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황당한 당부였다. 딸이 나의 검진 결과를 듣자 "엄마, 의사 시키는 대로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심하면 실명까지 된다 네요" '하이고~ 이거 무슨 날벼락이고' 생각지도 않은 소리에 글과 독서가 걱정되었다. 108일 동안 글 쓰기로 주어진 과제를 풀어야만 한다. 아무리 궁리를 해도 받아놓은 밥상은 물리칠 수 없었다. 밥은 먹는데 마치 모래알 씹는 것 같았다. 더하여 목구멍을 넘기지 못하겠다. '도대체 이 일을 우예 해결해야 되노…'
고개를 뒤로 젖혔다. 목 운동을 하면서 '글, 책, 댓글과 답글…' 좌변기에 앉을 적마다 사유했다. 손자와 함께 할 때는 히히덕거리지만, 작은 볼 일이나 큰 것을 대할 때만큼은 나 혼자다. '어차피 늙어가는 마당이니 글도 쓰고, 독서도 하면서 댓글과 답글을 쓰자'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실명된다 카는데… 그라마 책이고 글이고 안 보고 안 쓰마 되지 뭐'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그카마 문맹이나 다름 엄능거 아이가…' 손자가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에 에!" 라면서 나를 크게 불러댄다.
'이대로 누워 자는 수밖에…' 평소에 잠을 빨리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드러누워도 잡념만 무성하게 일어날 뿐이다. 머리맡에 놓인 책을 읽으면 잠이 밀려들 것 같아 반듯하게 누웠던 몸을 모로 해서 엎드렸다. 지금 당장 보이니까 책을 끌어당겼다. 그런데 또 빠져나가서 책조차 볼 형편이 되지 않았다. '맞다
, 5초 본드로 붙이자!' 그 밤에 있을 만한 곳을 뒤지니 본드가 007 제임스 본드가 되었는지 흔적도 없다.
겨우 땜질하여 콧등에 얹었다. 세상천지가 이렇게 밝고 환한 것을 밤새 전전긍긍했다. 임시방편이라는 사자성어가 정말 멋진 표현이다. 황제를 받들어 모시 듯 한 편의 수필과 하루 일정 분량의 독서와 댓글 및 답글을 쓸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눈을 위하여 월요일 오전에는 안경점으로 갔다. 안경테를 돋보기 티가 나지 않는 것으로 골랐다. 땜질한 것은 아쉬운 대로 본드가 탄탄하게 유지하여 화장실에 고정적으로 모시기로 했다.
손자가 이젠 나를 따라서 화장실까지 침입한다. 안고 볼 일 보다가 본드 부상병이 완전히 불구가 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돋보기 하나를 들고서 이리저리 모시고 다니기 불편하여 불구자를 데리고 안경 병원으로 갔다. 오랜 안경 테여서 복구가 어렵다는 것을 어린아이 용으로 그것도 빨간 테로 변신시켰다. 손자 덕분이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11층 거실에서 바라 본 잿빛 세상이다. 돋보기 없는 순간인 듯.
아래 사진: 헌 돋보기도 새 돋보기가 되어서 두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