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이토록 당당하게 만들었나

by 정 혜

3-Day 36 당신이 알고 있는 당신 모습과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당신 모습.


사춘기 전부터 몸매에 관심이 많았다. 유달리 조숙했던 나는 어릴 적부터 남의 시선을 의식했다. 몸매에 자신이 없어서 타인에게 웬만하면 뒷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중학교 일 학년 때 친구 두 명과 등교하는 길에 이웃집 총각이 우리 뒤를 걸어왔다. 의도적으로 종아리가 덜 보이게 책가방으로 감추며 걸었더니 툭 툭 소리가 다 났다. 자격지심의 지수가 높은 날들이 오래 지속되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당당하게 만들었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어느 때 자문을 해봤다. 답은 극명히 드러났다. 그를 알고부터다. 그와 비슷한 ㄷ은 오래도록 내 생명까지 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했다. ㄷ의 알 듯

모를 듯한 그 무엇이 느껴지면서 보였다. ㄷ은 나를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이끌었 뿐 아니라 만족한 삶을 알게 했다. 그러나 ㄷ의 장점은 내게 단점으로 확대되어 다가왔다.


그는 완벽한 장점만을 지녔다. 나는 그와 함께 하면 편안했다. 그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그를 향한 내 마음은 나날이 나의 얼굴을 밝고 환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의 품 안에서 희열을 느끼며 성숙해졌다. 여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우뚝 서도록 손잡아 주었다. 내가 인간미를 지닌 사람으로 빛이 났다. 나의 귀를 더 크게 열도록 했다.


"머리 빠마도 좀 하고, 짧게 커트 하마 더 절머 빌낀데" 지인이 며칠 전 내게 한 말이다. "지금 이대로의 내 모습이 좋아" 지인에게 더 좋은 옷을 입으려고 하지 않는다, 남의 이목은 이미 저 멀리 날려버린 지 오래되어 기억도 없다, 지금 이순간 알아차림 하면서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것으로 족하다고 대꾸하였다.


남의 시선은 타자(他者)의 판단이다. 다른 사람은 자신의 일에 매몰되어 나를 볼 여유가 없다. 그런 사람을 의식하고 오래도록 허우적거린 만큼 헤치고 나오기도 힘들었다. 나를 봐주지 않는 사람은 나 또한 그를 볼 필요 없이 오로지 나의 길만 열심히 가면 된다. 이 쉬운 논리의 결론을 도출하기까지의 시간은 참으로 길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나를 알고 있는 모습은 그들의 몫이다.


2020년 3월부터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다. 아직 덜 떨어진 구석이 많은 내가 남의 브런치를 넘나들며 나를 찾아냈다. 그들은 구독자 수가 날마다 변하고 있다. 완전히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다. 한 순간 '왜 이러지'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타인이 나를 보는 것은 그들 몫이라고 했으면서 생뚱맞게 '왜 이러지'는 나답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소의 뿔처럼 가라' 든가? 책 제목은 정확하지 않다. 나야말로 무소(無所)의 뿔, 없어도 될 뿔은 내가 인연을 만들어서 더디게 가지 않으련다. 내가 걷는 이 길이 좋은 사람은 함께 할 것이고, 아니다 싶은 사람은 취향에 맞는 길을 선택하면 될 뿐이다. 당신의 선택을 나는 존중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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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 혜 ,


대문 사진: 11층 거실에서 바라 본 노을과 구름.


아래 사진: 동백꽃이 한창 피고 있다. 잎사귀에 가려져 부끄러운 붉게 내비치는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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