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잡식에서 나만의 정체성을 찾고 싶다
종교 에피소드3_진정한 불교 집안을 여기서 만나다니, 신기해.
첫 남자친구의 해프닝 이후, 불교는 살짝 쿵 머리에서 지워졌다가 현 남자친구 ‘그분’ 덕분에 다시 정신에 콕 박히게 되었다. 주변에 명절 때 사찰을 찾는 부모님의 지인분들은 있었으나, 내가 ‘기독교 집안’ 출신인 것처럼 ‘불교 집안’을 가까이 본 적은 없었다.
그는 나름 그의 ‘불교 집안’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불교에 대한 무지함 때문인지, 내가 그분의 불교 집안에 대한 지극한 불심을 이해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족 절이 있고, 가까운 친척 중에 주지스님이 계시다고 말해도 가족 중에 신부나 목사가 있고 가족이 운영하는 교회나 성당이 있다는 말로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나중에 가족 중에 상을 당하는 일이 생기면서 집안 대소사에 관한 주지스님의 영향력, 그분 어머님의 불심이 내 어머님의 독실한 기독교 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PS: 이쯤 되면, 첫 남자친구의 어머님과 같은 질문과 태도이신지에 대해 궁금하겠지만, 감사하게도 그렇진 않으시다. 하지만 여전히 석가탄신일은 그분의 어머님께 중요한 날이고, 가끔 절을 방문하시어 공양을 하시면서 댁네 평안을 빌고 오신다.
종교 에피소드 하이라이트_종교 하드코어, 점집에 가다
점집에 가보고 싶다는 것은 20대 중반 취준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였지만, 가득이나 힘든 시기에 안 좋은 소리까지 들으면 자신감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미루던 일이었다. 어떤 점괘 결과라도 내가 들었을 때 감당할 수 있는 상태일 때 가기 위해, 신입사원 최종 합격을 받자마자 나름 유명하다던 점집에 갔다. 자칭 기독교인인데도 점을 보러 간다는 것에 ‘죄스럽다’ 라는 느낌이 제일 컸지만, 궁금한데 어떡하랴. 해봐야지.
이 이후는 무당님의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앉자마자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음을 (자세가 안 좋았나?) 맞혀버려서 이미 마음을 반쯤 내어주고 시작했다. 게다가 아직 방울을 흔들거나 깃발을 뽑지도 않았는데 “어디 문서 붙어서 왔네”라고 말한 것이 화룡점정이었다. 떡 벌어진 내 입을 두고 무당은 계속 나의 과거를 맞혀나갔다.
무당이 맞췄던 것들로는
1. 무릎과 허리 등을 포함한 그 외 나의 건강 상태
2. 동생의 과식습관 (생일을 말하자마자, 왜 이렇게 무엇을 많이 먹냐며, 그만 먹으라 하더라.. 가장 소름이 돋던 부분이었다)
3. 내 어머니와 ‘그분’ 어머님의 종교 (양가 어머님들께서 평상시 많이 복을 비신다고 하신다)
4. ‘그분’의 성격 등이 있다.
무언가 보이는 것이 있기도 하구나 하면서 분명 어떠한 종교를 가졌더라도 혹 할 만할 때쯤 점괘는 종료되었다. 무당은 과거의 것만 맞추는 대신 앞으로의 일을 맞출 수는 없다고 하지만, 나는 이번 연도에 대운이 깃든 해라며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말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당시 점괘를 같이 보러 갔던 친구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어, 미래가 잘 보이지 않으니 시험의 승패 결과가 정해지면 다시 오라는 말을 들었다. 용한 무당이더라도 미래가 잘 보이는 사람,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실제로 보니 더욱 신기했다. (내 얼굴이 나라는 사람을 더 잘 나타나는 편에 속한다는 것도 아마 분명히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종교와 내가 가진 총 4개의 에피소드는 내 종교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담긴 경험들이다.
기독교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서, 기독교에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자랐지만, 여전히 천주교의 순수하고 경건한 분위기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한 행동에 원인과 결과가 따른다는 불교의 윤회사상이 내게 더 잘 맞는 교리가 아닐까라고 의심한다.
그러나 기독교, 불교, 천주교, 하물며 이슬람교까지, 종교의 핵심은 우리가 모두 항상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고 아마도 종교에 입문하게 된 계기의 대부분이 내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 낙담과 좌절을 경험했을 때라는 사실 또한 종교와 바램의 연결고리를 반증한다. 나 역시 신입사원 생활이 시작되자마자, 주택 문제, 저출산 문제 등을 맞닥뜨린 당사자가 되어가며, 신께 빌고 싶은 다양한 기도 제목(기독교에서는 이렇게 부르는데, 다른 종교는 어떤 말로 부르나요?)들이 생겨나고 있다.
인어공주의 악역 우르술라의 유명한 노래 ‘The Poor Unfortunate Souls’의 가사처럼 신께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우리들은 모두 불쌍한 영혼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두의 크고 작은 기도 제목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너무나 순진하고도 비현실적인 바램을 전달하면서, 종교 잡식의 자아 정체성 찾기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