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 혜 Dec 23. 2020

다음 주 일요일에는 갈 수 있겠지…

3- Day 18  당신의 인생에서 포기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일 한 가지가 있나요? 있다면 왜 포기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정당하게 설명해 보세요.


  드디어 이곳에도 코비드 19가 당당하게 입성했다고. 이번 월요일, 딸은 나에게 알려주면서 꼭 손자에게 마스크를 착용시키도록 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 많은 곳에는 최대한 가지 말 것이며. 승강기를 타면 무조건 유모차 차단막을 내리라고 한다. 나도 마스크를 코스크로 하지 말고 정확히 코를 덮으라고 아흔 번만 더 들으면 백 번도 넘으리라. 남편도 인근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며 나더러  손자 데리고 나다니지 말란다. 


  나는 이때까지 상당히 무방비한 상태로 살고 있다. 그런데 손자와 있는 지금은 생각이 약간 달라졌다. 나로 인하여 손자에게 누가 될까 봐 조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산책하는 길에 찬 바람도 피할 겸 유모차 차단막을 자주 내렸다. 손자는 이유도 모르는 채 갑갑하다며 걷으라고 소리를 내 지른다. 겨우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벙어리장갑 손으로 억지로 벗겨냈다. 손자의 마스크가 축축했다.


  코비드 이 물건이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현재 나도 흔들리는 중이다. 올 1월부터 '다음 주는 군법당에 갈 수 있겠지…' 하며 보낸 세월이 한 해를 마감해야만 한다. 지난해 9월, 딸이 외손자를 낳으면서 12월까지 법회를 봉행할 수 없다고 사단 법사와 그리고 대대장에게도 알렸다. 내년 1월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면서. 그러나 12월 하순인 지금은 더 사납게 날뛰는 꼴이다.


 다음 주 일요일을 기다리며 한 해가 저문다. 손자와 보낼 때는 아무 생각이 없다. 그러나 토요일 밤이면 '법당에 가야 하는데, 내일은 어떤 옷을 입을까.' 이 궁리를 할 정도로 한동안 심란하였다. 그러면서 날이 더워지면 가라앉는다고 하니 그때는 열 일을 제쳐두고 갈 것이라면서 별렀다. 그렇게 헛다리 짚고, 저렇게 차일피일 일 년이 거짓말처럼 다 가버렸다. 나의 방에는 법당 벽에 걸 달력이 뜯지도 않은 채 모셔져 있다.


  음식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초코파이 두 개도 감지덕지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취사장의 잔밥 통에는 먹지 않고 버린 음식들이 넘치고 넘친다. 들고양이가 살이 쪄서 뒤룩뒤룩하다. 또 분위기 좋은 매점에는 먹을 것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다. 전자레인지가 몇 대씩 의무적으로 설치되어 아무 때나 와서 냉동음식을 데워서 먹을 수 있도록 변모에 변화를 거듭하며 변신 중이기도 하다.


  일개 대대 병력이지만 먹는 것만큼은 흔전만전이다. 그러나 정신은 날이 갈수록 허황해져 가고 있다. 특별한 구역, 대한민국 군대의 장교와 병사들의 머릿속은 점 점 비어져 간다. 내가 가야만 하는 이유다. 나, 젊지도 예쁘지도 않고 주름살이 많은 할매라도 가서 매주 일요법회를 봉행해야만 한다. 백 마디 중 한 마디라도 귀에 들어가서 눈곱만큼일 망정 그들의 빈 곳을 채워주어야만 한다.  


  내가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요즘 병사들은 종교에 관심이 거의 없다. 배 부르고 등이 따뜻하면 자연히 그렇게 된다. 그러니 법당으로 오는 병사가 없다. 근무하지 않는 일요일, 부대 내 게임방은 갈지언정 법당에는 오지 않았다. 내가 고지식하게 진행하는 원인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법당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떤 부대의 성당 출입문에는 아예 커다란 자물쇠로 채워져 있다. 교회도 병사들이 다섯 손가락으로 셀 정도라고 목사가 내게 말했다. 한 마디로 재미없어서 오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가고 싶다. 가서 법음을 전하며 '법음을 듣고 배워서 정신이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맛있는 것은 아무 때나 사 먹을 수 있고, 독서를 하지만 그래도 헛헛한 것이 느껴진다.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 그래서 그들은 게임을 하려고 일요일을 기다리고, 있는 그곳에서 탈출하고 싶은 충동을, 무리 속에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며 두렵고 고독한 생활을 하는 병사들도 있다. 


  코비드가 위병소 정문을 넘나들지 못하게 오늘도 철저히 막고 있을 것이다. 법회 봉행하러 가겠다며 신청하는 병사는 없고, 코비드는 눈치코치 없이 '변종'이라는 새끼까지 낳았으니… 부대장은 더욱더 부대 담장을 높이리라. 언제일지 모르는 그 일요일을 위해 나는 이번 일요일도 포기해야만 한다. 문경군법당으로 가는 것을. 코비드가 득세하는 동안 나는 나이를 한 살씩 높여간다. 과연 나는 갈 수 있을까.




사진: 정 혜


위의 사진: 문경군법당 앞에 서 있는 소나무의 서리꽃,

아래는 코 끝이 시렸던 12월 어느 일요일의 소나무.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182550238 

작가의 이전글 우린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