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농약맛댕댕이 Apr 05. 2022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건설사 문화 이모저모(2)

 


 며칠 되지 않는 신입사원 전체 교육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회사가 신입사원에게 어떤 것을 기대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팀원, 조직과의 조화를 중요시 여기는 회사의 경우,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다수 넣기 마련이고, 예절을 중요시하는 경우, 비즈니스 매너 교육 등의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외부강사가 선택하는 주제를 통해서 이러한 사항을 더욱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이 회사에서 처음으로 초청한 외부강사의 주제는 바로 ‘인사’였다. 이 인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초청받는 강사 본인이 직접 언급한 것을 차용해 보겠다. 


 OO건설은 정말 인사를 중요시 여김을 제가 알 수 있는게 이제까지 많은 회사에 이 주제로 신입사원 강연을 진행했지만, 전 직원이 이 교육을 필수로 듣게끔 요청하신 회사는 OO건설이 유일합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123,123 3초에 걸쳐 숙이고, 다시 3초에 걸쳐 허리를 세우는 정도의 인사는 아니었지만, 회사 내에서 타팀을 포함한 모든 상급자(신입사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모든 사람이다)에게는 인사를 해야 함을 교육받았다. 그리고 교육은 신입사원 교육이 끝나자마자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사.. 이렇게 화목하게 받아주는 사람도 드물다 (출처: Google)


 Episode 1 | 모르는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인사를 해

내가 속한 부서는 신입사원 충원을 많이 한 부서였기 때문에 초반 2주는 원래 앉아야 할 자리가 아닌 다른 부서 임시 자리를 배정받았다. 선임이 내 임시 자리를 알려주며 했던 첫 번째 정식 조언은 이 자리의 OO부장님이 인사에 예민하시니, 안전하게 모르는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그냥 일어나서 인사를 해 라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신입사원에게 모르는 사람 = 이 층에 있는 모든 사람)

아직은 주어진 업무가 없기에 일어나서 누군가 지나갈 때마다 백화점 주차 안내원처럼 안녕하십니까를 반복해댔다. 



 Episode 2 | 인.사.철.저

 2주간의 짧은 농땡이가 끝나고, 드디어 정식 자리로 이동했다. 자리는 당연히 신입사원의 직함대로 여전히 사이드. 부서 벽 위에는 인.사.철.저라는 글이 한 장 한 장씩 프린트되어 붙어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퇴근시간, 나보다 먼저 그곳에 앉아있던 동기들이 일제히 일어나 인사를 시작했다. 


 가장 높은 부장급부터, 작년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선배들에게까지 모든 상급자에게 한 명씩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내가 속한 조직은 팀이 최소 5~6개로 구성된 큰 조직인 만큼, 대충 30명쯤 되는 인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니, 정시에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었음에도 시계는 이미 6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의전 챙기기 (사례 : 아시아나) (출처: Google)

 


 난 여전히 출근하는 1층 엘리베이터부터 퇴근하는 엘리베이터까지 인사를 한다. 안녕하십니까를 포함해 사무실 내 가벼운 목례까지, 그럼에도 더 놀라웠던 것은 하루하루 적응해나가는 내 모습이다. 인사를 하는 것 나 혼자가 아니고, 괴로운 상사보다는 인사 100번이 낫다는 내 2번째 신입사원 모드가 발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회사 바깥에서도 왠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야만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나 또한 회사원이 되어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에서 내가 미필임을 깨닫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