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농약맛댕댕이 May 31. 2022

5시 30분, 정시 퇴근은 셀프입니다.

역시 요즘 애들은 대단해


 3개월, 수습사원이 아니라 정식사원이 되었고 여전히 그동안 정시퇴근을 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6시가 돼서 동기들과 함께 일어나도, 아 또 정시퇴근하네라는 눈빛과 함께 인사를 받지 않으며 눈치를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 정시퇴근은 부장이 챙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며, 꿋꿋이 6시 10분이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모두가 앉아있는 사무실에서 부장급에서부터 작년 신입사원 선배까지 인사를 하고 퇴근했다. 


 그러던 중 게시판 알람이 울렸다.


본사 시차출퇴근제 종료 및 유연근무제 안내의 건

9~6시 출근시간이 8:30~5:30으로 변경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급히 짱구가 굴러갔고, 어차피 아침잠도 없는 나이기에 5시 30분이라면 회사 앞에서 6시 발레 수업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라며 신청을 마음먹었다. 



문제는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가.


부서 특성상, 부장과 신입사원 사이에 선임이나 대리, 과장이 없기에 다이렉트로 부서의 장인 부서장에게 허락을 구해야 했다. 같은 팀 동기들과 면밀히 의견을 나누고, 눈치게임에서의 1을 외치듯이, 점심시간을 틈타 부장님께 건의를 드렸다. 


“~~게 있는데, 이번에 신청을 좀 해봐도 될까요~?”
“그런 게 있다면 신청해야지! 신청할 것 있음 맘껏 해!”


 너무나 흔쾌히 허락을 받은 바람에, 뭘 알고 허락을 해주신 것인지, 왜 아무도 그간 건의를 드리지 않았는지 앞뒤를 잴 시간도 없이 괜스레 입장을 바꿀까 싶어 신청을 마무리했다. 



 첫 유연출퇴근제의 날, 8시 30분에 맞추어 일찍 출근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누가 회사 출근시간을 신경쓰랴. 집에 일찍 가는게 더 중요하지.) 시간은 흘러 5시 30분이 되었고,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인사를 시작했다. 사무실이 술렁였고, 심지어 한 대리는 인사를 받자마자 벌써 6시야?!? 라며 (사실상 비명에 가까웠다) 짐을 싸려고 했다. (웃프다) 또 다른 대리는 5시 30분 퇴근이 너무도 믿기지 않아, 우리가 단체로 외근을 나간다고 생각했는지 어디가냐며 진지하게 행선지를 묻기도 했다. 


무려 38.7%에 들기 위해 나는 하루 동안 시계를 안봐도 될 정도로 일한다. (출처:알바몬X잡코리아)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기둥을 돌아서도 웅성거림은 한동안 잦아들지 않았다. 저걸 신청한 사람이 있었다니, 어떻게 신청한 거야부터 부장한테 말할 생각을 했다니 요즘 애들 겁도 없나보다 등 다양한 말들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무려 본사가 아닌 현장에 나가 있는 동기에게 OO팀은 대단하다고 들었다며, 소문이 본사를 넘어 전국 현장에 퍼졌음을 확인했다. 또 다른 동기는 내게 신청방법을 묻고는 팀에 말을 꺼냈다가 작년 신입사원 선배에게 “우린 그런 거 신청하는거 아니야”라며 신청의 문턱조차 넘기 못했다. 



복지가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청할 수 있냐는 또 다른 문제다. (출처: 디지틀조선일보)


 뭐든지 팀바팀, 부바부다. 회사 전체가 이런 신청에 인색한 것은 아니고, 5시 30분 정각에 퇴근하는 소리가 많이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현재 속해 있는 부서는 눈치를 주는 편이고, 나는 ‘이런 걸 다 신청할 수 있었어?’ 싶은 사례 첫 번째로서 개척자의 포지셔닝을 취하고 있다. 눈치를 주는 선배들도 단순히 ‘나는 못했는데 쟤는 왜 해’라는 질투심과 보복심리 때문에 눈치를 주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아마 정말 가능한지 몰랐던, 자신은 물어보기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이제는 그 타이밍을 놓친 데에 대한 자책과 같은 것이라 감히 예측해본다. 



 물, 단무지, 효도가 셀프라고 했던가. 나는 월급과 인센티브를 제외한 회사 복지와 워라벨까지 셀프라고 생각한다. 



야근을 하지 않으면 눈치주는 회사에서도 역설적이게도 야근이 노력의 기준으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결국 관리자급의 편한 논리대로, 일도 잘하면서 퇴근도 본인들 전에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그런 논리에 나는 맞춰줄 생각이 없다. 


점심시간을 포기하더라도 난 야근은 하기 싫은 사람이다. 이 때문에 “요즘 애들 정말 대단하다.”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5시 30분 퇴근을 사수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것이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시 한번 워라벨은 셀프니까, 셀프로 챙길 수 있을 때까지 챙겨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O대리님 어디인지 모르신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