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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Jan 18. 2021

꿈쩍도 하지 않았더니

   요즘 남편과 거실에서 티브이를 자주 본다. TV는 코비드 19 바람에 뉴스와 연속극을 제외하면 온통 트롯 천지인 것처럼 보인다. 트롯 방송을 보며 남편과 주고받는 대화는 충돌 없이 유일하게 의사소통이 되었다. 근래에 컴퓨터를 마주한 채 글을 쓰면, 녹내장으로 인하여 오른쪽 눈부터 꼭 꼭 쑤시며 뻑뻑 해져온다. 그래서 웬만하면 컴퓨터와 손전화기를 마주 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금요일 밤 9시 즈음에 내 집으로 오면, 남편은 트롯 방송을 보거나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남편은 뜨뜻한 바닥에서, 나는 눈의 피로를 소파에 걸터앉는다.


  남편은 주중에 혼자 티브이를 본 후 재방송까지 보는 경우가 많다. 가수의 개인사까지 줄 줄 꿰면서 나에게 이야기를 해준다. 나는 내 글과 친구인 사람이라 평소 대화가 많지 않다. 오직 손자가 나를 말 많은 할머니로 만들 따름이다. 아들이 전화를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연구를 해야만 한다. 그 정도로 말문이 막힌다. 손자와 지내다 보니 정작 내 아이들은 잘 있으리라 믿으며 전화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남편이 더운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들을 땐 예사로 듣고, 저녁 준비하면서 온수 꼭지를 올리니 그제야 물이 나오지 않는 사실을 떠올렸다. 요 며칠 영하의 기온이 이어지던 중이라 언 듯 온수 배관이 얼었다는 것을 알았다. 해마다 연례행사로 되풀이되고 있었으나, 한 번도 고쳐주지 않았는 남편이 알 리 만무했다. 예년에는 내가 물을 끓여서 일부는 미지근하게 하여 언 배관을 녹였다. 남편이 해야 할 일을 직접 해결해버렸다. 그랬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그 말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야 정 급하면 데워서 쓰면 되니까.  


  남편은 그렇지 않았다. 가스레인지에 매번 물을 데워서 화장실로 옮겨 가느라 분주했다. 그러던 남편이 외출해서 돌아오더니 "더운물 나온다!"라고 좋아서 소리를 질렀다. "아이구, 속이 다 시원하네~" 남편은 정말 삼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후련하게 말했다. 참말로 온수가 나왔다. 나는 속으로 앞장서지 않기를 잘했다 싶어서 웃음이 나왔지만 이럴 땐 웃으면 안 되는 일이다. "정말 잘 됐네! 여보, 어떻게 했길래 물이 다 나와요?" 날씨가 풀릴 때까지 기다릴 것처럼 말했던 남편이다. "더운물로 녹였지!" 아주 자랑스럽게 말했다.


  남편이 변했다. 바뀌어도 아주 많이 달라졌다. 딸의 아파트에 있을 땐 설거지는 도맡아서 해주었다. 자원하여 아주 열심히… 코비드 19가 또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사돈의 다급한 요청이 있었다. 남편이 외부인들을 많이 만나는 이유로 손자에게 영향이 미칠까, 장애어린이 집 운영에도 여파가 두렵다고 했다. 남편은 섭섭한 속내를 지닌 채 내 집으로 완전히 철수해버렸다. 이후 노후된 단독주택에 겨울준비를 하였고, 최대한 따뜻하게 실내온도를 유지시키려 노력하였다. 그러면서 난방비 지출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 같았다. 글 쓴다고 컴퓨터와 노는 마누라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만들었다.


  남편이 주방에 들어서는 일은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말이었다. 전형적인 가장의 권위를 지키려 했던 사람이다. 그런 남편인지라 나는 여러 말하기 싫어서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였고, 그렇지 않은 것은 돈 주고 사람을 불렀다. 내가 초겨울로 접어들자 서리를 피해서 화분을 뜨락으로 가져다 놓았다. 그후

남편이 에 잠시 들렀을 때 화분의 식물들이 냉해를 입은 것을 보고 지하실로 옮기며 마당 청소까지 했다고 알려주었다. 마당 한편에 두었던 연(蓮)도 꽁 꽁 얼어버렸다. 집을 비워두면서 벌어진 일들이다.


  나는 한참을 남편과 얼어 있었다. 황혼이혼을 시도했으나 아무리 다 큰 자식이라도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내 몰라라 할 수 없었다. 헤어지는 것은 피했으나 해빙이 되지 않은 바다에는 얼음 덩어리가 떠다녔다. 유빙은 이리저리 서로 부딪히며 부서지고 녹기도 하였다. 명색이 부처님의 제자를 자처하며 '나'라는 얼음을 녹여내지 못했다. 무아(無我), 고정적인 내가 없는데 왜 나는 실천하지 않으려고 했던지. 그다지도 어려웠던 일이었나. 뭐 그리 중요한 자아라고 나를 붙들고 집착하며 놓지 못했는지. 지금은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손자는 따뜻했다. 봄빛은 만물을 일시에 녹여버렸고, 싹이 돋게 했고 꽃을 피웠다. 세상은 푸르렀고, 꽃은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피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을 밝게 해 주었다. 이구동성으로 노래를 부르게 했다. 연두색의 봄은 풀빛으로, 또 초록색에서 갈매 색이 되어 갈 것이다. 우리 가족은 이 봄을 즐기고 있다. 봄의 전령사는 나의 손자였다. 그리고 봄빛은 공통분모가 트롯이기도 하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은 대구 수성구 범어4거리에 핀 흑매.

아래 사진은 동구에 핀 벚꽃.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211718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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