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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Sep 06. 2020

자네가 더 괴롭지…

포토에세이: 보경사

   "언니가 절에 대해서 잘 아니까 천왕문 설명을 좀 해줘요."


   "천왕문(天王門)은 사(四)천왕문이라고도 해요.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키는 고대 인도의 신을 사천왕이라 하며, 대승불교가 흥기하면서 힌두교 사상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인 흔적이지요."

  "그럼 우리나라는 대승불교 국가인거예요?"

  "맞아요, 고모. 힌두교 신들 중에서 이 네 천왕이 석가모니 붓다에게 귀의하면서 붓다와 불교를 옹호하는 역할을 자원한답니다. 대승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절 초입에 천왕문을 세우게 되지요. 그 이유는 보경사를 지킨다는 뜻이지요. 규모가 큰 산중 사찰은 대부분 일주문을 지나면 사천왕문을 거치게 되는데 문 안에 있는 신들이 우락부락 하게 보이지요?"


  보경사는 평지가람이었다. 주차장에 승용차를 세우고, 내연산 보경사(內延山 寶鏡寺)임을 알려주는 일주문을 통과하여 입장표를 사서 절을 향하다 보면 해탈문이 나온다. 계속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길을 조금 걷노라면 평지에 팔작지붕 아래 한자로 쓰인 천왕문 현판이 보였다. 천왕문 안 좌우에 동남서북을 관장하는 천왕들이 우악스럽다기 보다 해학적인 천왕상이라 웃음이 나왔다. 작은 시누이가 웃는 나를 보고 도움을 요청했다.  




  작은 시누이는 남편의 막내 여동생인데, 내외가 8월 말일 내 집에 왔다. 손자 돌 잔치를 앞당겨서 하기로 했는데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예약한 음식점을 취소하고 딸 아파트에서 간소하게 식사를 했다. 그리고 휴가차 경주로 가면서 포항 근교 보경사에 들렸다. 남편이 한참 잘 나간 시절의 이곳은 군 휴양지와 해양훈련장이 있어 자주 휴가를 왔다. 남편이 퇴직한지 올해로 만16년이나 되었다. 그러니 절 이름만 기억할 뿐 보경사 경내가 생소했다. 


  "그럼 동방 지국천왕부터 이야기 해봐요."

  시누이가 이름이 적힌 표지를 읽고 설명을 해달랬다. 나는 손아래 시누이가 둘이다. 두 시누이에게 지금까지도 반말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어려워서 존대하다가 지금은 낮추지 못해서 하고 있다.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 천왕들의 원어(原語)는 생략하고 특징을 설명할 계획이었다. 우리는 동서남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인도는 동남서북으로 표현하는데 사방을 돌고도는 인간사의 윤회를 의미한다. 천왕문을 들어서서 오른쪽의 천왕상을 보면, 좌 동방 지국천왕 우 남방 증장천왕이다. 동방 지국천왕은 칼과 여의주를 들고 있다. 그리고 남방 증장천왕은 윗부분이 파손된 봉을 들고 있다. 아마 창인 것 같은데 파손된 부분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진다.  



 


   지국천왕이 악마를 짓밟고 있다. 천왕이 신은 신발을 보면, 발이 드러나게 엄지 발가락에 끼워 신은 샌들이다. 악마가 그 발바닥을 입을 벌리고 눈이 튀어 나올 정도로 오른 손과 무릎으로 떠받치고 있다. 몸을 뒤로 재쳐 배에 힘을 주면서 천왕이 누르는 힘을 이겨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 같이 보인다. 

 

  천왕의 샌들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문화가 아니다. 인도의 문화가 중국의 문화와 만나서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우리나라는 가감없이 고스라니 받아들인 것이다. 천왕이 장군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은 중국에서 각색한 것이며, 군인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우리나라 식의 이름 행전(行纏)또는 행등(行騰)을 하고 있는 천왕의 종아리와 샌들을 신은 발 아래 악마의 등을 한 발로 짓누르고 있다. 

"아이구, 나 죽네!"라며 소리를 지르느라 입을 크게 벌렸으며 눈이 왕방울 만하다.  


그리고 무장(武將)한 천왕의 두 눈이 아주 익살스럽게 느껴진다. 악마를 짓누르는 표정으로는 좀 어울리지 않는 위엄이 풍긴다. 




  서쪽 하늘을 지키는 천왕의 오른 손에눈 칼을 아래로 들었고, 왼손은 뭔가 잡은 것 같은데 지물이 보이지 않는다. 서방 광목천왕이 왼발로 누르고 있는 사람 같지만 악마다. 왼팔이 뒤로 젖히고, 오른 손으로 어떤 물건을 붙들어서 억지로 버티며 천왕의 발길을 빠져나오려고 하는 듯 하다.



   북방 다문천왕은 왼발로 등을, 오른 발은 악마의 두 종아리를 꽉 밝고 창과 탑을 들고 있다.

왼 발로 등을 누르면서 약간 힘을 빼고 서서 그런지 악마의 표정이 그나마 덜 고통스럽고 오히려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천왕상은 동방지국천왕은 비파를, 남방증장천왕은 칼을 그리고 서방광목천왕은 용을 꽉 움켜쥐고 있으며, 북방다문천왕은 탑을 들고 있다. 보편적으로 나열한 지물(持物)을 들고 있다. 그리고 지물이 조금씩 다르기 하다. 그러나 보경사 천왕문 천왕상은 그렇지 않고 맞는 것은 북방천왕뿐이다. 또 보경사 천왕은 지물이 파손된 봉을 들은 것과 용이 없는 여의주를 든 천왕, 칼만 들고 있는 천왕상을 보면서 보수나 증축할 때 잘못 설치하여 천왕의 방위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쓴 보람이 느껴졌다.

