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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Dec 24. 2020

초 엿새 달은 떠 오르고, 붉으스름 노을이

3- Day 19  당신은 직장 대표에게 연봉 10%를 올려달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 이유에 대해 써주세요.


   나의 직장 대표 사위님!

  사위님의 아내가 아들을 낳았을 때, 내가 돌봐주겠다고 자원한 사실 잘 알지요? 그래요, 잘 자라서 효녀인 딸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내가 자원봉사한다고 했어요. 나의 마음을 아는지 사위님도 책, 푹신푹신한 신발, 롱 패딩 옷이며 씨리얼 등 내가 원하기만 하면 뭐든 다 해주었지요. 그래서 자랑하는 글도 쓰고 그랬지요. 그렇지만 나는 사위님에게 뭘 해달라는 말을 잘 하지 않았어요.


  내가 자원한 그때 짐작조차 못한 점이 하나 있어요. 뭐냐면요 노화(老化)! 늙어가는 것을 몰랐지 뭐예요. 친구들이, 타인들이 손자를 키워주면서 하나같이 목소리 높이는 것에만 방비하였지, 내가 늙는다는 생각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답니다. 어제도 짧은 겨울 해가 지자 사위님이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어요. 그런데 사위님은 한 아기의 아버지로서 6시 땡! 하고 퇴근한 적이 있어요? 내가 사위님을 얼마나 기다리는 줄 아느냐고요오~~


  당신 마나님은 승진 대열에서 선두주자예요. 그럼 사위님이라도 일찍 귀가하여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 아니 예요? 사위님의 아내는 둘째를 잉태하고 있어요. 아내의 상황을 고려하여 아들에게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하는 거 아닐까요? '자동차가 들어왔습니다.' 자동으로 안내하는 소리를 듣고도 장모가 얼마나 기다려야 사위님은 현관문을 여시렵니까? 


  사위님은 밤마다 씨리얼을 먹어요. 먹었으면 설거지를 하며 아기 젖병, 다른 그릇들도 같이 씻으면 손에서 덧이 나나요? 왜 설거지를 미루는 거지요? 사위님의 아내가 둘째 가졌다며 손도 끄떡하기 싫어하면서 자꾸 설거지를 안 해요. 그러면 사위님이 소매 걷어붙이고 해야만 말이 되지요. 그것이 직장 대표로서 마땅히 준수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직장 대표가 왜 자꾸 게으름을 부리고 그래요?


  아침마다 늦게 일어나서도 걸레질해주는 거 좋아요. 그런데 바닥 걸레질해준다고 생색 좀 내지 마요! 빠지는 날도 많잖아요. 사위님의 아내도 출근하랴, 아들 저녁  반찬까지 준비해 주느라 정신없는데 "자기야, 수건 갖다 줘! 00은 어딨어?" 그렇게 아내가 해주기를 바라는 유치한 언행, 이젠 좀 버릴 수 없어요? 장모가 밸이 꼴려서 못 들어주겠어요. 아내를 배려해 주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하여 사위님에게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신축년에는 연봉 10% 이상 올려 줄 것을 강력히 제시합니다. 손자는 하루가 다르게 크면서 사내다워지고 있어요. 젊은 엄마들도 사내아이는 힘들다고 해요. 사위님은 그런 소리 듣기나 듣고 다니세요? 아, 이 장모가 손자의 정서교육을 위해 아침 저녁 달이 떠오르는 모습, 저녁 노을, 수달, 청둥오리, 꽃, 여객기, F15 전투기, 온갖 사물의 이름, 동요를 비롯한 우리 가곡, 대중가요, 팝송, 클래식 등 장르를 불문하여 직접 부르고 들려주며 보여주는 것 아시지요?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면서 사위님에게 말해주었지요.


  그렇다면 직장 대표 사위님은 연봉을 당연히 인상해 주셔만 됩니다. 사위님도 곧 40이 된답니다. 장모가요, 육아는 힘이 드는 것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사람은 육체가 쇠진하면서 퇴화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지 뭐예요. 육체가 퇴화한다는 것은 노화가 진행된다는 말이지요. 사위님도 눈에 잘 뜨이지 않지만 노인이 되어가는 중이란 말입니다. 육체가 노화하면서 쇠진해지니 당연히 노인의 육아는 무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노인이라는 말을 싫어하지요. 늙을 노(老), 사람 인(人). 늙어가는 사람이 노인이라는 말, 사위님도 묵과할 단어가 아닙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노화되고 있음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지요. 사위님도 그렇지요? 하여 다시 직장 대표이자 사위이며, 내 손자의 아버지에게 강조하며 말씀 올립니다. 내년 1월부터 무조건 연봉 10% 이상 올려주실 것을 앙망하나이다.



 

사진: 정 혜

손자를 유모차에 태우고 안심습지대 잠수교에서 수달을 만나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183708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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