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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Dec 05. 2020

은행나무 아래 노란 낙엽이…

  횡단보도 끝이 보였다. 신호등 아래칸 불빛이 깜박거렸다. 어설프게 허리를 곧추 세운 채 불편한 걸음새가 눈에 들어왔다. 가슴은 턱밑이 가깝도록 앞으로 내밀었고, 한 손은 힘차게 내저으며 무거워 보이는 두 다리로 서두르는 팔자걸음이 힘겨웠다. 뒷모습만 봐도 퇴행성 관절이나 류머티즘 질환이 있어 보였다. 갑자기 한 걸음의 보도를 남겨두고 허리를 펴고 섰다.


  출발하려던 차들이 정지했다. 나는 숨이 막혔다. 노인은 이내 보도에 올라서더니 몇 발작을 급하게 넘어질 듯 내달렸다. 지나가는 행인이 그녀를 비켜갔다. 그녀는 주차된 승용차 뒤에 왼 손을 대고, 오른손으로 골반을 받치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호흡을 뱉었다. 지켜보던 나도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신호가 바뀌면서 버스는 출발했다.


  아마 그녀는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여 오른팔은 뒷짐진 채, 왼 손은 앞을 헤치며 심하게 벌어진 팔자걸음으로 걸을 것이다. 걸으면서 두 눈은 앉을자리를 찾을 것이다. 노인의 뒷모습에서 내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니는 지하철에서 리면 승강기를 타고 대합실로 나온다. 그곳의 화장실에 들렸다가 손을 씻고 지상용 승강기를 이용하여아파트로 향한다.


  아파트까지 두 개의 공원이 있다. 잠시 화강암 자리도 많다. 앉은뱅이 돌에 뼈만 앙상한 엉덩이를 얹었다가 일어나서 아기가 걸음마하듯 걸었. 꼿꼿한 자존심으로 몇 미터 앞의 돌 의자를 목표로 전진했다. 레테 강을 건너전의 어머니는 그 길이 뼈를 깎아내는 고통이었다고. 나는 그래도 걸어야 한다며 무지하게 어머니를 격려했다.


   내가 한의원을 다녀오는 중이었다. 퇴행성 관절염이 온몸의 뼈 마디를 아프게 한 뒤, 서혜부의 고관절에 찝찝하게 오래도록 통증이 남아서다. 나이랍시고 들어보니 움직이지 않으면 모든 관절이 뻣뻣했다. 부드럽게 풀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알았다. 그렇게 육신은 퇴화를 재촉하였다. 감기는 저항력조차 낮아져서 수시로 파고든다.


  노인의 기준은 만 65세다. 지공생. 지금의 나는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인생이다. 병원비도 엄청나게 저렴했다. 어머니가 병원을 전전하는 것이 불만이었다. 번은 어머니에게 입을 뻥긋했다가 혼쭐이 났다. 그랬던 내가 한의원 출석부에 개근상 감이다. 그 바람에 삐거덕 거리는 곳이 진전하지 않고 있으며, 육체는 긍정적인 사고로 건강해졌다.


  어머니 생전, 답답함을 풀어드리려고 매일 전화를 하다시피 했다. 온갖 이야기가 다 나왔다. 어머니는 막내딸을 시집보내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컸다. 그것이 어머니 뜻대로 되는 문제여야 말이지. 쉽게 위로할 수 있는 것은 말 뿐이다. 하지만 어머니와 나의 처지가 다르고, 권하는 나나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주관도 다르니 살얼음을 탔다.    

        

  그저께 여동생이 나를 보러 왔다. 황혼에 손자를 본다고 콜라겐과 석류 분말을 선물로 들고서. 미혼인 동생은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살고 있다. 고인이 된 어머니가 혼인 못한 딸이 염려되어 구석구석에 화장품이다 먹을 것을 넣어 두었던 모양이다. 동생은 둘이서 살던 살림을 정리하면서 하나씩 찾아내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모가 별세한 지 2년이 지났는데도 좁은 집안 구석구석에서 나온다고.


  "마디마디 아픈 엄마가 나이 든 딸 밥을 해줬어…" "나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악착스레 우기고…" 동생은 조카 손자를 엎고 지나가는 말처럼 읊조렸다. 한 달 전에 만났을 때와 사뭇 달랐다. 여한에 젖은 목소리였다. 동생이 어머니를 향한 야호는 맞은편 산 허리에 부딪혀 돌아오면서  집어 뜯었다. 아리는 마주치는 곳을 심하게 할퀴어서 깊은 생채기만 남겼다. 메아리는 누가 외쳐도 사납게 되돌아와서 부딪혔다. 그리고는 골짜기로 떨어져 버렸다.


  "나도 무릎이 아프네…" 동생은 어머니가 무릎에 대던 압박붕대를 감고 있었다. 어느덧 60 밑자리에 머물고 있다. 아이를 낳았던 여인이었다면 벌써 여기저기 쑤셔댄다며 이불을 친구 삼았을 것이다. 미우니 고우니 하여도 아픈 엄마를 향한 자식들의 마음도 보았을 게다. 오로지 홀로 아픔을 삼켜야 하는 기나긴 겨울밤은 얼마나 모질꼬.


  어머니는 그랬다. 자도 자도 날이 새지 않더라고. 많이 잔 것 같은데 밖은 까맣더라나. 그래서 라디오만 볶아댔다니 사람의 길은 크게 어긋나지 않고 비슷했다. 동생 역시 불안해서 잠을 잘 못 자는 것 같았다. 잠이 자주 깨서 늦잠 자는 예 가 많다고. 보고 들으며 함께 한다는 것은 가는 길이 얼추 같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은 늦가을 날 벚나무 아래 붉은 단풍이 떨어지는 것이요, 은행나무 밑에는 노란 잎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원증회고(怨憎會苦). 이가 갈리도록 미워서, 원망스러워 만나고 싶지 않은 괴로움이다. 거센 회오리바람 속에 휩싸여서 헤어나지 못했다. 한 솥 밥을 먹으며 서로의 철벽만 높이 쌓았고, 항상 같이 면서 증오했고, 표독스럽게 굴었다.


  혼밥, 혼잠, 혼자 사는 삶에서 깨달아가고 있었다. 자식은 부모를 사랑했어야 한다고. 내리사랑은 있었도 치사랑은 없다. 어머니는 내리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어머니의 내리사랑은 자식을 힘들게 였다. 집착으로 꼬여진 치사랑은 더욱 있을 수 없었다.


  효자는 죽은 후에 생기는 것 같다. 사전(死前)

에도 있지만, 그 예는 드물지 싶다. 불효자를 만드는 것은 부모의 탓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속담은 진리이며 명언이다. 부모는 자식을 무조건 믿어주고 인내하면서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내가 배운 것은 자식 또한 나를 보며 행하면서 따라왔다. 올바른 부모 노릇하기도 쉽지 않았다. 자식들이 성장한 요즘은 나에게 무엇해주기를 바라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다.

 


사진: 정 혜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16393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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