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 정리

코로나 19, 니 먼데 16

by 정 혜

딸이 나더러 손자를 데리고 자 달라는 부탁을 했다. 부부가 이삿짐을 정리한다며. 손자는 새 아파트로 이사한 이후 거의 밤마다 두 번씩 떼를 쓰며 울어댔다. 울음소리를 들을 적마다 '저 아이가 왜 울까' 우는 이유가 궁금했다.


손자는 이틀을 내 옆에서 재웠다. 이 녀석이 조금만 바스락거려도 눈을 뜨고 지켜봤다. 손자는 모로 돌아누우면서 검지와 중지를 모아서 입에 넣어 빨고, 한 손은 들어서 허우적거렸다. 얼른 아기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할머니 여기 있어. 이쁜 강아지가 잠도 잘 자네~"라며 궁둥이도 툭, 툭 두드렸다. 손자는 이내 새근거리며 잠을 잤다. 대략 밤 12시 전후로 모유 먹던 습관이 있어 젖을 찾았다. 자는 머리맡에 분유를 태워서 미리 갖다 놓았다. "앵"하고 울음소리를 내서 바로 입에 물렸더니 잠결에도 다 먹고 곤히 잠들었다. 그렇게 손자는 잘 잤고, 나는 뜬 눈으로 새우다시피 했다.


딸은 아기를 엎드리게 한 후 잠시 놀아주었다. 조금 지나면 손전화기를 만졌다. 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나를 보면 두 손과 다리를 들고 얼른 일으켜 달라고 구조요청을 보냈다. 나는 손자를 일으켜서 번쩍 위로 치켜들어 올리면, 이 녀석은 신이 나서 깔깔거렸다. 내가 손자와 웃고 떠들며 뒹굴어대면, 어멈이 "할머니 하고는 재밌게 웃으면서 왜 엄마한테는 안 웃어주는 거야"라며 아기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손자와 함께 하는 동안은 아무 생각이 없다. 오로지 손자에게 최선을 다한다. 안고 다니면서도 손자가 원하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을 받으면 즉시 수정하려고 한다. 손전화기는 아예 내가 자는 방에 두고 아기를 본다. 잠을 재우려 할 때 음악이 필요해서 그리고 6,000보를 확인하기 위해서 들여다본다. 물론 카톡이나 카스토리, 밴드, 페이스 북도 하지만 아기가 잘 때 옆에 엎드려서 댓글을 쓰거나 내 글을 쓴다.


나도 딸을 키울 땐 놀아 주는 방법을 몰랐다. 또한 손전화기는 거의 없었고, 컴퓨터도 보급이 덜 된 상태였다. 그러니 아이들과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 최상으로 알았다. 아는 것 없었어도 나름대로 열심히 키웠다. 그나마 어릴 적 동생들을 돌보면서 컸기 때문에 딸처럼 막막하지는 않았다. 내 자식들 세대는 1남 1녀, 1남 2녀 아니면 2남 1녀가 대부분이다. 오로지 저희들만 바라보고 키웠다. 동생이나 위의 형제들을 위할 줄도 모르고 이기적으로 굴었다. 많은 자녀들이 경쟁하며 자라던 그 시절에는 형편이 어려워도 서로를 아꼈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논다거나 업고 있으면, 딸은 어김없이 인터넷을 이용하여 물건을 구매했다. 구매한 물건은 하루면 도착했다. 속전속결이었다. 더구나 코로나 바람에 쇼핑은 핑곗거리로도 딱이다. 사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전화기나 컴퓨터가 더 친했다. 웬만한 것은 손전화기로 소통하였다. 이런 상황이니 이삿짐 정리는 뒷전이 되기 일쑤였다.


아기와 함께 하는 시간은 한정적이었다. 그리고 부부는 아기 위주가 아니라 어른 뜻대로 다루었다. 그러면서 손자더러 "너하고 싶은 대로 하여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라"라고 말한다. 죽인지 밥이 되는지 모를 땐 나도 그랬다. 이순을 넘기고 나니 북망산이 가까워서 그런지 다 보인다. 사십이 더 가까운 부부에게 타이르거나 잔소리는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저희들의 인생이므로. 그러나 인터넷 정보가 부모의 다양한 경험과 지혜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래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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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 혜



대문 사진은 하얀 목련 꽃, 하늘을 배경으로 올려다보는 멋도 괜찮았다.


아래 목련 꽃은 하얀 목련 꽃과 종자가 달랐다.

꽃의 색이 크림 색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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