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감은 채, 두 손은 무릎 위에

by 정 혜

3-Day 35 당신은 인류 최후의 생존자입니다. 당신의 하루를 묘사해 보세요.


절망적인 현실을 마주하면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무얼 먹으려고 아등바등거릴까. 그 누구라도 살아 있을 것이라며 찾아 헤맬까. 아니면 스피노자처럼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려고 할까. 그도 아닐 것이면 나무 그늘 아래나 있는 그 자리에서 생을 정리하며 조용히 명상을 하고 있을까.


언젠가 '지구 최후의 날'을 그린 외국 영화를 본 적 있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살 곳을 찾아 방황했다. 영화는 최후의 순간을 특급 쓰나미가 온 세계를 물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그 순간 티벳의 수행자는 높은 산 바위 위에 앉아 명상을 하며 최후를 기다리던 중, 거대한 물이 밀려와서 화면 전체를 휘감았다. 모처 은밀한 곳에 노아의 방주 같은 배 세 척이 둥실 떠오르면서 파도에 떠다녔다. 최후의 생존자들은 세계 강대국의 수상과 대통령 그리고 일급 과학자들, 우수 두뇌의 소유자 등이 나누어 타고 있었다. 영화 내용에는 최후의 생존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주어진 명제가 '최후의 생존자 1인'이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담임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했다. "만약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우리들은 웅성거리며 각자 하고 싶은 것들을 마구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 당시 피아노가 무척 배우고 싶었다. 선생님께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말했다. 지구의 종말인데 피아노 배울 시간이 어딨나. 그렇게 철이 없었고, 아는 바가 적었다.


그 후 질문은 화두가 되었다. 선생님은 기도를 하면서 삶을 마감하겠다고 하였다. 그 말씀이 옳다는 결론을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에야 내렸다. 이리저리 궁리를 하고, 책을 읽으며 생각에 생각을 끝없이 해봐도 뾰족한 답은 찾을 수 없었다. 선생님의 말씀이 가장 타당성 있다고 사려되었다. 죽는 순간까지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사유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최후의 생존자라는 용어에 묶일 필요가 없다. 세계는 상상 이상으로 넓디넓다. 분명 어딘가 또 다른 생존자가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있을 때 누군가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가정이 성립된다. 최후의 일 인일지언정 한 그루의 과실나무를 심어야 한다. 살아 있으므로 먹고 살 거리를 마련하면서 주변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된다. 또 어느 날 살아서 우연히 나를 찾아 올 미지의 인물을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할 것 같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믿기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일 것이다. 어차피 생존해 있다면 단순하게 현재를 살아가야만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까. 기본적인 활동을 위해서 삼시 세끼는 해결해야 할 것 아닌가. 세끼 먹을 양식이 없다면 두 끼 아니면 하루 한 끼라도 먹으며 살아 있는 날까지 연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하는 원초적인 동물이 되어야 하나. 그렇다면 굳이 먹으려고 할 이유가 없어진다. 조용히 명상을 하면서 이 세상과 이별할 각오를 다질 것이다. 그 누군가가 나를 발견한다면 살아남아야 할 운명이다. 그러나 그럴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무리 말에 묶이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만, 나 혼자 살아남은 것은 현실이다. 현실은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지금이다.


하루를 더 살아가려고 애 태우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 것이 상식이다. 혼자 남은 세상도 죽어야만 한다. 가부좌한 채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림 하며 담담히 호흡이 정지되는 것을 관조하리라. 나는 한 세상 잘 살았으며 내생이 주어진다면, 그 생 또한 바른 삶이 되도록 영위할 것이다. 그렇게 현재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며,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의 생존자도 최후를 기다린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꽃받침이 연한 풀빛인 매화 봉오리.


아래 사진: 목련 꽃 봉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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