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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약맛댕댕이 Jul 21. 2022

사망보험금의 수혜자는 누구로 하시겠습니까?

사실혼 관계의 보험금

 오랜 방황이었던 백수 생활을 청산하자마자 엄마가 내게 가장 먼저 했던 말은 

이제 밥벌이를 하니 네 보험 좀 가져가라.

였다. 잦은 잔병치레를 달고 태어난 내 앞으로 적지 않은 보험들이 있었고, 보험료 또한 적지 않았다. 



 3년만 더 들면 만기라서 절대 해시해서는 안된다의 협박과 함께 엄마는 보험 계약자 명의 변경을 할 수 있도록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을 주셨다. 보험사 운영시간은 은행과 같은 평일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 30분, 직장인에게는 점심시간을 온전히 반납해야 온전히 실행할 수 있는 미션이었다. 12시 정각이 되자마자 근처 보험사 고객센터를 향해 뛰어갔고, 곧 내 차례가 다가왔다. 


직원 : (세상 친절한 말투로) 안녕하십니까. 오늘 어떤 업무 도와드릴까요~?

나 : 보험 계약자 명의 변경하러 왔습니다. 필요한 서류는 미리 다 준비해왔습니다.

직원 :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회사 명찰을 매고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나를 보고 직원은 대충 급함을 눈치채고, 필요한 서류들에 내가 서명해야 할 곳을 체크해 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인해야 할 서류가 끊임없이 나오는 게 아닌가. 서류가 굉장히 많다는 말에 안내 담당자는 원래 모든 보험 업무 중에서 계약자 명의 변경이 가장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서류가 정말 많았다.. (출처 : Google)

 

내 이름과 엄마 이름을 스무 번쯤 썼을까. 문득 담당자가 질문을 했다. 


직원 : 네! 이로써 수익자, 계약자 동일하게 변경 완료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망보험금 대상자는 어떤 분으로 하시겠습니까?



 순간 누구로 해야 할지 얼버무리며, 대상자를 엄마로 설정하고, 나는 쫓기듯이 사무실로 복귀했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사무실까지 뛰어서인지, 얼굴의 열기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갑자기 죽는다면? 


가장 슬퍼할 사람은 부모님일 것이다. 자식을 잃는 슬픔은 어떠한 슬픔에도 빗댈 수 없어서 단어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내일의 삶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이 아니다.


내가 죽는다면 누가 가장 힘들어할까?  (출처 : Google)

 

동거남. 

 내가 당장 오늘 죽는다면 내일의 삶에 가장 큰 타격, 아니 내일의 삶이 없어질 사람은 바로 동거남이다. 현재 같이 삶이라는 것을 공동의 책임으로 꾸리고 있고, 삶의 빈자리를 가장 많이 느낄 사람은 지금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역지사지로 만약 지금 당장 동거남이 죽는다면, 난 집에 갈 수 없다. 그가 죽는다면 그가 없는 집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것도 나이고, 후에 그 집을 처분 및 정리하는 것도 내가 될 것이며, 이는 직장 생활을 이어나가기 힘든 고통일 것이다. 그렇기에 난 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면, 서로가 그 사망보험금을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50%는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시 말해 사망보험금이 부모님보다 지금 삶을 같이 살고 있는 동반자에게 현실적으로 더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걱정이 배가 되기 시작했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가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마친 유부라면 결정할 필요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이것이 현재 동반자 법에 대한 대한민국의 현실이자, 미혼 비율이 기혼 비율보다 높아지고 있는 트렌드의 현주소인 셈이다. 혈연으로 얽힌 사이가 현재 삶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가 아닐 수 있음에도, 금전적 혜택(?)은 여전히 혈연에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법적인 결혼은 사실혼 관계에서 올 수 있는 문제의 가장 현실적이고 간단한 해결책이다. (출처 : Google)


“인생의 기쁘고, 힘든 날을 이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가 옛날 결혼의 동기였다면, 이제 앞선 전제는 꼭 법적인 결혼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나는 엄마에게 연락해 사망보험금이 나오면 일부를 꼭 그에게 전달해달라 부탁했다. 엄마에게도, 그에게도 내 사망보험금은 슬픔을 메꾸기에 턱없이 부족할 금액일 것이다. 그래도 당장 삶을 영위하기 힘들어질 나의 동반자가 적어도 1년 동안 세계여행이라도 다니며 다음 인생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치유의 과정에서 금전적인 부분만큼은 고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만큼의 도움을 주고 싶다.


웃어버린 나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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