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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Nov 28. 2020

미쳤어예. 쫑질하로 가구로

  수간디가 그랬다. 나더러. "미쳤어예. 거 가가 쫑질한다꼬예?"  "하이고~ 나는 그래 안 합니더." 일언지하 무우 자르듯 싹둑 잘랐다. 조수석에 앉은 멧따와 나는 수간디의 흥분한 소리에 한바탕 웃었다. "ㅎㅎㅎㅎ 내가 미쳤어요"라고 대꾸하면서.  


  그녀는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린다면서 도반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내가 그녀 옆에 앉으면서 뭘 도와줄 것이 없느냐고 의도적으로 물었다. 맥이 풀린 채 내게 커피를 부탁했다. 종이컵에 삼박자 커피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바깥으로 나와 컵을 건네며 혼자 두기 뭐해서 슬그머니 엉덩이를 붙였다.


  보름 전 우리는 만났다. 수간디는 "내가 지난번에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산다는 것을 이자뿌고 있었어" 그날은 수간디가 수계 하는 뜻깊은 날이었다. 수계명은 '수간디'였다. 빨리어(語) 법명의 의미는 '좋은 향기'. 그녀에게  '좋은 향기'를 뿜으려면 매사 조심하며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스님의 법문이 있었다. 모든 사물은 고유한 향기가 있다, 향기와 냄새를 향내라고 하는데 사람이 드나드는 곳에서 난다, 말은 방사능과 같아 입에서 빠져나가면 바람을 거스르지 않고 향을 풍긴다. 진실한 마음이 담긴 따뜻하고 자애로운 말을 하라고 당부했다.


  수간디는 처음 만났을 때 '교만하다' 느껴졌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저돌적으로 거침없이 하는 말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상대의 말은 중간에서 잘라 자신이 다 해버리고, 그리고 자신의 말은 모두 두 말하지 말고 들으라는 것이다. 그녀의 주관이 그러했다. 변하기 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이해되었지만, 또 한 편 과연 '나도 저랬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경험으로는 입이 재바르면 영리하고 손이 빨랐다. 또한 음식 솜씨와 더불어 말솜씨도 한 가닥 했다. 나의 큰 동서가 그랬다. 꼭 수간디 같았다. 집 일, 외부의 행사에 종종거리며 다녔고, 잠시도 종알거림을 쉬지 않았다. 그리고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하며 끊임없이 웃고 떠들었다. 반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무척 서운해했다. 나는 한 마디 꺼내기도 어려워서 항상 입을 다물고 들어주었다. 수간디가 그런 것 같았다.


  "딸 아파트에서 묵고 자고 한다꼬예?"  우리는 하안거 해제하고 귀가하는 차 안에서 다시 나란히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대부분 수간디가 대화를 이끌어가는 인상이 들었다. '듣기만 하자'며 함께 차를 탔던 내가 딸의 아파트에서 손자를 키우는 중이라 말했다. 물론 각자 가족 이야기 끝에 나도 나온 말이었다. "잠까지 자면서 손자를 키운다꼬예?"


  한 지인이 며느리에게 손자를 키우라며 천만 원 주었다고 했다. 대신 외손녀를 돌봐준다고. 그녀는 나의 스포츠댄스 짝꿍이며 다문다문 손녀를 데리고 왔다. 강당 한편에 자리를 깔아 손녀를 앉혀 두고 운동을 하면 모든 이들이 이뻐했다. 나도 손자를 그렇게 키울 계획이 있었다. 내 짝꿍의 육아지원금은 나의 뇌리에 작은 못 하나를 박았다.


  손자가 예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어느 날부터 아장아장 걷는 아이가 이뻐서 칭찬을 했다. 아기를 좋아하지 않던 나였다. 그러나 세월이 천진불(天眞佛)*을 좋아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손자가 돌이 지나면서 가끔 훌훌 던져버리고 싶어 졌다. 네 활개를 펼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다. 그동안 내가 역마살을 억지로 누르고 있었다. 수간디가 나의 역마살에 채찍을 가했다.   


  친구들이 하나씩 손주를 돌보기 시작했다. 십 수년 전부터 소식을 들었지만, 나는 기해년(2019)부터다. 모두가 딸과 손주에 대한 불평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친구들과 다른 불모(佛母)가 되고 싶었다. 부처님의 어머니가 아무나 되나. 붓다는 세상 모든 불자들에게 존경과 예배의 대상이다. 그 불모(佛母)*가 되고자 원했건만 시집갈 인연이 쉽게 닿지 않았다. 딸은 시집간 지 3년 만에 손자를 안겨주었다. 나는 불모를 자원하였다.


  수간디의 발언은 내게 미미하게 얼룩이 졌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번지듯 내 마음도 얼룩덜룩 해졌다. 수간디도 며느리에게 돈으로 때웠다고 했다. 다르게 표현하면 경제적으로 '여력이 있다'는 뜻이다. 수간디의 말은 현실이며, 나 또한 그렇게 하고 싶으나 하지 못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를 말했지만, 나는 시일이 지나면서 박힌 못이 쑤셨다. 강도가 거세지고 있다.  


  나는 불모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손자는 15개월을 향하며 하루가 달라서 이제 할머니의 힘이 부친다. 수간디의 말처럼 종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내 자식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손자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으며 그 가장 중요한 시기를 내가 담당하고 있다. 부정적인 언행으로 동량(棟梁)을 대하고 키울 수 없다.


  딸이 연년생 둘째를 가졌다. 축하할 일이지만, 벅찬 감동은 나를 벅차게 만들고 있다. 다행히 딸은 연말에 다시 육아휴직을 신청하겠다고 했다. 그랬거나 저랬거나 황금으로 상납하지 않는 이상 내 몫이 절반 이상이다. 각박한 세상 속 남의 손에 손자를 맡긴다는 것은 내가 선 듯 허락하지 못하겠다. 여력이 없는 나는 없이 코가 꿰였다. 그녀 말마따나 쫑질을 해야만 한다.



        


*천진불(天眞佛): 대승불교에서 사용하는 용어. 영유아들의 때 묻지 않은 것에서 비롯하여 천진불이라 부른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15671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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