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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약맛댕댕이 May 27. 2022

O대리님 어디인지 모르신답니다.

당일 회식 통보와 그다음 날


코로나 시국에 신입사원으로서 전 회사를 비롯해 지금까지 제대로 된 회식을 진행해 본 적이 없다. 코로나의 몇 안 되는 순기능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종료와 함께 경험해 볼 기회조차 없었던 회식도 다시금 고개를 들려고 하고 있었다. 


회식 안해도 문제없다 주의다. (출처: Google)



 Episode1 : 오늘 저녁에 선약 있으세요?

하루는 나의 선임은 묻기를, “오늘 저녁에 약속 있으세요?”라며 내 스케줄을 묻는 것이었다. ‘약속이 없어도, 있어도 너와 함께 있고 싶지는 않습니다.’라고 답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아가며, “어떤 일 때문에 그러세요?”를 시전했다. 


 해당 팀의 차장님께서 한 프로젝트가 끝난 기념으로 팀 회식을 명(?)하셨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도 종료되었으니 해당 부서 모두가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내셨다는 것이었다. 


1.     단 한 번도 제대로 말을 나눈 적이 없는 팀과의 회식
2.     내일도 모레도 아닌 당일 회식 통보


 원투쓰리 펀치 강냉이를 맞아 얼떨떨한 찰나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해당 부서 신입사원(동기)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나 : “당일회식, 정말이니..?”

그 : “아… 어제 팀 회의 때 말씀하신건데, 다같이 먹고싶으신 건지 오늘 타팀에 통보하신거래. 난 이미 필참이야..ㅠ… (중략) 근데 1차는 고깃집, 2차는 노래방 확정이래. 선곡해놓으라고 선배님이 그러시더라.”


 노.래.방 

인턴을 포함한 그 어떤 회사에서도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공간이었다. 그 흔한 대학 신입생 환영회 장기 자랑에서조차 춤&노래는 안 했는데, 회사에서 그것도 신입사원 장기자랑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누구는 잘하네 누구는 못하네 노래를 부르는 것도 창피하지만, 평가가 내려질 생각에 이미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았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부장님은 “코로나 종식도 아닌데, 모든 팀이 가는 게 맞니, 네가 속한 해당 팀만 회식 진행해!!!”라며 불호령을 내리셨다. 그렇게 나는 노래방 장기자랑에서 제외될 수 있었고, 한차례 고비를 넘겼다. 


노래방 회식 선곡도 문제다 (출처: Google)



Episode2 : O대리님, 어디인지 모르신답니다.

 끌려갈 뻔한 회식은 목요일이었다. 그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한다는 말.

“아우~ 죽겠다” 회식을 주도한 차장은 곡소리를 내며 10분 늦게 출근했다. 모두들 밤새 달리고 아직 회복되지 못한 간을 달래고 있는 것 같았다. 


야근이 빈번한 회사이기에 은근히 출근시간은 타이트하지 않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9시 반, 10시 반이 되도록 내 앞자리 대리님이 나오시지 않으셨다. 얼마나 술을 먹었으면 반차 혹은 연차를 내셨을까 싶어 결재 서류를 살펴봤지만, 그의 허가원 결재 내역도 보이지 않았다. 


 바야흐로 11시 즘 차장이 일어나며,

“야, 누가 O대리 좀 확인해 봐라! 걱정이 돼서 그런다!" 라고 외쳤다.


 아, 연락이 두절된 거구나. 회식에 참여했던 동기에게 물어물어 O대리님 어떻게 되신 것이냐 물었더니, 차장님은 사원들의 노래방 장기자랑을 흐뭇하게 감상하시고는 사라지셨고, O대리님은 회사 근처에 사심에도 아무도 행방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택시라도 잡아주지... (출처: Google)



 결국 오후 1시쯤,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서야 

“차장님, O대리님 전화 연결되셨는데, 어딘지 모르신답니다.” 


O대리는 말 그대로 Middle Of Nowhere에서 정신을 차렸다. 

회식 참여는 필수이고, 노래방에서 장기자랑도 필수지만, 안전한 귀가는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곳. 그것이 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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