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손자
세월은 원망스러운 것도 희나리 지게 했다. 서로 으르렁대던 시절은 없었던 듯 손자가 중심이 되어 떠들었다. '내가 진작 나를 포기했더라면, 이 아이들이 더 빨리 밝은 모습이 되었을까…' 잠시라도 혼자가 되면 물밀 듯 밀려오는 찰나적인 사유의 순간. 경내에는 멋들어진 정자가 지어져 있었다.
"아이~ 시원해!" 정자에 앉아서 손자의 양손을 벌려 바람을 맞이 했다. 고삐 풀린 망아지 모양 손자가 좋아했다. 지 엄마 품에서 내게로, 외할아버지로부터 외삼촌에게 신나게 안겨들었다. 정자에 드러누워 보는 하늘의 구름이 몽실몽실 강아지 같다. 내 강아지도 식구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아기가 태어나서 일 년 동안은 부모를 즐겁게 웃도록 만든다고 한다. 사실이다.
"선우가 오줌을 쌌어. ㅇㅎㅎㅎ" 딸이 신발을 신으며 킥 킥 댔다. "우리 손자가 별난 방법으로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렸네" 대웅전 법당도 때마침 텅 비었다. 손자가 안방인 양 좌로 갔다, 엎드려서 마루 조각을 검지로 헤집어도 보고, 또 잽싸게 지어미에게 기었다. 멀리 떨어진 내게로 아래 웃니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이내 순례객들이 참배를 했다.
또 다른 내가 앉아 있었다. 눈이 움푹 들어간 내 딸. 어깨가 축 처져 드러누우면 곧 잘 것 같은. 손자는 어멈과는 아랑곳없이 허벅지를 누르고, 허리를 딛고 올라서서 뒷 배경을 보다 스르륵 엉덩이를 뺀다, 발 디딘 곳으로 쏙 하니 내려간다, 그리고는 내 발을 향해 용을 쓰며 건너온다. 아주 오래전 손자의 어미가 그랬다. 나는 쌍둥이에게 지쳐서 넋이 나간 상태였다. 지금 딸이 그렇다.
만사 괴로웠다. 그저 있는 자리에서 누워 쉬고 싶다는 것 외는 없었다. 자야 할 손자는 싱싱하고, 어미는 누울 자리만 찾고 있다. 두 딸은 나의 어깨를 짚고 앞 뒤로 엉키고 짓눌렀다. 그리고 깔깔대며 웃어댔다. 풀리는 눈동자, 끄덕이는 나의 머리. "엄마! 자?" 쌍둥이가 내 눈을 마구 벌렸다. 그래도 눈은 자꾸 감겼다.
"손자야, 제발 잠 좀 들어라." 내가 안고서 다독이면 손에서 미꾸라지 빠지듯 어미에게로 간다. 젖을 찾는 눈치였건만, 딸은 최소의 체면을 차렸다. 손자가 포기한 채 다시 일어서고, 앉았다, 내 옆으로 왔다가 외삼촌 뒷 머리를 만져 보았다, 손가락 과자를 계속 우물대면서 돌아쳤다. 쌀 튀밥도 손에 쥐고 먹이니 금세 감질이 나는지 몸부림을 쳤다. 못 자는 손자는 더 괴롭다는 것이 역연했다.
손자의 이틀간 행차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더울 때 잠 잘 자는 것도 더위를 잊는 한 방법이다. 그런데 이 집 애꿎은 냉방기만 밤새 고생했다.
"내 딸아, 씻껍 했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