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가면을 벗는 시간
나는 발린이이다.
필라테스에서 넘어와 발레를 시작하는 이제 6개월 차다.
이전에 필라테스를 배우는 것에 대해 글을 작성한 바 있다.
사실 필라테스는 발레를 배우기 위한 내 큰 그림의 시작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교육열이 높으신 엄마 밑에서 가배, 피아노, 바이올린, 리드체조까지 안 배운 없는 나였지만 모든 여자아이들의 관문인 발레는 하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 왜 그 많은 활동 중 베이직에 속하는 발레는 시키지 않았는지 한번 여쭈어보니, 아니나다를까 내가 싫다 하여 시키지 않았다 말씀하셨다. 아마도 그 당시 하루 학원 3개는 기본이었던 나는 추가 활동 제안에 무조건 싫다고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발레는 영원히 도전조차 하지 못한 숙제로 남으며 사라질까 싶었지만 나의 발레 욕구를 불 피운 건 다른 아닌 전 회사에서였다. 매일 내 기준 용납이 되지 않는 사람들과 일하다 보니, 고고한, 우아한 고요함이 너무 절실했다. 회사만 가면 내 이름과 몸에 때가 쌓이는 기분. 어떻게 해서든 순수하고 맑아지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레오타드와 예쁜 치마를 입고 우아한 학처럼 운동하는 발레는 (큰 착각이었다) 내 내면이라도 순수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몸뚱이에 예열도 필요한 법. 고등학교 체력단련 중 유연성 테스트에서 나는 항상 마이너스가 나오는 몸이었고, 성인이 된 후 일체 스트레칭 하나 하지 않았기에 상황은 더 악화된 상태였다. 발레를 바로 도전하기에 무리일 듯싶어 우회로를 탄 것이 6개월간의 요가 및 필라테스였다.
플라잉 요가로 혈들을 순환시키고, 굳어있기만 했던 오금을 펴다 보니 이제 발레에 도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호기롭게 발레학원을 등록하고, 발레슈즈를 구매하며 첫 시작 날 만을 기다렸다.
#STEP1: 선생님 따라 서울구경
직장을 다니지 않더라도 현대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다는 거북목.
옆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내 거북목에 놀라곤 했는데, 발레에서 거북목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정수리를 높이, 목을 길게, 하지만 어깨는 내리고~’가 아예 기본자세인 발레에서도 내 거북목은 돋보였고, 보다 못한 선생님은 직접 서울구경을 통해 내 목과 어깨를 분리해 주셨다.
그마저도 충분하지 않다 생각이 드셨는지, 수업이 끝난 후, “목과 어깨를 말할 때 저는 항상 OO님을 생각하며 말을 한답니다”라며 종지부를 찍어주셨다. 마사지를 받을 때도 목과 어깨에서 마사지사가 한숨을 내쉬고는 그 부분에서만 집중하다가 전신 마사지를 다 못 받은 적도 있었다.
#STEP2: 다리 찢기는 여전히 안된다.
발레를 한다 하면 대부분 첫 질문인 “다리찢기 가능하세요?” 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직도 못한다. 하지만 예각으로밖에 펼치지 못한 다리는 이제 둔각 정도는 찢어지고, 골반의 유연성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다리 찢기도 자신의 몸에 따라 잘할 수 있는 유형이 나뉘는데, 나의 경우, 정면에서 다리 찢기가 세로형 다리 찢기보다 훨씬 편하다. 다리 차기 일명 바뜨망도 뒤>옆>앞 순으로 못하는데, 뒤 허벅지 근육이 많이 수축되어 있다는 뜻이다.
발레 6개월 차, 레오타드, 발레 스커트 등 발레용품에 욕심을 내면서 일주일 2회가 아쉬울 정도로 몰입 중이다. 하지만 발레가 가장 좋은 이유는 매 스트레스와 긴장 속의 사무실에서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나 자신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이 있어야 집까지 부정적인 사무실 에너지를 가지고 가지 않을 수 있고, 온전한 나로 돌아갈 수 있다.
출근할 때 모든 직장인이 가면을 쓰는 것처럼, 퇴근할 때도 가면을 벗는 행위에 시간을 투자해보자. 이것이 나에게 발레가 가지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