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사원이라면 한 번쯤 듣는 인사팀의 협박
건설사 최종 합격 후, 누구보다 소식을 기다렸을 가족들에게 소식을 공유하고, 앞으로 자주 만나지 못할 친구들을 만나다 보니, 어느새 신입사원 연수 첫날이 되어버렸다. 구비서류들을 빠짐없이 챙기고, 면접 복장을 다시 갖춰 입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아, 물론 신입사원 특유의 레이더도 다시 작동시키고..)
드디어, 건물 하나를 다 쓰는 회사로 가는구나. 첫날이니 30분 일찍 도착하자마자 1층 로비에서 나를 맞이해준 것은 다름 아닌 긴 줄이었다. 이게 뭐지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뒷사람이 자연스럽게 내 뒤에 서면서, 나 역시 긴 줄에 합류되었다. 한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올 때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빠지고, 내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출근을 하기 위해 줄을 서야 한다니.. 무려 8개의 엘리베이터가 있는 사무실에 익숙했던 나는 5분가량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나서야, 사옥을 쓰는 회사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버렸다. 실제로 이 엘리베이터 줄은 내 출근시간을 최대 5분 이상 지연시키는 아~주 짜증 나는 요인이었다. 사옥을 온전히 쓰고 싶다는 내 바람이 엘리베이터 인구 과다 문제로 이어진 것이다.
최대한 신입사원 티를 내지 않으려, 익숙한 척, 약속의 장소로 집결했다. 예상대로 많은 신입사원들이 한 장소에 있었다. 한 직무당 1명도 잘 뽑지 않는 요즘 취업시장이라지만, 건설사는 그 업계의 명성답게 무려 60명이 넘는 신입사원을 볼 수 있었다. 이미 신입사원 현상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과연 이들 중 1년 이후 남아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것부터 생각했지만..
먼저, 인사팀이 와서 교육 절차에 대해 설명했다. 코로나 때문에 대부분의 교육이 축소되었고, 부서 배치도 빨라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엄청난 두께의 책을 한 권, 직무에 따라서는 2권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한 달 이후 각 부서에서 시험을 볼 것이라며, 시험에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는 수습사원에 한해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동기들은 술렁대며 이 많은 책을 어떻게 공부할지, 몇 점을 넘어야 안정적으로 정규직 전환이 될 수 있는지 서로서로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자, 정규직 사원의 경험치는 여기서부터 나뉜다. 인사팀의 신입사원 교육용 협박에 넘어가지 않고, 차분히 대응할 수 있는지. 대부분의 정규직 공채라면, 수습기간 마지막에 개인 프로젝트나 필기시험이 필수로 포함되어 있다. 이는 신입사원의 세부 부서 배치를 결정짓거나, 조직 부적응을 테스트하기 위함이지만, 실제로 인사팀의 삼엄한 협박에 따라 잘리는 신입사원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본 적이 없음)
수습사원이라는 워딩은 이러한 인사팀의 협박을 협박답게 만드는 1등 공신인데, 정규직이지만 3개월의 평가를 통해 잘릴 수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규직이 왜 정규직이겠는가. 수습사원을 자르려면 평가에서 명확한 사유가 필요하고, 그래서 채용전제형 인턴이 아니라면 수습사원도 엄연한 정규직이다.
대학시절 필기시험도 족보가 있는데, 회사라고 다를쏘냐. 저 두꺼운 책을 다 외워야 한다면, 전에 신입사원도 남아있지 못했으리라 생각하며 그들의 삼엄한 협박을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것이 이번 직장만큼은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2번째 신입사원의 첫 번째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