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잡식에서 나만의 정체성을 찾고 싶다
나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특히 친할머니의 영향이 아주 컸는데, 친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마자 전두지휘하여 제사를 없애고, 명절 때 예배로 차례를 대신하셨으니, 이만한 예시만큼 그녀의 독실한 기독교 영향을 잘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외 큰어머니나 고모들도 모두 권사나 집사여서 (어머니 포함) 구역예배 등과 같은 한국 기독교 사상에 매우 친숙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 역시도 집안 분위기에 따라 한 교회를 10년 이상 다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 신이 존재한다고 믿어본 적은 없었다. 음성이 들린다거나, 방언처럼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면 으레 할 수 있는 능력(교회 말로는 달란트)들도 경함한 바가 더 없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방언
= 사투리가 아닌, 성령의 역사로 습득한 일이 없는 언어를 무아지경 상태에서 말하는 일을 가리킨다. 한 마디로 나도 모르는 언어를 내뱉게 되는 것.
이미 존재하는 외국어를 말할 수도 있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언어로 말할 수도 있다. 솔직히 미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인 중에 하시는 분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일명 ‘똥줄’이 탈 때(고3 수험생활과 같은) 자연스럽게 ‘주님’을 외치면서 그나마 나 자신이 크리스천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실감했을 정도다. 19살까지는 ‘사람을 두 종류로 크게 나눌 수 있다면 열렬한 기독교 사람들과 무교일 것이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다른 종교의 접점을 체험하지 못하다가, ‘종교의 의미와 다양성’에 대해 느끼기 시작한 것은 20살 성인이 되면서부터였다.
종교 에피소드 1_너 정말 결혼에 중요하구나
첫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뵈었던 날, 어머님께서 물으셨던 첫 번째 질문은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시니?’였다. 그쪽 부모님께서는 불교셨고,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직접적으로 누군가 내 종교를 묻거나, 나의 종교 정체성을 확립하기를 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그 남자친구였던 분 역시 ‘나는 후에 네가 결혼하면 교회를 나에게 강요하거나, 혹은 내 자녀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는 말을 듣고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기독교의 이미지는 부정적일 수 있고, 종교의 문제가 결혼에 중요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PS: 근데 솔직히, 너랑 결혼할 생각도 없었고, 출산은 더더욱이 생각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웬 김칫국이었담;;
종교 에피소드 2_기독교가 가진 천주교에 대한 환상
나는 믿음으로서의 종교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지만, 예술과 역사로서의 종교에는 관심이 많다. 특히 천주교를 빼놓고는 서양 미술과 음악을 논할 수 없었기에, 과거 천사와 악마 시리즈 같은 소설과 콘클라베 등 천주교의 전통과 역사에 대해 공부하곤 했다. 교회만 다녀본 기독교인으로서 공부하면 할수록 천주교는 그야말로 베일에 싸인 성스러운 종교였다.
특히 미사로 드려지는 성당 결혼식에 한번 가보았을 때 엄청난 충격이었는데, 면사포를 쓴 사람들이 있고 지루한 주례사가 아닌 신부님의 Holy 하고 Pure 한 축복이 결혼식에 있는 것 아닌가! 기독교 신자라 하면서도 전혀 순수한 것 같지 않은 나 자신도 고해성사나 삼위일체를 뜻하는 성호 긋는 행위만으로 순수해질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목사가 아닌 신부님이라는 존재 또한 왠지 내 기도는 하찮고 너무 진심이 부족해 하나님 귀에까지 가지 못할 것 같다면, 결혼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의 삶을 신께 바친 신부님이 내 기도를 들어준다 하면 더 잘 전달될 것 같은 생각에 빠져버린 것이다.
실제로 이런 고민은 나름 꽤 진지해서, 당시 개종을 고민하기까지 했는데 예상대로 강경한 엄마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무교인 사람들 기준에는 기독교나 천주교나 같겠지만, 신자와 신의 일대일 연결을 믿는 엄마는 제사도 지내야 하고, 술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며, 신부님을 통해서 고해성사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싫으시단다. (술은 기독교인도 먹는 거 같은데…)
비록 시도는 실패했지만, 여전히 나에게 천주교는 다소 공개적이면서 더 가족 같은 느낌이 드는 기독교보다 독립적이고, 환상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종교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