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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Dec 10. 2020

사슴이 아이고 고라니라예

3-Day 9   사진 한 장을 가져옵니다. 그 사진의 프레임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야기를 써보세요.


  역시 산책 나오기를 잘했다. 공원을 가로질러 금호강 안심 습지대로 유모차를 밀었다. 안심 습지대 잠수교로 손자를 안내했다. 해가 들지 않는 곳에는 갓이 밤사이 내린 서리를 하얗게 온몸으로 맞고서 납작하니 엎드려 있다. 갓은 잠수교 양쪽 습지대에 가을 무렵 새롭게 싹이 나서 어린잎들이다. 여름의 잦은 비가 습지대의 억새와 갈대 군락지를 휩쓸고 지나가버렸다. 그 바람에 지금은 갈대와 억새는 자갈밭만 남겨둔 채 파란 이파리도 보이지 않는다. 유채꽃인 줄 알았던 갓 또한 역시 긴 장마 끝에 전멸하고 말았다.


  여름 장마 때다. 11층 아파트 거실 창으로 내려다보면, 불어난 금호강 물이 퍼붓듯 내린 장맛비로  황하(黃河)처럼 도도하게 흘렀다. 그리고 잠수교가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유모차에 손자를 태우고 강둑을 거닐었다. 누런 강물 위로 온갖 생활 폐품이 떠내려 오고 있었다. 손자에게 물려줄 저 습지대와 강물이 몸살을 앓으며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 보였다. 강가에는 온통 생활쓰레기와 폐품들이 떼 지어서 우르르 몰려다니고 떠 있다.   


  손자도 바깥으로 나오면 좋아한다. 그러나 여기 나오기까지 손자와의 실랑이는 은근히 화가 난다. 15개월 된 손자가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여서 무엇이든 알려주고 싶다. 그런데 손자는  옷을 입기 싫어하여 외출하려고 씨름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이런 녀석의 옷을 겨우 입혀서 현관 밖에 세워 둔 유모차를 태운다. 이때 손자는 안전띠를 매라고 나에게 신호를 마구 하며 엉덩이를 들썩댄다.


  이른 오전 금호강에는 청둥오리 떼가 분주히 움직였다. 일제히 날아올라 브이 자 형태로 군무를 이루는 것도 장관이다. 오전 강물 위에는 물비늘이 없다. 잔잔히 흐르면서 속내를 보여준다. 조용히 흐르는 강물을 보노라면 내 팔뚝만 한 물고기가 노닐고 있다. 손자에게 손짓을 하면 눈길이 따라온다. 치어들은 무리 지어 다니고, 잠수교 아래에는 떠내려온 나무 등걸이 잠수교 다리에 걸려서 나뭇잎들의 갈 길을 방해하며 모여 있다.


  뭔가가 내 쪽으로 헤엄쳐 왔다. "어! 수달이네… " 얼른 손자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손자도 유심히 바라봤다. 수달은 손전화기를 꺼내는 동안 잠수해버렸다. 그리고 이내 모습을 드러내더니 마치 손자에게 인사를 하듯 얼굴을 내밀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 시간은 참으로 짧았다. 일방통행인 잠수교 좌우에서 차들이 접근하고 있었다. 한쪽으로 비켜서서 안전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보호장치가 없어 넓은 곳으로 장소를 옮기며 길을 비켜야만 했다.


  "여 수질은 어떠심니꺼?" 강물을 떠 올려서 수질 검사하던 젊은 친구에게 물었다. "벨로 안 좋심더." 내가 계속 "안 좋다카마 등급이 몇 등급인데 그카능교?" 대화를 주고받던 중 수달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손자에게 말을 하며 손전화기를 꺼냈지만 또 차들이 가까이 왔다. 나와 수질검사원은 손전화기를 든 채 아쉬운 입맛만 다셨다. "하~ 그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디기 아깝네~" 수달은 흙탕물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나는 수질검사원에게 말했다. "건의 하나 하겠는데, 수질 안 좋다카지 말고 저기 보이는 부유물과 생활폐품과 쓰레기들부터 쫌 걷어내 주이소." 자원봉사자들과 강제적인 봉사대를 만들어서라도 습지대를 보호해야 수질이 높아진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내한테 캐봐야 소용없심더. 대구시청 민원실로 전화 하이소오. 그캐야 가들이 신경을 씁니더." 


  넓은 습지대 한 곳에서 사슴이 보였다. "사슴이 아이고 고라니라예." 이곳 습지대에는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복권을 사야겠다고. 나는 손자를 데리고 강둑으로 나오면서 서리가 녹지 않은 곳을 다시 눈여겨봤다. 며칠 전까지도 봄이 머물고 있었다.  유독 물가에 사는 나무 잎들이 푸르렀다. 강둑에 선 메타세쿼이아나 다른 나무들은 이미 단풍이 들어서 갈무리하는 시기였다.


  강에 사는 나무들은 물이 있어 연둣빛으로 머물렀다. 그러나 그 봄빛도 가는 시간을 붙잡지 못하는 듯 잎들이 떨어지고 추해졌다. 12월 초순인 지금은 겨울나무 같은 맛이 조금 났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는 갈색 잎을 서서히 떨구고 있어 강가의 나무들과 대조를 이루었다. 아직 녹황 빛이 남아 있는 금호강가로 오늘도 손자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야겠다. 수달을 보면 꼭 사진을 찍으리라.


     


사진: 정 혜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168774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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