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남과 동거를 마음먹게 된 계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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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가 예약한 숙소가 거지 같다면? 을 먼저 읽어주세요:)
앞선 글에 이어서 연인 관계에서 여행을 꼭 추천하고 있지만, 꼭 연인과 함께하는 여행이 즐거워서만 은 아니다. 의외로 많은 연인이 안 싸우다가 여행에서 싸우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고, 나 또한 그랬던 적이 있다. 이번에는 안 싸운 게 신기했던 그의 진짜 모습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경험을 공유한다.
Episode2
제주는 우리 커플에서 나름 의미 있는 장소이다. 딱히 제주도에서 고백받거나, 기념일 혹은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벌써 5번이나 다녀왔으니까. 장소마다 추억이 서려있달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제주를 꼽으라면, 단연 둘이 사귀고 나서 갔던 첫 번째 제주이다.
당시 동거남과(그때는 동거남이 아닌 애인이었군요..) 나는 연인이 되고 나서 가는 첫 여행에 매우 들떠있었지만, 우리의 여행에 발목을 잡는 것은 다름 아닌 운전이었다.
나: (무려 성인이 되기 전 수능 끝나자마자 운전면허를 1점 차이로 간신히 통과한 무사고, 무경험, 장롱면허)
그: (군대 갔다 오고 땄지만, 무사고, 무경험, 장롱면허 경력 연수 나와 동일)
초보운전이라는 말도 민망한 장롱면허 둘이서 제주도에서 운전이라니 지금 생각해 보면 기겁할 일이다.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철이 없을 때의 행동이기에 반성하며, 이후 저는 운전 연수를 다시 받았음에도, 운전은 항상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전운전하겠습니다’를 노란색 종이에 붙여, 렌터카 뒷좌석에 붙이고, 렌터카 업체에서 현장 결제로 자차보험 위의 특약 가입을 추천하자, 그의 의견으로 특약까지 가입했다.
‘운전 초보니까 안전운전/배려운전/양보운전하자’라는 마인드로 모든 차량을 양보하면서 운전한 결과, 무사히 여행의 마지막 밤까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3일 동안의 동거남의 운전을 본 나는, 한적한 공간이라면 내가 운전을 해보고 싶다는 제안을 했고, 실제로 호텔 주차장까지 안전하게 운전해 돌아왔다
문제는 당시 만실이었던 호텔 덕에 뒤편 언덕에 위치한 임시주차장에 주차를 해야 했고, 사람 하나 없는 가로등 하나에 비까지 내려 주차장 입구가 잘 보이지 않던 나는 입구라고 생각한 곳에 엑셀을 밟았다.
(속도(X), 빌린 차종이 모닝이라, 엑셀을 밟지 않으면 차가 올라가지 않았음)
순간 꽈드득 소리와 함께 작디작은 모닝의 앞부분이 붕 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얼어붙은 나에게 동거남은 천천히 차를 뒤로 빼라고 지시했지만, 차를 뒤로 빼면서도 차의 앞 범퍼가 긁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덜커덩하고 차가 뒤로 빠지고, 주차를 하여 차 상태를 확인했지만, 타이어 파손, 휠 긁힘, 앞 범퍼 뒤틀림 등 모닝의 앞 얼굴은 이미 많이 아파 보였다.
3박 4일 여행 중에 내가 운전대를 잡은 그날에 사고를 내다니.. 게다가 초보자가 보기에도 꽤 심각해 보이는 수리비.. 사실 오만가지 드는 생각에 동거남의 표정을 잘 살피지 못한 채 비를 맞으며 호텔로 들어갔고,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다. (번갈아가면서 우는 커플입니다..ㅋㅋ)
렌터카 계약 상, 사고가 나면 30분 이내로 사고처리 신고를 해야 한다. (30분이 넘으면 사고를 숨기려는 시도를 했다고 간주됨) 당연히 동거남이 전화해 사고 접수를 하고, 렌터카 업체 측에서는 내일 오전 중으로 레커차량을 불러주기로 하였다. 이때 동거남이 혹시 모르니 가입하자고 했던 특약이 빛처럼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자차보험으로도 커버가 되지 않던 휠, 타이어, 레커차가 특약으로 인해 보상처리가 되면서, 레커차 추가 거리 비용만 지불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칭찬해 동거남..)
자!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여행을 갔는데 무리 없이 잘하고 있던 운전을 상대방이 해보겠다며 제안한 후, 사고를 냈다. 화를 내지 않더라도 짜증 섞인 푸념 한 번을 안 할 수 있는가?
만약 나였다면, ‘아, 내가 그냥 한다고 했잖아.’라던가, ‘그니까, 운전을 꼭 한다고 해야 했어?’라는 타박성 멘트라도 하나 던졌을 것이다. 이후 왜 그때 화를 내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화를 냄으로 인해 달라질 것이 없어서’라고 말하지만, 이는 문제가 생겼을 때 철저히 감정은 배제한 채, 처리에 집중하는 그의 성격을 드러내 주는 가장 완벽한 예시인 것이다.
모닝이 돌 위에 올라갔던 2초는 내가 그에게 100% 의지할 수 있던, 100%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었다. 이후 사고처리 과정도 많은 의지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 2초 덕분에 인생에 큰 무언가가 잘못되더라도, 그는 일단 해결 방법을 찾는 것에 집중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여행에 수많은 Unexpected Events 중에서도 단연코 1등인 일명 ‘제주 렌터카 사고 사건’, 그를 최고의 여행 메이트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이다.
PS. 이 경험을 계기로 렌터카 보험에 전문가가 될 수 있었고, 이후 지금까지 사고 경험은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특약에 가입합니다. 운전할 때는 나와 동승자, 그리고 다른 사람의 안전까지 고려하는 운전자가 되도록 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