개월째, 하루하루를 그저 '버티’고만 있다가, 이직이 아니라 퇴사를 마음먹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려 한다. (개인 신변을 위해 지명, 업무 세부사항은 각색하였음)


 코로나로 인해 회사는 1년에 최소 6회 이상 진행하던 대면 이벤트를 2년 가까이 진행하지 못했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열리면서, 다시 원래 참여형태로 돌아왔는데, 이것이 내 마음속 퇴사 신호탄의 계기였다. 해당 이벤트는 1년 중 큰 이벤트에 속했기에 참여를 결정했고, 나는 해당 업무의 핵심 인력이 아니라 담당자로서 거의 두 달 전부터 그 업무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 부서는 금요일마다 그다음 주 휴가 및 연차 사용을 미리 보고하는 관례를 가지고 있었다. (회사가 아니라 부서이다. 타 부서는 당일 사용도 가능하다고 들었다) 그 출결을 관리하는 것은 내 동기의 업무 중 하나였고, 갑자기 그에게서 톡이 왔다. 


동기: “OO일에 이벤트 아니야? OO님 왜 그날 연차 내지?

나: 에? 이벤트 맞는데. 설마 나 혼자 보내기야 하겠어?


섣불리 직접 어디 가실 일 있으시냐 물어보기에는 동기가 말을 전달했다는 사실이 명백해지기에 일단 기다려보자는 마인드를 취했다. 곧 이벤트 관련 회의가 잡혔고, 이벤트가 3일 남은 상황에서 그는 본인의 아이가 아파서 수술 예약 때문에 이번 이벤트에는 참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런 연차 사용 한번도 보지를 못했다.. (출처: 위메프)



어이없는 포인트 1: 실제 업무 담당자는 나지만, 업무 공적 상 담당자는 본인

해당 이벤트는 무려 두 달 가까이 준비한 중요한 이벤트였다. 그것을 신입사원을 담당자로 내세우는 것도 모자라, 매달 기록하는 업무 공적에는 자신을 담당자로서 적어서 쓰더라.



어이없는 포인트 2: 연차를 낸다는 사실은 최대한 감추고, 늦게 말하자.

 그는 연차를 낸다는 사실을 일부러 감췄다가 얘기했다. 원래 그들의 출석체크는 출석관리 담당(내 동기)에게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 팀장이 포함된 단톡방에 톡을 남기면 동기가 정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직접 구두로 내 동기에게 자신의 연차 사용을 말하면서, 단톡방 공지 방식을 피해 최대한 나에게 그 소식이 늦게 전달되도록 조치했다. 



어이없는 포인트 3: 일하기 싫다면, 그때 아이의 수술을 잡아라

그의 아기는 아픈 것이 아니었다. 맹장, 고열 등 긴급수술 및 확인이 필요하거나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발달 상의 문제가 있을 수 있는 병명이 아니라, 과잉치 수술 등과 같이 적당한 때를 잡아 간단히 진행하면 되는 수술이었다. (기존에 그 문제에 대해 본인이 직접 언급한 적이 있음)
 (*과잉치 수술: 이빨의 개수가 일정 수보다 많이 존재해 제거하는 수술. 치과의사와 상담하여 적정시기에 수술을 통한 발치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그는 일부러 두 달 전부터 준비한 이벤트에 본인이 조금 더 편하게 생활하고자 연차를 아이의 병명을 활용해 낸 것이었다. 


1번 진짜 용서 못해... (출처: 데이터솜)


어이없는 포인트 4: 누군가 고생해야 한다면, 담당자 혼자 고생해야시켜야 한다.

저 혼자 어떻게 세팅할까요?라는 내 질문에 그는 한 달 전 입사한 인턴과 같이 갔다 오면 되지 않느냐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했다. (그 업무가 주 업무도 아닌 20대 초반 인턴은 무슨 죄냐...)


 게다가 이벤트 정리에는 무거운 짐도 많아, 보통 남성 직원들이 도와주기 마련인데, 이걸 여자 2이서 끝나고 벤에 실어서 회사로 복귀 후, 짐 정리까지 끝내고 퇴근하라는 말까지.. 퇴근시간에 맞물려 회사는 7~8시에나 도착 예정이었고, 보다 못한 팀장이 자기가 남아서 짐을 받아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차사용으로 인해 존경하며 마지않는 형님이신 팀장을 야근시키기는 싫어, “누군가 고생해야 한다면, 담당자 혼자 고생하는 게 낫지 않냐며” 팀장의 야근을 적극 반대했고, 결국 보다 못한 대리를 시켜서 짐을 받아주라고 말했다. 


 


 본인은 이벤트에 가지도 않으면서, 신입사원을 혼자 시키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또한 신입사원에게 책임도 지우려는 모습, 자신의 일적 포기를 말도 못 하는 어린 자녀를 내세워 처리하려는 모습. 그날 나는 사직 프로세스를 주의 깊게 정독했고, 이제야말로 뜰 타이밍임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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