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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Jan 01. 2021

아들이 아버지  두 손을 잡았다

  산중 암자에서 휴가 3일째다. 수카는 떡볶이를 젓가락질하며 간 들었던 말을 이어갔다. 어느 집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는데, 흥분했던 아버지가 아들의 귀를 자르는 바람에 위기감을 느낀 엄마는 어린 남매를 데리고 가출해버렸다. 엄마는 애타게 야간 병원을 찾아 헤매다 3시간여 만에 아들의 귀를 응급 수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편과 별거를 하던 어떤 날 술에 취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느그 엄마 빨리 안 찾아오나! 안 찾아오마 다 직이 뿔기다! 빨리 찾아 온나! 야~ 이 개~새끼야!"


  "엄마를 와 찾능교? 엄마한테 뭐를 잘해조따꼬 찾아오라카능교." 얼마 뒤 성장한 아들이 아버지 앞에 칼과 농약을 방바닥에 요란스럽게 놓았다. "자! 이 칼로 날 찌리든가, 아부지가 농약을 마시등강 한 가지마 태카소! 어데서 엄마 찾아오라꼬 그카능교? 내를 직이기 전에는 요서 한 발짝도 몬나가능구마!" 서슬이 시퍼런 아들이 눈에서 불을 뚝 뚝 떨어트리며 아버지를 쏘아보자, 패악을 부리던 아버지가 아들의 위압에 눌려서 숨소리도 못 내고 그 자리를 피했다. 이후 아버지는 아들이 멀리서 보이면 돌아섰다나.


  수카는 계속 말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의 아들이 고1 전후 남편과 대립하던 광경이 선명히 생각났다. 내 남편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아들을 나무랐다. 나는 청소를 하며 부자간의 대치를 방관했다. 당시 남편은 퇴임 전이었기에 기세 등등하여서 아들을 거세게 다그쳤다. 아들은 또박또박 아버지 말씀에 대꾸를 하였다. 약이 바짝 오른 남편이 말로 통하지 않자 따귀를 때리려고 손이 올라갔다.

 

  아들은 뺨 근처에 온 아버지의 손목을 잡았다. 아버지는 의외의 반전에 다급히 또 한 손을 들었다. 남편은 만세를 부르다가 아들에게 두 손목이 잡혀버린 형국이었다. 자신의 머리에 머리 두 개를 올려놔야 아들 얼굴이 겨우 보이는 남편이다. 남편은 아들을 올려다보면서 "이 새끼가 어디서 버릇없이 대들고 있어!"라고 하면서 "어디서 이딴 버릇을 배웠어!" 고래~ 고래… 그러나 아들은 여유만만하게 아버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청소를 하면서 '저 남자 웃기네~ 어디서 배웠냐니, 나 밖에 더 있어…' 남편이 아들에게 당하는 것이 고소했지만, 나는 눈물을 머금고 걸레를 든 채 부자가 있는 거실로 나갔다. 몇 분간 부자는 만세를 저지하며 눈으로, 코로 서로 기선제압의 선점을 노리고 있었다. 아들과 내가 눈이 마주쳤다. 남편의 뒤통수는 아들을 올려다보며 씩 씩 대느라 어쩔 줄 몰라하는 태도가 역연히 보였다. 나는 아들을 보고 씨익 웃고는,


  "아부지한테 이카능거 아이다. 어서 아부지 손 놔라, 이런 고약한 아들 놈이 어딨노!" 일부러 큰소리로 아들을 야단쳤다. "이런기 군대서 말하는 항명이다! 아부지한테 사과부터 빨리 해라!" 밉던 곱던 남편의 손을 들어서 완패를 판정승으로 해주어야만 했다. 손이 해방된 남편은 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안방으로 얼른 들어가 버렸다. 아들이 내게 두 엄지를 치켜세우며 승리를 자축했다. 대통령 뒷 담화는 누구나 다 한다. 나도 표 나지 않게 아들의 편이 되었다.


