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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Dec 15. 2020

액땜 폭탄 세례를 받았다

3-Day 12  직장 상사가 당신에게 방금 폭언을 행사했습니다. 당신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요? 묘사해 주세요.


  나는 오롯이 집만을 지킨 주부다. 그러나 몇 년 전 폭언 폭탄을 맞은 적은 있다. 한 마디로 황당무계한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외출하려고 화장을 하고 있었다. 담장 너머로 굵직한 목소리가 소란스럽게 들렸다. 나갈 준비를 하면서 잠깐 귀 기울이니 주차한 차의 주인을 욕하는 것 같았다. 혹시나 하여 나가 보니 남편이 타고 다니는 '체어맨'을 손가락질하며 "무식한 놈!"이라는 것이다.


  남편은 그때 자동차 열쇠를 가지고 여행을 떠나 집에 없었다. 욕을 해대는 굵직한 목소리는 앞 집에 세 들은 남자였다. 창고는 주차하기 좋은 곳이었으나, 매일 그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남편이 여행 떠날 시점에는 내 집 담장 밑에 주차를 할 수 없어 앞집 창고 앞에 댔던 것이다. 그는 주차를 할 것이면 손전화기 번호라도 남겨 두어야지 싸가지 없게 군다면서 "상식 없는 놈!"을 연발하였다.


  내가 두 손을 모아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화가 잔뜩 난 얼굴이 나를 힐끔 쳐다봤다. 남편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폐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그런데 그는 나의 태도에 더 화를 내면서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나는 큰소리를 질러대는 그에게 "정말 미안합니다~"를 남발할 정도로 진심으로 미안했다. 그럴수록 그의 눈에는 독기가 서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한 마디도 그에게 반박하지 않았으며 이해할 수 있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과의 말을 하면서 빨리 내가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수라고 판단했다. 집으로 들어올 땐 비가 내렸다. 그는 우중에서도 내가 들으라고 온갖 저질스러운 상말을 생각나는 대로 쏟아냈다. "양아치 같은 놈!"이라면서 차 바퀴를 발로 차는 소리도 들렸다. 문득 그는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나은 처지의 사람들을 맹비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 인도의 한 브라만교도가 붓다에게 식사하러 오라고 초청을 했다. 잘 차려진 식탁을 앞에 두고 부처님과 브라만교도가 마주 앉았다. 주인인 브라만교도가 부처님을 향해 이런저런 쓴소리를 하면서 마구마구 붓다의 흉과 욕까지 해댔다. 브라만교도가 말을 마치자 묵묵히 듣고 있던 붓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여기 잘 차려진 음식을 한 점도 먹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돌아간다면 당신은 이 음식을 어떻게 처리할 거냐고 물었다. 그는 다 버릴 것이라고 대답했다. 붓다가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말은 곧 너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버려질 음식들은 악담한 너의 몫이다. 나는 듣지 않았으므로 악업 쌓을 것이 없지만, 너는 그 악담을 고스란히 책임져야 할 악업을 쌓았다는 말을 하고 굶은 채 처소로 돌아갔다.


  나는 이 글을 읽은 후라 오히려 그가 불쌍했다.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악담을 온몸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표정은 평소 그가 하고 있는 생각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고, 말 또한 그렇다. 그는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니 내가 정중히 사과를 해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았거나, 남이 잘 사는 것을 보면 부정의 표현으로 위안을 삼는 사람이거나. 남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축에 들어 간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는 비를 맞으면서 창고로 물건을 내렸다. 그래서 더 약이 올랐을 수도 있겠다. 


  폭언 폭탄 세례를 맞은 후 답을 어떻게 할 것인지 궁리했다. 별 뾰족한 생각이 나질 않았다. 며칠 뒤 앞집 남자가 보였다. 앞에 주차한 물건을 내렸다. 나는 기회를 놓칠 없었다.  "안녕 하십니꺼?" 그의 등에다 인사를 던졌다. 나의 목소리에 그는 힐끗 보는 듯하더니 고개를 획 돌렸다. "그날 남편의 열쇠가 없어가 마이 불편했지예? 사장님 힘들게 해가 미안 했어예~" 일부러 사투리를 진하게 썼다. 


  "참말로 미안 했심데이~" 입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환하게 웃으면서. 그는 차 위에서 쭈그리고 앉아 연신 땀을 닦으며 손만 움직였다. "그날 비까지 왔는데 비 맞으민서 물건 옮기니라꼬 고생 했지예?" "더운 날 일 하니라꼬 땀도 마이 흘리네예~" 좋은 말로, 겸손한 표현으로 점잖게 폭언 폭탄 세례에 대한 답례를 해주었다. "더븐데 일 하시이세이~ 지는 댕겨오겠심더" 그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그는 찍 소리도 없었다.  나는 돌아서서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아야만 했다.



사진: 정 혜

12월 14일 찍은 매화.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17413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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