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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약맛댕댕이 Apr 04. 2022

직장에서 내가 미필임을 깨닫다

건설사 문화 이모저모(1)


‘미필’ : 아직 끝내지 못하다.
‘병역 미필’ : 병역의 의무를 마치지 못함.



왜 갑자기 군대 이야기냐고?

건설사에 입사하고 충격받은 많은 포인트 중에서 가장 충격 받은 포인트가 군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다소 남녀 사이에서 분장을 일으킬 만한 소지가 충분하지만, 누차 말한다. 나는 내 입장대로 글을 쓴다. (여기서 싸우지는 말아주세요..ㅠㅠ)



70명이나 되는 신입사원들, 원래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바로 연봉 계약서 작성이다. 이것도 벌써 4번째 계약서 작성. 무려 전 연봉보다 1,000만 원을 올렸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고, 착실히 주소 란을 채워 넣어가고 있던 찰나였다. 


인사팀 왈
현장직은 현장 수당 있는 거 아시죠?..(생략)…
미필과 군필도 연봉이 다릅니다.
군 복무 인정되어 1년 미리 진급 및 소정의 연봉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런가 보다. 내가 해당되는 이야기인가?라며 연봉 계약서에 내 정보를 적고 있던 와중, 갑자기 앞에 동기에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언니, 옆에는 연봉이 달라…”


 똑같은 부서, 똑같은 직무로 배치를 받을 동기들 사이에서의 연봉이 다른 것이었다. 미필이라서 연봉이 다를 수 있다는 말이 나에게도 적용되는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한참을 곱씹어야 했다. 똑같은 업무와 똑같은 부서로 배치가 될 동기의 연봉이 다르다는 말을 들어서야 인사팀에서 말하는 미필이 사실은 ‘나’를 지칭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진급 역시 1년 빠르다는 사실은 남자 동기들에게 몇 년 후 1년 동안을 그들을 주임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순간들이 온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라지만, 몇년 후에는 그를 주임님이라 불러야 한다. (출처: Google)


  자발적으로 군대를 가는 소수의 여성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반적 여성은 당연히 미필이라고 생각하는 몇 남성분들이 계실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병역의 의무가 없는 여성이다. 이제까지 어떠한 회사의 자기소개서에서 나 자신을 미필이라고 칭해본 적이 없다. 200개가 넘는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쓰면서 나는 항상 ‘해당 없음’이나 ‘비대상’에 해당됐다. 애당초 병역의 의무 대상자가 아니기 때문에 완료의 의무도 없으며, 완료를 하지 못함에 대한 분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군대 문화를 그대로 기업문화로 가져왔다는 건설사 내에서는 군대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미필/군필로 나누었지만, 명백히 여성과 남성을 가장한 분류였고, 인사팀은 여성 중에서 부사관 등으로 군대를 다녀온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이는 성차별이 아님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사실 군필자의 혜택은 비단 건설사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을 포함한 공무원 체계에서는 남성의 군 복무를 경력으로 인정해 호봉을 측정하고 있고, 꽤 많은 사기업에서 군필자에 대한 채용적 혜택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채용적 혜택에 대상자로 내가 선정되지 않아서 화가 나는 것만은 아니다. 병역의 의무가 애당초 존재하지 않음에도 완료하지 못한 사람으로 분류되었다는 점에 억울하고 당황스러웠다. 



군필자라면, 자신의 군복무 개월 수 만큼이나 호봉을 인정해준다. 고등학교 선생님인 친구의 말을 듣고, 나름 합리적인 정책이라 생각했다. (출처: Google)

 


 게다가 과거와 달리 여성의 비율이 회사에 많아지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회사는 남성 중심적 복지를 자랑하고 있고, 이런 곳에서 내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군필을 우대해 주는 것만큼이나, 여성의 생리휴가, 출산축하금 등 이른바 여성형 복지는 눈씻고 찾을 수 없기에, 그에게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여성으로 살아온 이십몇 년 만에 처음으로 자라면서도 느껴본 적 없었던 성을 베이스로 한 벽을 느꼈다. 한 번도 #마이너, #소수, #약자로 분리될 것이라 생각해본 적 없는 나는 미필로 분류가 되자마자 자연스럽게 #마이너 #소수 가 되었고, 유리천장의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 건설사 문화 이모저모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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