  남편은 아들 오 형제 중 막내다. 그리고 여동생 둘. 시아버지는 광복 이후 하던 사업이 잘 되어서 강원도 횡성군 일대의 최고 부자였다고 하였다. 그 부자의 살림살이가 서서히 거덜 나면서 남편이 고등학교 다닐 1970년 무렵에는 바늘 하나 꽂을 땅도, 집도 없이 전세방을 전전했다고 맏동서에게 들었다. 시부모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남편과 두 시누이는 몰락한 가세와 부모의 불화 속에서 공부하며 예민한 사춘기를 겪었다. 남편은 한참 좋을 꽃다운 나이에 부정적인 인성이 자연스레 키워진 것이다. 그리고 군대라는 조직사회에서 고급장교의 떠받듬의 맛과 남자로서의 권위의식을 배웠다.


  나는 이런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수카의 이야기를 중단시키며 폭행하던 남자의 가정 분위기를 물었다

. 그 남자가 중학교 재학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는 팔 남맨지 칠 남매를 키웠다고 했다. 홀어머니는 동네에서 욕 잘하고, 거세고, 드센 여자이며, 어떤 누구도 이길 자가 없을 정도로 악명이 자자했다고. 그런 어머니 밑에서 본인의 성격 또한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미인지라 아내에게조차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던 모양이다. 배운 것이 그것뿐이었으니 아내를 향한, 자식에게 하는 사랑의 표현은 폭행과 폭언뿐이었구나로 사려되었다.


  내 남편도 아들과의 대치를 끝내고 행동을 조심했다. 아버지의 고약한 버릇을 고치는 사람은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존심이나 승부근성이 강한 사람은 더 그렇지 싶다. 그래서 나도 한 집에 살지만 별거 같은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인에게는 연한 배처럼 최고의 예의범절로 대하면서, 집의 처자에게는 폭군으로 군림했다. 우리들은 남편이, 아버지가 집에 오지 말았으면 하고 속으로 바랬다.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아빠 안 왔으면 좋겠다."라고 드러냈다.


  나는 손자가 태어나면서 딸의 아파트로 갔다. 둘이 살던 집이 냉기로 가득 차면서 남편은 뼈저린 외로움의 석빙고가 되었다.  남편은 아주 영민한 사람이다. 적극적으로 의식의 변화를 시도했고, 긍정적인 언어를 구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멀어진 아이들의 온기를 남편이 따듯하게 데우기엔  역부족이었지만, 남편은 포기하지 않았다. 장성한 아이들은 독립하여 각자의 위치에서 본분을 다 하고 있다. 철이 든 삼 남매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척 포용하였다.


  지금도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식으로서 할 도리를 충실히 하려고 아버지와 웃으며 대화를 하고, 전화도 한다. 자식에게는 가정환경이 굉장히 중요하다. 부모가 자식의 잣대가 되어서 그들의 인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자식 또한 부모가 되므로 역시 마찬가지다. 바른 가정교육은 한 인간의 '완전한 인격의 토대'가 되고, 자존감과 자신감을 키우면서 원만한 인간으로 성장시킨다.  특히 어머니의 비중이 더 크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자식이 남편에게 머리를 숙이는데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 하여 이미 먼저 남편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남편은 그놈의 자존심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렇다면 석빙고얼음이 녹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그런데 이순이 지난 내가 과거를 들먹이면 무엇 하나. 나 또한 그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벽을 높이 쌓지 않았든가. 그리고 그를 넓은 도량으로 감싸 안지 못 했으면서 말이다. 또 부처님을 닮아가려 하는 사람이 남편을 거두지 못한다는 사실은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해빙되기를 기다리는데  참으로 많은 시일이 지났다. 그러면서 나도 성장했다. 진정한 어른으로.


  이번 휴가는 남편이 이곳 암자로 데려다주었다. 아들이 나의 말을 듣더니 "변해도 많이 변했네~".  아들은 아버지를 완전히 믿는 느낌이 아니었다. 31일, 이 해의 마지막 날 오전에 남편이 데리러 온다는 믿기지 않는 전화가 왔다. 수카가 나를  직지사 주차장까지 바래다 줄 채비가 끝난 상태라 오지 않아도 된다며 거절했다. 그런데 김천역에는 동대구 가는 기차를 두 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고속버스 및 시외버스는 운행이 중단되어서 어쩔 수 없이 남편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였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참말로 디기 바낏데이…"


  2021년 1월 1일 내일, 그는 코비드 19 피난처인 친구의 산골 농막으로 떠난다.  그는 이제 나를 놓아주었고, 나는 오래전부터 그를 방임하고 있었다.



사진: 정 혜

김천 직지사 중암에서.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19238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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