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Day 34 해외로 여행한다면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요?
해외여행은 많이 다니지 않았다. 오래전에 다도를 배우면서 중국의 어느 차 생산지 답사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사람 사는 곳은 거의 비슷하다'를 느꼈다. 그 이후 어딜 떠나고 싶으면 해외까지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2019년 9월 한 도반이 인도 성지 순례를 하면서 계속 카톡으로 사진과 소감을 올려주었다. 그 당시는 솔직히 '한국 테라와다 불교' 공부를 시작하면서 막연히 가고 싶던 인도에 대한 동경심도 사라졌던 때다. 카톡을 보면서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하려면 떠나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다들 금년 9월에 비행기를 탈 목표로 작은 비용을 도반들끼리 모으고 있으며, 딸은 여행경비를 미리 삼백 만원 주었다.
사실 터어키는 가보고 싶었다. 그 나라는 땅을 파기만 해도 문화유적이 나온다고 했다. 고대 불교 유물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는 어느 노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문명의 발상지이면서 기독교 유적, 세계문화가 교차되는 곳이어서 구미가 당겼다. 기억도 나지 않는 대승불교 초발심자 시절에는 노교수의 강의가 감명 깊어서 '때가 되면 꼭 가보리라'는 꿈도 꾸었다. 그러나 살기 바빴던 내겐 언제가 될지 기약도 없었다. 지금은 해외여행을 '간다면 좋고, 못 가보고, 안 가봐도 그만'이라는 심산이다.
손자가 있는 아파트 단지는 다양한 식물들이 많다. 딸은 올봄 3월에 이곳으로 이사 왔다. 내가 매화(梅花)를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는 동네다. 이사하기 전에는 예전에 매화가 피었던 장소를 방문하여 흠향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아파트 단지에는 매화의 종류가 많다. 해마다 여행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오늘은 12월 3일, 어제 매화가 피려고 봉오리 끝이 터지려는 듯 벌어진 하였다. 이렇듯 대구 시내와 동네 주변과 근교에도 다 가보지 못했다.
전라도 나주에 살고 있는 지인이 가끔 그곳으로 오라고 전화를 한다. 올해도 여러 차례 왔지만 기세 등등한 '마마님'을 핑계로 자꾸 연기하게 되었다. 그 집에는 황토로 만든 정자가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 누님인 나와 불교를 토론하고 곡차도 한 잔 하잔다. 음력 보름이 지났지만 달을 보며 법우와 함께 담소를 나누고 싶건만 오고 가지를 못하고 있다. 지인은 두어 달 후 또 매화 소식을 보낼 것이다.
'은목서'라는 꽃나무를 알게 되었다. 10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이 꽃을 봤다. 우연히 유아차를 밀면서 산책을 나가다 향이 느껴져서 발견하였다. 이름이 궁금하여 검색을 해봤지만 신통하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내를 다니다 보니 팻말을 발견하였고, 이름도 알고 검색하니 상당히 유명한 나무였다. 향기가 중후하면서 진한데 결코 무겁지 않았으며, 나무 곁을 떠나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짙은 녹색 잎 사이에 하얀 꽃이 자잘하게 무리 지어 셀 수 없이 많이 피었다. 작은 꽃들이 아주 많이 피어서 향내가 진동하는 나무 근방이 그리웠다. 매일 가서 흠씬 적도록 향을 누리며 사진을 찍는 행운을 가졌다. 그 누구도 관심 없었기에 그저 좋았다.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변명일지도 모른다. 아마 해외에서 모르는 화초와 나무를 만난다면 두말할 것 없이 푹 빠져서 한국을 잊을 수도 있다. 그 나라를 알기 위해 국립박물관을 방문할 것이다. 적어도 한 달은 체류하면서 여유 있게 여행을 하고 싶다. 있는 그 자리가 고향이고 집이 되는 무덤덤한 성향으로 바뀌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집이 될 수 없겠지만 그렇게 했으면 한다.
역마살이라면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올여름 휴가를 다녀와서 확연히 느낀 점이 있다. 집을 나갔다 들어오면 새롭게 일상이 시작되는 이 자체가 거북한 기분으로 등장했다. 어느 순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확실히 나타났다. 바깥으로 향하던 내 마음이 다소곳이 주저앉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나이가 되도록 외적인 대상에 이끌려서 나다니지 않는 것이 결코 부끄럽지 않다.
사진: 정혜.
대문 사진: 은목서 꽃.
아래 사진: 매실나무의 꽃망울들. 매화가 필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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