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변했다. 바뀌어도 아주 많이 달라졌다. 딸의 아파트에 있을 땐 설거지는 도맡아서 해주었다. 자원하여 아주 열심히… 코비드 19가 또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사돈의 다급한 요청이 있었다. 남편이 외부인들을 많이 만나는 이유로 손자에게 영향이 미칠까, 장애어린이 집 운영에도 여파가 두렵다고 했다. 남편은 섭섭한 속내를 지닌 채 내 집으로 완전히 철수해버렸다. 이후 노후된 단독주택에 겨울준비를 하였고, 최대한 따뜻하게 실내온도를 유지시키려 노력하였다. 그러면서 난방비 지출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 같았다. 글 쓴다고 컴퓨터와 노는 마누라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만들었다.
남편이 주방에 들어서는 일은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말이었다. 전형적인 가장의 권위를 지키려 했던 사람이다. 그런 남편인지라 나는 여러 말하기 싫어서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였고, 그렇지 않은 것은 돈 주고 사람을 불렀다. 내가 초겨울로 접어들자 서리를 피해서 화분을 뜨락으로 가져다 놓았다. 그후
남편이 집에 잠시 들렀을 때 화분의 식물들이 냉해를 입은 것을 보고 지하실로 옮기며 마당 청소까지 했다고 알려주었다. 마당 한편에 두었던 연(蓮)도 꽁 꽁 얼어버렸다. 집을 비워두면서 벌어진 일들이다.
나는 한참을 남편과 얼어 있었다. 황혼이혼을 시도했으나 아무리 다 큰 자식이라도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내 몰라라 할 수 없었다. 헤어지는 것은 피했으나 해빙이 되지 않은 바다에는 얼음 덩어리가 떠다녔다. 유빙은 이리저리 서로 부딪히며 부서지고 녹기도 하였다. 명색이 부처님의 제자를 자처하며 '나'라는 얼음을 녹여내지 못했다. 무아(無我), 고정적인 내가 없는데 왜 나는 실천하지 않으려고 했던지. 그다지도 어려웠던 일이었나. 뭐 그리 중요한 자아라고 나를 붙들고 집착하며 놓지 못했는지. 지금은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손자는 따뜻했다. 봄빛은 만물을 일시에 녹여버렸고, 싹이 돋게 했고 꽃을 피웠다. 세상은 푸르렀고, 꽃은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피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을 밝게 해 주었다. 이구동성으로 노래를 부르게 했다. 연두색의 봄은 풀빛으로, 또 초록색에서 갈매 색이 되어 갈 것이다. 우리 가족은 이 봄을 즐기고 있다. 봄의 전령사는 나의 손자였다. 그리고 봄빛은 공통분모가 트롯이기도 하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은 대구 수성구 범어4거리에 핀 흑매.
아래 사진은 동구에 핀 벚꽃.