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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Aug 24. 2020

"내 딸아, 씻껍 했제?"

잠 못 드는 손자

  남편이 손자를 위해 미세먼지 확실히 제거해서 손자님을 모시러 왔다.

  "내 안 나간다꼬 캤잖아!" 

딸이 나를 꼬시는 이유가 

  "엄마와 선우 외삼촌,  '환상의 조합'이 되어서 선우를 돌봐줘야 해요" 그리고 

  "엄마가 나가줘야 선우를 운문사 구경을 시킬 수 있어엄마 부탁에~~" 

손자보다 더 착한 남편님은 

  "애들이 다 그렇지 뭘 그렇게 빼고 그래. 정 그렇다면 아들하고 둘이 갔다 오께, 집에 있어!" 


  "아빠는 결재자의 입장에서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ㅎㅎㅎㅎㅎ" 

아들이 반론을 제시했다. 딸도 합세하여 

   "실무자 측에서는 환영할 말씀이 아닌데요. 어제 아빠가 겪어보지 않아서 그런 말씀 하시는 거예요."  

그 말에 내가

   "그럼, 당신이 선우를 안고 아들이 운전하면 되겠네"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저 양반이 웃기고 있네. 뭘 몰라도 한참 몰라…' 약간 섭섭하려 했는데, 아들과 딸이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어서 더 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아예 점심을 먹고 운문사로 길을 잡았다.


  남편의 차에는 카시트를 설치하지 않았다. 더운 날 지하주차장에서 탈부착은 예삿일이 아니라 포기했다. 손자의 오전 잠은 놓쳤고, 오후 잠을 기대했다. 지 엄마에게 안겨서 탔으니까. 그러나 역시 잠 못 들어 헤맸다. 손자는 차 안이 넓어서 앉고, 서고, 기고, 오르락내리락 정신을 쏙 뺐다. 오늘 난 빠르게 태황태후이기를 반납했다. 기꺼이 할머니의 품을 열었다. 


  "니 아부지 변해도 마이 변했네~" 남편이 주차장에서 귀중한 손자님을 안고, 아들은 조카님을 큰 양산으로 햇빛을 차단하여 경내로 진입하는 가로수 길을 걸었다. 내 새끼와 손자는 확실이 다르다. 안고 가던 자식이 품 안에서 뻗대면 눈부터 부라리던 남편이 손자를 얼르고 달랬다. 손자의 가방을 어깨에 메고 뒤따라가며 보니 조금 슬퍼지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진작에 새끼들에게 저렇게 했으면 좀 좋았을까…'


  세월은 원망스러운 것도 희나리 지게 했다. 서로 으르렁대던 시절은 없었던 듯 손자가 중심이 되어 떠들었다. '내가 진작 나를 포기했더라면, 이 아이들이 더 빨리 밝은 모습이 되었을까…' 잠시라도 혼자가 되면 물밀 듯 밀려오는 찰나적인 사유의 순간.  경내에는 멋들어진 정자가 지어져 있었다. 


  "아이~ 시원해!" 정자에 앉아서 손자의 양손을 벌려 바람을 맞이 했다. 고삐 풀린 망아지 모양 손자가 좋아했다. 지 엄마 품에서 내게로, 외할아버지로부터 외삼촌에게 신나게 안겨들었다. 정자에 드러누워 보는 하늘의 구름이 몽실몽실 강아지 같다. 내 강아지도 식구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아기가 태어나서 일 년 동안은 부모를 즐겁게 웃도록 만든다고 한다. 사실이다.


  "선우가 오줌을 쌌어. ㅇㅎㅎㅎ" 딸이 신발을 신으며 킥 킥 댔다. "우리 손자가 별난 방법으로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렸네" 대웅전 법당도 때마침 텅 비었다. 손자가 안방인 양 좌로 갔다, 엎드려서 마루 조각을 검지로 헤집어도 보고, 또 잽싸게 지어미에게 기었다. 멀리 떨어진 내게로 아래 웃니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이내 순례객들이 참배를 했다. 


  또 다른 내가 앉아 있었다. 눈이 움푹 들어간 내 딸. 어깨가 축 처져 드러누우면 곧 잘 것 같은. 손자는 어멈과는 아랑곳없이 허벅지를 누르고, 허리를 딛고 올라서서 뒷 배경을 보다 스르륵 엉덩이를 뺀다, 발 디딘 곳으로 쏙 하니 내려간다, 그리고는 내 발을 향해 용을 쓰며 건너온다. 아주 오래전 손자의 어미가 그랬다. 나는 쌍둥이에게 지쳐서 넋이 나간 상태였다. 지금 딸이 그렇다.  


  만사 괴로웠다. 그저 있는 자리에서 누워 쉬고 싶다는 것 외는 없었다. 자야 할 손자는 싱싱하고, 어미는 누울 자리만 찾고 있다. 두 딸은 나의 어깨를 짚고 앞 뒤로 엉키고 짓눌렀다. 그리고 깔깔대며 웃어댔다. 풀리는 눈동자, 끄덕이는 나의 머리. "엄마! 자?" 쌍둥이가 내 눈을 마구 벌렸다. 그래도 눈은 자꾸 감겼다. 


  "손자야, 제발 잠 좀 들어라." 내가 안고서 다독이면 손에서 미꾸라지 빠지듯 어미에게로 간다. 젖을 찾는 눈치였건만, 딸은 최소의 체면을 차렸다. 손자가 포기한 채 다시 일어서고, 앉았다, 내 옆으로 왔다가 외삼촌 뒷 머리를 만져 보았다, 손가락 과자를 계속 우물대면서 돌아쳤다. 쌀 튀밥도 손에 쥐고 먹이니 금세 감질이 나는지 몸부림을 쳤다. 못 자는 손자는 더 괴롭다는 것이 역연했다.


  손자의 이틀간 행차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더울 때 잠 잘 자는 것도 더위를 잊는 한 방법이다. 그런데 이 집 애꿎은 냉방기만 밤새 고생했다. 


  "내 딸아, 씻껍 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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