 

  그런데 천왕의 발길에 짓밟히는 사람같은 악마를 보면서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는 역발상을 하게 되었다. 무엇을 상징하였나. 우리 인간의 욕심(탐,貪)과 분노(진,嗔)와 어리석은 사견(邪見, 대승은 치라고 함) 그에 따르는 감정적인 괴로움들인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다. 탐진치에 휩싸이면 자동적으로 수비고우뇌에 빠진다. 욕심은 내면 낼수록 이성적이지 못하고, 번뇌의 불길이 거세어진다. 이룰 수 없어서 또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분노심은 폭력과 해치고 싶은 마음이 머리 끝까지 치솟아 화를 참을 수 없다. 어리석은 행동은 자신을 제어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큰일인 것이다. 어리석다는 말은 탐진치와 수비고우뇌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며,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없는 상태라서 저지르게 되는 행위다.

 

 지금까지 살아보니 말짱 쓸모없는 부정적인 것들이며 내 건강에 백해무익했다. 내가 그동안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작은 시누이에게도 말해주었다. 붓다의 가르침을  배우면서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나올 수 있었다고. 

 

 문득 며칠 전 딸 내외가 야밤에 싸웠다. 사위는 성미가 매사 네모 반듯해야만 편안한 사람이다. 그렇지 못하면 생병이 나서 전전긍긍 했다. 가랑잎에 불 붙는 내 딸이 사위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주며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현명하게 감내하고 있었다. 그 밤에 딸과 손자를 데리고 보란 듯이 아파트를 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사위를 상책(上策)의 한 마디로 굴복시키는 말을 연구했다.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장본인은 더 괴롭다. 고민하는 사위는 결이 고운 사람이라 이내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그 말을 하기까지 불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자신을 다스리자면 얼마나 채찍질 하였겠나.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내가 왜 하지 말아야 할 어리석은 행동을 하였나'라면서 자책을 하고도 남을 사위다. 딸이 사위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못했으니 얼마나 야속하였으며 속이 많이 상했을까.  

 

  사위가 연장전까지 벌렸다. 그리고 날이 밝은 몇 시간 뒤 "장모님, 저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나와 얼굴이 마주치자 머리를 숙였다. 사위의 얼굴도 보지 않은 채 냉정하게 "자네가 더 괴롭지…" 두 말 하지 않았다. 보경사를 돌아보면서도 사위에게 어떤 말을 하여서 상생할 수 있을지를 궁리했다. 천왕이 악마를 짓누르듯 대하기보다 "자네 의지대로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으니 얼마나 힘이 들겠나. 자네도 많이 괴롭지?"라며 사위를 보듬고 감싸 안아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내가 자는 머리맡에는 책이 여러 권이다. 서너 번 사위에게 아들 앞에서 독서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다. 내 아들에게도 하지 않는 잔소리를 사위한테는 더 못한다. 하고 싶지만 상책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지론이다. 그저 입을 자크로 채우고 독서하는 모습, 글을 쓰는 나를 보여주는 것 외 더 없었다. 사위가 변하기를 기다려야만 한다. 나는 딸에게 남편을 기대하지 말고, 더 공부하여서 당당해지라고 권한다. 말없이 보여주라는 말이다. 

 

  며칠 내면의 강물이 원활히 흐르지 못했다. 눈을 부릅뜨고 온 몸의 힘을 발에 실어서 악마를 응징하던 천왕상이 실마리를 암시했다. 타인을 진심으로 내 편 만드는 기술에 대하여. 그런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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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사진은 문경군법당의 후불탱화다. 

   사진 오른쪽 녹색 둥근 후광의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가 동방천왕이다. 바로 아래 검은 수염에 긴 칼을 든 남방, 그리고 왼쪽으로 불상을 지나서 맨 끝에 서방천왕의 오른 손에는 여의주를 들었고 왼 손으로 용을 꽉 쥐고 있다. 용은 입에서 여의주를 빼면 맥을 못춘다고 한다. 용을 보면 거의 여의주를 물고 있다. 그래야 용이 위력을 발휘한다나. 서방 위 북방다문천왕, 왼손에 탑을 들었고 오른 손에는 창을 들고 있다. 

 

사진 우측 끝 동에서 아래 서, 불상을 지나서 좌측 끝 남, 위에 북 다시 우측 동남서북으로 돈다. 윤회. 






 아래는 보경사 적광전의 후불탱화(後佛幀畵: 불상 뒤에 걸린 그림)에서 사천왕들이다. 부처가 계시는 불법도량을 옹호한다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겼다.


  사진 오른쪽 맨 아래 '문수보살'이란 팻말의 보살상 위에 탱화 속 비파를 든  동방, 아래 칼을 든 남방, 남방천왕의 좌측 불상을 지나서 보현보살.  보살 상 위의 서방광목천왕이 오른 손에 여의주를 왼 손에 용을 움켜쥐고 있다. 서방 위의 북방 다문천왕은 왼손에 탑을 쥐었고, 오른손은 창을 들었다.


  '동서남북'으로 방위를 찾으면 왔다갔다 하게된다. 그러나 동남서북은 사진 오른쪽 중앙 부분에서 아래로 그리고 불상을 지나서 왼쪽 보현보살 위의 서방과 북방, 다시 동남서북으로 이어져 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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