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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Jan 03. 2021

독자만 함께 한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을 읽고

  12월 24일 밤에 신천동 내 집으로 왔다. 남편은 '미스트롯 2'를 보고 있었다. 내가 누울 자리가 따뜻하게 데워질 동안 남편 옆에서 티비를 같이 시청했다. 2019년에는 다음 날 밤 한 시까지 이 프로그램을 남편과 함께 봤다. 그때도 느낀 점은 '천부적인 소질과 성공을 거머쥐기 위해 인내하며 노력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 늦은 나이에 글 맛을 알아 가는 중이다. 노래와 글의 차이점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때마침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을 읽고 있었다. 이 작가의 소설을 읽을 인연이 없었다. 단지 딸을 통해서 이름은 들었다. 1979~2010년까지의 잡다한 글들을 작가가 정리하고, 퇴고하여서 출판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이 분의 문체가 멋지다고 했다. 처음으로 소설도 아닌 잡문을 읽으려니 마음이 불편하였다. 그래도 유명한 작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싶어 책장을 덮고 싶었으나 붙들고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책의 곳곳에서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분'이어서 흥미로웠다. 무라카미 하루키 씨는 전생에 많은 공덕을 쌓았는 분이며, 이미 글을 쓰셨던 분이라고 추측해봤다. 이유는 소설가를 생각지도 않았지만, 그는 전생의 하던 이력이 있어서 글이 술 술 풀려나왔던 것이라고 사려되었다. 아무튼 사진 찍듯 뇌에 저장되었던 잠재의식이 소설로 다 쓰여진 것이다. 그리고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분도 소설 쓰는 것을 음악처럼 풀어낸다고 했다.


  잡문집을 읽을 무렵, 나는 공심재에서 '108일 글쓰기'를 하는 중이었다. 트롯 경연을 보면서 하나 같이 각자 개성껏 노래를 잘 불렀다. 마스터들이 원하는 것과 가수의 노래가 맞아떨어지면 전원이 불을 키고, 그렇지 않을 경우는 불이 다 켜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노래를 못 부르지 않았다. 내가 쓰는 글도 마찬가지였다. 문단의 요구사항과 나의 글이 부합하지 못해 원하는 문단에서 등단이 미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여기 저기 공모전에 드물게 원고를 보내봤다.


  내가 길게 사설부터 쓰는 이유가 있다. 솔직히 줄을 긋고 읽었지만 대충, 설렁설렁 넘기거나 건너 뛰었다410쪽부터는 나의 자세가 달라졌다. 책의 중간 중간에서 작가의 면모가 돋보여서 존경하는 마음도 들었고, 외국 작가들의 글을 해석해주어서 내가 다시 읽을 참고가 되는 부분은 굉장히 신선했다. 그래서 뒷장까지 읽게 되었다. '질문과 대답'에서는 완전히 그의 팬이 되어버렸다. 그의 사상이 410쪽부터 드러나기 시작하였다고나 할까. 


  412쪽 마지막 줄 "질문을 받고 새삼 다시 생각해봤습니다만, 나에게 죽음이란 '종말'이라기보다는 '막다른 곳'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세계의 막다른 곳'의 풍경(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내적인 광경이며 또한 신화적인 광경입니다)을 조금이라도 생생하고 극명하게 묘사해내는 것이 내 작품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겠지요." 이런 사고가 부정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어떤 은퇴를 그리고 계신가요?' 라는 질문에 415쪽에서


  "예술가에는 두 가지 타입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면 가까이에 기름 층 같은 게 있어서 그것이 저절로 술술 솟구치는 타입(이른바 천재 타입), 다른 하나는 땅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지 않으면 기름층을 만날 수 없는 타입입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천재가 아니므로 곡괭이를 들고 부지런히 단단한 지층을 파내려가야 합니다. 그러나 덕분에 지층을 파는 작업에는 꽤 정통하게 되었습니다. 곡괭이질에 유리한 근육도 탄탄하게 붙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해서 꾸준히 작업해나갈 것입니다. 자기 페이스를 확실하게 유지한다는 말은 이런 뜻이었습니다."


