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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Sep 19. 2020

앞서 가며 돌아보았다

   일요일남편이 딸의 아파트에서 보낸 지 두 번째 휴일이다갈 곳이 예정 없던 그가 내게 전화를 했다함께 청도 운문사로 가겠느냐고밀린 글쓰기를 완료하려고 앉았던 컴퓨터 앞에서 갈등이 생겼다불화(佛畵)에 관련된 사진이 필요하던 차 반가웠다그러나 '요청의 손길을 잡아주어야 하나?' 이내  때문에 거절했다.

 

  영천 은해사 입구는 잘 정비된 도시 같았다그는 앞장서고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서서히 쳐졌다남편은 가던 길 돌아보며 나를 기다리는 듯했다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건만 전진을 하지 않으니 마음이 바빠지려고 했다평소의 하던 버릇은 흡족한 사진이 찍힐 때까지 찍고삭제하기를 반복해야만 일어설 정도다남편이 앞에서 은근히 마음 쓰이게 하고 섰다대충 찍었다.

 

  "손자 키우는 것을 보면서 당신에게 많이 미안해남편이 승용차 안에서 하는 말씀이었다. "하나도 아닌 쌍둥이를 혼자서 살림 하며 다 키우다니 고생 시켜서 미안해." 안전벨트를 매다 말고 '먼 소리래?'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남편이 근래 토요일마다 지인 몇 과 산으로 들로 나갔다그들의 공통 대화는 할아버지 육아 돕기였다하나같이 '힘들고손주는 키워 줘도 본전이다'라는 것이다그러니 나의 황혼 육아는 '고생을 바가지로 한다이었다. 

 

  "고마워요쌍둥이 일은 다 잊어서 생각도 안 나요." 쌍둥이를 키우던 곳은 김포공항 경비부대 관사였다수도꼭지는 있으나 배관이 안 되어 물 구경을 할 수 없는 곳이었다그런데 그 힘들었던 시절이 내게는 희미한 추억으로 회자될 뿐이다손자를 키우는 요즘육체는 힘이 든다.  완전히 독박 육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쌍둥이 딸을 어떻게 키웠는지 기억이 안 난다.

 

  남편은 경내를 둘러보지 않았다요사 채에서 손전화기를 보며 내게 시간을 주었다배려해주는 것 같으면서 고삐를 잡아 쥐고 흔들어 댔다나도 전에 같았으면 입이 댓 발이나 나와서 불편한 했을 것이다혼자 내버려 두고 최대한 빨리 구석구석을 다녔다그러나 뒤통수가 근질거렸다자연히 마음이 들뜨기 시작하였고남편이 의식되었다

 

  나는 아직도 남편의 팬티가  장인지 모른다그는 정확히 알았으며  자리에 있어야 했고미리 다려진 옷은 즉시 입을  있도록 준비되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가지를 말해 주면  가지가 있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가고 있어조금만 기다려

." 눈곱도 떼지 않았으면서 나간다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그러면서 내가 말이 틀리면 거짓말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정반대인 우리 부부참으로 많이 달랐다붓다의 가르침이 철로처럼 벌어져 있는 극간에 오롯이 들어와 앉았다붓다가 남편이었고친구였고자식이 되어주었다나는 식구들에게 내가  도리를 하는 것으로  이상 바라지 않았다남이  뜻대로 해주기를 바라지 말라는 말을 공감하며 매사 최선을 다하는 것을 배우게 했다생각을 전환하는 과제가 '있는 그대로 보기'입에서 바른 말이 튀어나오려 하는 남편에게 평화를 위하여 씁쓸히 돌아서며 '그래당신은 그러더라.' 

 

  남편은 손자를 10분도 안지 못하고 있다. "할머니 어디 있나?" 슬그머니 손자를 내게 안기고는 "당신 정말 고생한다 녀석이 당신을 많이 힘들게 하 네그러고는  곁에서 멀어진다.

 나타나서 할아버지임을 자처한다놀아주는 그를 보면 아이들과는 거의 없었다지금도

아이들은 아버지와 거리를 둔다단지 아버지의 체면을 존중하여 앞에서는 온순하다자식들은   없지만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남편이 어서 가자는  서성대고 있다내가 알고 싶은 것은 아직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그리고 가을 하늘도 멋지게 표현해보고 싶건만 아기  달리듯 무언의 압박감이 밀려오고

있다문득  곳도 없고해야   없는 퇴임한 남편들의 하루 일정이 얼마나 고될까당장

 남편이 일요일  시간 갑갑하여 저러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었다거기다 용돈마저 적다면 자연스레 쪼잔해질 수밖에 없다 

 

  사돈이 딸의 아파트에 손자를 보러  있었다그래서 우리는 아파트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남편은 나의 눈치를 봐가며  먹을래사돈이 빨리 간다고 했는데 딸에게 전화해보라는    보챈다. 

해는 아직 벌겋게 달아 있었고  없는 나와 남편은 공원 의자에 저만큼씩 떨어져 앉았다나는 하늘을 보며 사진을 찍었다그는 앉았다섰다 "사돈 갔는지 전화해볼까?" "당신 호떡 먹을래?" 

 

  지난 일요일은 남편에게 화두가 되었던 모양이다오는 일요일에는 지인의 농사일을 도와주기로 했다면서 내게 알려주었다발 빠르게 대처하는 남편이 정말로 고맙다남편은 비록 나와 정반대이지만 속정이 깊은 사람이다남편은 아주 오랜 만에 찾아온 우리의 편안한 시간을 소중히 지키고 싶어 했다매끄러운 말을 표현하지 못하여 처자에게 아픔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적극적으로 탈피하려는 노력이 그동안 눈에 보였다

 

  절에 들어갈  '팔공산 은해사 안에는 사천왕상이 도열하고 있었다의문점이 들었으나 앞서는 남편을 따라 가느라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그저 그와 내가 앞만 보고 살아왔듯 절을 향해 전진했다남편이 일주문 가까이 갔을 즈음에 천왕문(天王文한자 현판이 보였다일주문을 지나면 해탈문이나 금강문이 나오며 그다음으로 천왕문이 수순이다그런데 시절 인연에 따라서  생략되고 일주문이 천왕문 역할까지 하므로 웅장하게 팔작지붕으로 멋과 위용을 부린 듯하다.

 

   남편은 천왕상이었다은해사 천왕처럼 식구들을 깔아뭉갰고 힘들게 했다권선징악을 권하던 시대의 소산물인 천왕상은 사찰 문화의  자락일 뿐이다그러나 호랑이는 호랑이다 남편은 이빨이 빠졌지만 끝이 뭉툭한 발톱을 아직 숨기고 있다그래도 남편 성질 죽어도 많이 죽었다본인은  죽었다면서 웃어대지만그대로 살아 있으며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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