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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Dec 16. 2020

산책 나가자, 손자야~

 3- Day 13   당신에게 자유란 어떤 의미인가요?


    어제 오후에 손자와 산책을 했다. 유모차 비닐 비람 막이가 공원을 걷는 동안 손자의 콧김으로 뿌연 했다. 손자를 중무장하여 유모차에 태웠지만, 차가운 바람이 가만히 앉은 아기에게 파고들 것 같은 노파심이 일었다. 서둘러 집으로 향하면서도 석양의 억새 밭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나는 손자에게 "할머니 사진 찍도록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하면서 일방적으로 유모차를 세웠다. 손자는 한두 번 하는 할머니의 행위가 아님을 알기나 하는 듯 잠시 나를 보고 있었다.


  억새는 이미 홀씨들이 바람결에 떠나고 엽맥만 남아 허허로이 흔들렸다. 서쪽으로 향하는 짧은 태양의 꼬리가 넘어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했다. 나는 저 엽맥만 남아 나부끼는 억새다. 어머니가 마치 날릴 것처럼 야위어서 목이 기다란 채 찍은 사진이 연상되었다. 날아간 홀씨들은 어머니를 닮은 모습으로 줄기 속을 비운 채 살다가 훌훌 날려 보낼 것이다. 나도 그러할 것이고.


  손이 시렸다. 손자는 가자고 소리를 질렀다. 내일 다시 와서 다른 모습의 억새를 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그래, 손자야 가자." 아쉬움을 남겨 두고 유모차의 방향을 돌렸다. 아파트로 가는 길에는 조숙한 매실 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한 곳을 들려야만 한다. 12월 10일쯤부터 개화가 되었다. 나는 매화라면 꽃도 꽃이지만 그 향기에 매료되어서 매년 봄이면 나만의 장소를 찾았다. 올해는 1월에 보고 섣달인 지금 또 매화를 감상한다. 그리고 내년 정월부터 두어 달 사진 촬영과 흠향의 홍복을 누릴 것이다.


  손자가 없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억새가 된다. 이리 뒹굴 저리 흔들, 삼시 세 끼를 컴퓨터와 먹는다. 하루 종일 걸어도 100보가 되지 않는 이틀이다. 구상해 둔 수필을 쓰고, 밀린 답글과 댓글을 써야만 하고, 나의 블로그에 올릴 글도 타자(打字) 해야 한다. 궁둥이가 짓무를 정도로 앉았어도 아픈 줄 모른다. 오히려 끼니를 챙기거나 출출해서 주방으로 왔다 갔다 하는 번거로움이 귀찮을 정도다.


  금요일 밤부터 나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둘째를 가진 딸이 한 달에 한 번 정기검진 가는 토요일은 예외다. 공연히 그날은 입이 조금 나왔다가 이내 들어간다. 토요일 오후에는 한자 공부하러 간다. 나는 갈 적마다 헛살았다는 것을 느낀다. 한자는 인문학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파고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공부 방법이기도 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소리를 여러 번 거듭 하지만, 어릴 적엔 이런 맛을 몰랐지 않은가.


  일요일은 온전히 방콕에서 머문다. 혼잠, 혼밥, 오롯이 혼자 노는 날이다. 외로움? 고독하다? 우울하다? 생각할 틈이 없다. 글을 쓰는 동안 사유하면서 성찰하고, 답글과 댓글을 쓰면서 공감과 만족함을 느낀다.

찰나 찰나 우울한 번뇌가 들기도 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들은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것들이 고맙기만 하다.  


  나는 종종 자유에 대해 사유한다. 지금 이순간 내가 행복한 이유를 스스로 묻기도 해 본다. '나 답게'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 답게'는 오계와 팔정도를 실천하는 삶을 말한다. 이 두 가지 중 오계는 팔정도에 포함되므로 굳이 나눌 필요 없지만, 오계는 불자라면 필수적으로 실천해야 할 덕목이라 그렇다. 오계를 제대로 실천해 본 결과 자존감이 높아졌다. 자유는 곧 자존감이다.


  손자가 자랄수록 나의 자유로움이 대폭 축소되어 가고 있다. 요즘은 내가 지친다는 말을 자주 하며 툴 툴 거리기도 한다. 나만의 시간이 대폭 축소되었으므로. 그러나 이내 마음을 전환한다. 그리고 손자에게 충실하려 애쓴다. 나의 역할이 중요해서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몇 장도 못 읽는 독서를 하고 잠을 줄여서 글을 쓰고 필사와 캘리 연습을 한다. 이 순간들은 나의 자중자애하는 시간이며, 자식에게 모범이 되기 위함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나이가 들 만큼 들었기 때문이지 싶다.


       

사진: 정 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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