  나도 후자의 비유처럼 글을 쓰고 싶다. 상당히 인상적이다. 424쪽에는 프란츠 작가상을 수상하면서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에 "~독자만 함께한다면 다른 상은 굳이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소설자체가 힘을 가지고 그 힘으로 독자를 획득한다면 누군가의 인가는 필요치 않습니다.~" 또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매스미디어의 주목을 원하지 않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문학도 하나의 비즈니스라 여기는데 왜 원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소설가란 글 쓰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세상사를 유효한 문장으로 만들어 독자에게 제시하는 것이 소설가에게 요구되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왜 소설가가 글쓰기 이외의 일을 해야 할까요?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질문입니다. ~ 나는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에 작가가 되었습니다. 단지 그 뿐입니다." 이 얼마나 작가로서 당당하고 소신있는 사고이며 발언인가. 닮고 싶은 부분이다.    


  444쪽 '멀리까지 여행하는 방' 이 장은 가슴에 와 닿는 문장을 연결해 보았다. 

445쪽 첫 줄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자기만의 방을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중간 부분을 넘어서면서 "공유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세상살이를 서로 나눠가진다는 뜻입니다. 서로에게 힘이 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줄 "사람들은 다들, 살면서 어떤 하나의 소중한 것을 찾아헤매지만 그것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446쪽 "~우리는 장소나 인종이나 언어의 차이를 넘어 이야기를 -물론 그 이야기가 훌륭하게 쓰였을 경우에-같은 마음으로 공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내 방은 내가 있는 장소를 벗어나 멀리까지 여행할 수 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447쪽 "~그저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한 편하고 기분 좋은 장소를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448쪽에는 "나는 이야기라는 방안에서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고, 그것은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이야기의 힘이며 소설의 힘입니다. 당신이 어디에 살든 무엇을 하든 그런 것들도 별문제가 안 됩니다. 당신이 누구든 이 방에서 느긋하게 쉬며 이야기를 즐긴다면, 뭔가를 함께 나눈다면, 나는 무엇보다 기쁠 것입니다."  


  449쪽의 '나의 이야기와 나의 문체'에 대해서 451쪽의 중간에 보면

  "~쓰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더없이 낙관적인 전망을  바탕으로 일단 시작했다(아실지도 모르지만 소설가에게 낙관적인 정신이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질이다)~" 그리고 454쪽에서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을 썼다.

  "~내게는 써야 할 나의 이야기가 있고, 활용해야 할 나의 문체가 있었다. 남은 일은 힘을 모아 그저 꾸준히 써나가는 것뿐이다." 내가 나의 글에 대해서 확신을 갖도록 해주었는 글이다.


  460쪽 '이야기의  선순환'에 대하여 461쪽에서 작가는

  "이야기란 이왕 할 바에는 잘 해야 한다. 유쾌한 이야기는 철저하게 유쾌하게, 무서운 이야기는 철저하게 무섭게, 장중한 이야기는 철저하게 장중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원칙이다.470쪽 마지막 줄부터 471쪽 끝까지 문장은 내가 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면서 나의 마음을 대변한 부분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필사하는 것으로써 나의 글을 마감하여야겠다.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다시 이야기가 작가에게 더 깊은 몰입을 요구하며 되돌아온다. 그런 과정을 거침으로써 작가는 성장하고, 고유한 이야기를 더 깊게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획득한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 세상에 영구적인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손질을 게을리 하지 않고, 예로부터 려오는 상상력과 근면함이라는 연료만 바닥나지 않는다면, 역사적인 내연기관은 충실하게 순환을 유지하고, 우리의 차량은 앞을 향해 원활하게-어디까지나 갈 수 있는 데까지라는 의미지만- 꾸준히 진행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야기의 그런 '선순환(善巡還)을 믿고 소설을 계속 써나간다.

  나는 어쩌면 지나치게 낙천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런 희망이 없다면, 소설가로 존재하는 의미와 기쁨이 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희망과 기쁨이 없는 이야기꾼이 우리를 둘러싼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맞서, 공포나 절망에 맞서 모닥불 앞에서 어떻게 설득력을 가지겠는가?"




사진: 정 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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